
저는 중고거래를 오래 해왔습니다.
어릴 때는 지금 같은 앱이 없었습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물건을 올리고, 사고 싶은 사람이 댓글이나 쪽지로 연락처를 주고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데 그때는 게시판에 전화번호를 그냥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번호를 알려주는 일에 별 저항이 없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연락이 닿으면 흥정이 시작됩니다. 얼마까지 되냐, 직접 가면 깎아주냐, 어디서 보면 되냐. 지금은 앱이 대신 해주는 과정을 그때는 사람이 직접 했습니다. 중개인도 없고, 보증도 없고, 안전장치도 없었습니다. 낯선 두 사람이 알아서 만나고, 알아서 확인하고, 알아서 거래했습니다.
그래서 사고도 많았습니다. 가장 흔한 건 노쇼였습니다. 만나기로 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겁니다. 특히 제가 그곳까지 가는 조건으로 값을 깎았을 때 도착해서 연락이 끊기면 속이 탔습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갔는데 상대가 잠수를 타면, 물건을 못 산 것보다 그 시간과 걸음이 아까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늘 같은 다짐을 하곤 했죠. 다시는 멀리 안 간다. 이러고 다음에 또 갔습니다.
만남 자체도 어색했습니다. 주로 지하철역이었는데, 약속 장소에서 두리번거리다 눈이 마주치면, 저 사람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중고거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특유의 분위기와 긴장감이 있습니다. 물론 그냥 긴장한 엉뚱한 사람일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어쨌든 정확한 상대를 만나면, 어색하게 인사하고, 물건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현금을 세어 건넵니다. 지폐를 세어 건네는 동안에는 서로 말이 줄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다시 볼 일도 없었습니다. 그저 물건과 돈만 교환하고 헤어졌습니다. 거래가 끝나면 각자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앱이 중간에 들어오면서 낯선 두 사람이 직접 부딪히던 부분을 시스템이 나눠 맡습니다. 전화번호를 노출할 일도 없고, 채팅으로 흥정하고, 약속을 잡고, 앱 안에서 송금까지 끝냅니다. 예전에는 사람의 기억과 양심에 맡겼던 일이 이제는 알림과 기록 사이에서 처리됩니다.
거래하는 물건도 달라졌습니다. 어릴 때는 작은 전자제품이나 책 정도였는데, 지금은 아이 물건, 커다란 장난감, 유모차 같은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크기가 커지니 만나는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상대가 차를 몰고 아파트 주차장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트렁크가 열리고, 물건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은행 앱으로 송금합니다. 물건이 크면 같이 트렁크에 실어줍니다. 감사하다, 잘 들어가시라,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 헤어집니다. 현금다발도, 지폐를 세는 긴장도 없습니다. 매끄럽고 빠릅니다.
노쇼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약속이 사람의 양심에 달려 있었는데, 지금은 앱이 그 약속을 붙잡아둡니다. 대화 기록과 거래 후 평가가 남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그 기록이 다음 거래에 영향을 줍니다.
그 기록이, 예전과 가장 달라진 점입니다. 지금 중고거래에는 평가가 따라옵니다. 거래가 끝나면 서로를 평가하고, 그 평가가 점수로 쌓입니다. 그래서 거래를 잡기 전부터 상대의 평판을 봅니다. 프로필 사진보다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후기가 많고 점수가 높으면 마음이 놓이고, 기록이 적거나 평가가 애매하면 대화를 한 번 더 읽어봅니다. 예전에는 약속 장소에 나가서야 상대를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만나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판단을 끝냅니다.
그 판단은 상대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저도 평가의 대상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투가 조심스러워집니다. “됩니다”보다 “네, 가능합니다”라고, “오세요”보다 “편하실 때 오시면 됩니다”라고 씁니다. 물건 상태도 더 자세히 적습니다. 흠집이 있으면 사진을 따로 찍고, 혹시 몰라 한 번 더 설명합니다. 약속 시간보다 먼저 내려가 있고, 거래가 끝나면 먼저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 말합니다.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거래자로 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오래된 태블릿을 판 적이 있습니다. 시세가 12만 원쯤이었는데, 빨리 처분하고 싶어서 11만 원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인사도 없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10만 원에 살게요.”
인사뿐 아니라 흥정의 예의도 없었습니다. 그냥 만 원을 깎아 통보한 겁니다. 순간 기분이 상했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상대의 프로필을 눌렀습니다. 얼마나 무례한 사람인지 한번 보자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매너 온도는 낮지 않았고, 거래 기록도 꽤 많았습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제 판단이 흔들렸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거래를 많이 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은데, 원래 이런 식이 통용되는 건가. 내가 중고거래 예절을 너무 따지는 건가. 만 원 깎자는 말에 기분 상하는 내가 옹졸한 건가. 분명히 무례하다고 느꼈는데, 상대의 높은 점수가 제 불쾌함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만 원이 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이었고, 10만 원에 팔아도 손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개운하지 않았던 건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기분이 나빴는데, 그 기분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상대의 점수를 보며 슬그머니 물러섰기 때문입니다. 결국 팔긴 팔았습니다. 파는 내내 끌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얼마 전 맥미니를 팔았을 때는 반대였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점수를 신경 쓰는 쪽이었습니다. 애플 계정에서 기기를 삭제하고 넘겨야 하는데, 깜빡하고 그냥 거래를 해버렸습니다. 출근 전에 서둘러 거래를 마치고 지하철을 탔는데, 상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기기가 계정에 묶여 있어 초기화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으로 계정 삭제 방법을 검색했습니다. 계정에 들어가 기기를 찾고, 삭제 버튼을 누르고, 상대에게 다시 확인을 부탁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혹시 평가에 남지는 않을까, 이미 넘긴 물건 때문에 마음이 계속 붙잡혀 있었습니다.
지금의 중고거래는 물건을 넘기면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계정, 초기화, 사진, 하자 고지, 약속 시간, 말투, 응대까지 모두 거래의 일부가 됩니다. 단순히 물건 하나를 파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있게 대응하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 덧붙었습니다.
예전의 거래는 불편했지만, 거래가 끝나면 정말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물건을 건네고, 각자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면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훨씬 편합니다. 대신 거래가 끝난 뒤에도 기록이 남습니다. 그 기록은 다음 거래의 신뢰가 되고, 또 제가 관리해야 할 평판이 됩니다.
사람 사이에 있던 신뢰가 앱 안의 숫자로 옮겨갔을 뿐인데, 그 숫자는 가끔 제 기분보다 앞에 섭니다. 무례를 당하고도 상대의 높은 점수를 보며 내가 예민한 건 아닌지 되묻고, 슬그머니 물러섭니다. 낯선 사람을 그대로 믿지 않는 대신, 이제는 그 사람에게 매겨진 점수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점수는 저에게도 매겨집니다. 그래서 상대의 점수 앞에서는 제 기분을 의심하고, 제 점수 앞에서는 작은 실수에도 마음이 붙잡힙니다.
편해진 거래에는 점수가 남습니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 점수가 저보다 앞섭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