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지난 3월 임직원 대상으로 발표했던 내용을 블로그 형식에 맞게 각색, 수정한 것입니다.
AI 시대, 직장인의 두 가지 감정
지난 몇 년간 AI 툴을 써오면서 저에게 두 가지 감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충격과 공포입니다.
노동자로서 제 일자리가 사라질 것 같다는 느낌.
19세기 산업혁명 때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방직기를 부수던 그 감정과 다를 게 없습니다. 역사에서는 이걸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부르죠. 저는 사실 운동가 체질도 아니어서 방직기를 부수러 가지는 못합니다. 그냥 책상 앞에서 한숨을 쉴 뿐이죠.
두 번째는 AI 툴을 쓰면서 제가 점점 생각을 안 하게 된다는 두려움 입니다.
이건 첫 번째보다 더 무섭습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외부 사건이지만,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비어가는 일입니다.
60년 전 SF소설이 경고했던 것
이 주제를 가장 깊이 다룬 작품이 프랭크 허버트의 <듄>입니다.
<듄>에는 버틀레리안 지하드라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인류가 생각하는 기계를 전부 파괴해버리는 혁명이에요.
그 혁명이 왜 일어났을까요.
"사람들은 생각하는 기능을 기계에게 넘겼다. 자기들이 자유로워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하지만 그건 기계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노예로 삼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60년 전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섬뜩하죠.
그의 아들 브라이언 허버트가 쓴 <버틀레리안 지하드>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실질적인 도전에 직면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곧 침체된다. 따라서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서 생존하려면 어려움을 만들고, 직면하고, 승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왜냐면 제가 딱 그렇게 되고 있거든요.
AI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걸 느낍니다.
딸깍 제안서의 시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다들 요즘 기획서나 제안서 어떻게 쓰시나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제안서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에, 어쩌면 올해 하반기에 우리가 어떻게 제안서를 쓰게 될지는 감히 예언할 수 있습니다.
네, 딸깍이죠.
AI 툴에 프롬프트를 넣고 딸깍. 이게 합리고 효율입니다. 그 결과로 제안서가 차별성과 의미를 잃게 될겁니다.
고객사도 똑같은 논리로 에이전시를 찾지 않을 거고, 그 고객사의 담당 부서도 형편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백 명 규모에서 관리자 한두 명으로 줄어들겠죠. AI 시대 효율의 논리는 그렇게 작동합니다.
그리고 비딩이 벌어지는 회의실에서는 이런 풍경이 펼쳐질 겁니다.
발표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화려한 슬라이드에 정보가 가득한데 AI가 써준 내용을 이해해보려다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읽기로 했습니다. 듣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발표가 끝나면 ChatGPT에 파일 넣고 세 줄 요약을 시킬 계획입니다. 한마디로 AI가 만든 발표자료에 모든 관계자가 끌려다니는 상황입니다. 회의실에 사람이 있되, 일하는 사람은 없는 상태죠.
사라질 직업 목록
이 리스트는 AI 시대에 가장 빠르게 없어질 직업들이라고 합니다.
앤트로픽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사 내용인데요.
데이터 입력 담당자, 고객 상담원, 텔레마케터, 행정비서, 회계사, 의료기록 관리자, 보험심사 담당자, 문서 검토 직원, 번역가, 통역사, 기자, 작가, 편집자, 마케팅 리서치 분석가, 금융 분석가, PR 전문가, 역사학자, 영업사원, 고객지원 매니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데이터 분석가, 리서처, QA 담당자.
리스트가 깁니다.
마음만 아플테니 굳이 본인 직무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아마 전부 해당될 겁니다. 책상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넣었나 싶은 리스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오랫동안 경험하고 학습해온 스킬들이 점점 쓸모 없어지는 걸 보면서 아쉽고 씁쓸합니다. 그 감정은 여러분들도 비슷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10년 전 AI 쇼크에 무너진 업계가 있다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이미 10년 전 AI 쇼크에 무너진 업계가 있습니다. 뭔지 아시나요?
네 바로 바둑계입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4:1로 진 게 벌써 10년 전입니다.
바둑기사들은 이제 AI를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AI가 두는 방식을 연구하고, 그것을 이해해서 자기 기량으로 흡수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AI 앞에서 그냥 손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바둑판 앞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 그게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을 놓지 않는 것.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것. AI가 두는 수를 이해해보려고 시도하는 것.
200미터짜리 쓰나미
AI의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서핑으로 도전한 가장 높은 파도는 26미터입니다.
하지만 AI의 발전은 어느 순간 200미터짜리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칠 겁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파도가 아닙니다.
일부 IT 혁신가들은 AI세와 로봇세로 재원을 마련한 기본소득이 그 해답이 될 거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지금 다섯 살인 아이들은 15년 뒤에 직업을 구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합니다.
일은 취미의 영역이 되고, 피지컬 AI가 만들어낸 압도적인 풍요 속에서 모든 사람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될 거라고요.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설정 아닌가요? 네, 바로 <듄>에서 경고했던 내용이죠.
실제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칼훈의 <유니버스 25> 실험, 들어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풍부한 먹이, 천적 없음. 이 두 가지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받은 쥐들은 결국 생각하는 법, 살아가는 법, 번식하는 법, 서로를 돌보는 법을 잃어버렸습니다. 8 마리에서 2000 마리까지 번식한 쥐들의 작은 유토피아는 실험 시작 4년 10개월 만에 마지막 쥐가 죽음으로써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데, 칼훈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두 번의 죽음을 맞았다. 첫 번째는 정신과 사회의 죽음이었고, 두 번째는 육체의 죽음이었다."
생각하는 기능을 경제적 풍요와 교환한 인류의 마지막은 쥐들의 유토피아와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쥐와 달리 손놓고 종말을 기다릴지, 저항할지 선택할 수 있는 지성과 의지가 있습니다.
여느 아포칼립스 소설, 영화에서도 인류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 종족으로 그려지니까요.
아직 세상에 없는 단어지만, AI 시대에서 지성과 의지를 잃지 않고 살아남은 인류야말로 호모 레지스텐스(Homo Resistens: 압도적인 것 앞에서도 일단 등을 곧게 세우는 인간)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신입사원이 팀장처럼 일하는 시대가 온다
이미 기획자가 AI로 코드를 짜고, 개발자가 AI로 디자인을 하고, 디자이너가 AI로 전략 문서를 씁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작은 기업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언을 하나 더 하자면. 앞으로 5년 뒤 회사에 입사하는 신입사원은 직급은 사원이지만 팀장처럼 일하게 될 겁니다.
신입사원이 업무 분장을 하고, 일정 관리를 하고, 산출물을 책임지게 될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인턴 사원이 아니라 AI 에이전트들을 데리고 말이죠. 한 사람이 산출하는 생산성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집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람에게는 사고하는 힘과 경험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AI로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지 결정하는 것. 결과물에 우리만의 엣지를 만드는 선택.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
모두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면 지금 뭘 해야 하는가
저는 두 가지를 권하고 싶습니다.
첫째, 자기 직무 바깥의 경험을 쌓는 것.
기획자니까 기획만 판다, 디자이너니까 디자인만 판다. 이런 단일 직무 전문성은 AI보다 잘하기 어려울 겁니다.
다재다능한 AI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기획자의 역량, 디자이너로서의 역량, 개발자로서의 역량이 모두 필요한 시대가 곧 옵니다.
자기 직무의 깊이는 자산이지만, 인접 직무의 폭이 없으면 그 깊이도 활용이 어려워집니다.
둘째, 작은 거라도 직접 만들어보는 것.
저는 최근에 이 블로그를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봤습니다. 코드를 만질 줄 알긴 하지만 본업이 아닌 영역이고, AI한테 다 시켜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AI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기능 명세를 직접 쓰고 결과물을 한 줄 한 줄 검토하고 다시 수정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카드 영역은 왜 4개여야 하지?", "이 여백은 왜 88px이지?", "이 모션은 왜 필요하지?" 같은 질문을 매번 던졌습니다.
AI에게 딸깍 맡기는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하고 쓴 것을 AI로 더 잘 표현하는 것.
그게 제가 찾은 작은 균형입니다.
대단한 결과물은 아닙니다. 이 블로그도 보시다시피 평범합니다. 그런데 만드는 동안 제 머리는 분명히 일했습니다. 생각하는 근육이 빠지지 않게 운동시킨 셈입니다.
역할이 바뀔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역할이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그 역할이 바뀔 뿐이죠. 설사 역할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게 여러분 존재의 종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생각과 경험을 계속 쌓고 있다면요.
저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이겼던 그 1국을 기억합니다. 진 게 아니라 진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는 손을 놓은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자리입니다. 자리에 끝까지 앉아서 한 수 한 수 두어본 사람만이 그 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200미터짜리 쓰나미가 옵니다. 거기에 서핑보드로 맞설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파도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 누가 남아 있을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바둑판 앞에 앉아 있는 쪽으로 남고 싶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