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가는 식당에서도 메뉴판을 오래 볼 일이 줄었습니다.
대표 메뉴가 무엇인지 이미 봤고, 사람들이 자주 시키는 조합도 알고 있습니다. 자리에 앉은 뒤 직원이 메뉴를 설명하기 전에 주문부터 할 때도 있습니다.
처음 가는 호텔에서는 식당이 몇 층인지 알고 있습니다. 객실 창문 밖으로 무엇이 보이는지, 방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좁다는 것, 주차장에서 로비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도 대강 알고 있습니다.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테이블을 찾고, 놀이공원에서는 입장하자마자 어느 쪽으로 가야 덜 기다리는지 알고 움직입니다. 처음 왔는데 한 번 와본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외출할 장소를 정하면 지도부터 봅니다. 입구와 주차장을 확인하고, 블로그에서 내부 사진을 봅니다. 화면을 내리다 보면 메뉴판과 화장실 위치, 기다리는 시간까지 나옵니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많은 일을 알고 있습니다. 덕분에 편합니다. 주차장 입구를 지나쳐 한 바퀴 돌지 않아도 되고,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잘못할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호텔 방이 기대와 너무 다를 일도 예전보다 적습니다. 시간을 내서 갔는데 문이 닫혀 있는 상황도 피할 수 있습니다.
업무 때문에 미국에 갔을 때였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 방에 들어갔는데 오래 있으니 답답했습니다. 밤거리가 위험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호텔 앞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지나가는 차도 많지 않았습니다.
잠시 걷고 있는데 순찰차 한 대가 제 옆에 멈췄습니다. 경찰이 차에서 내려 말을 걸었습니다. 별일 없는지, 왜 밖에 나와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 손은 허리춤의 권총 근처에 두고 있었습니다.
긴장할 만한 상황이었는데 당시에는 생각보다 담담했습니다. 미국 경찰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경계하는 동안 손을 허리 쪽에 두는 장면을 영상에서 여러 번 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호텔 방에 있다가 답답해서 잠시 나온 것이고 별다른 일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몇 마디를 더 묻고 주변을 살펴본 뒤 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경찰이 제 앞에 순찰차를 세우고 말을 건 것은 한국과 해외를 막론하고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겪는 장면 같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실제로 겪기 전에 비슷한 모습을 화면에서 여러 차례 봤습니다. 그 영상이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여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 제 반응에는 영향을 줬습니다.
요즘은 여행지의 풍경뿐 아니라 그곳에서 생길 수 있는 상황까지 미리 접합니다.
입국심사에서 어떤 질문을 하는지, 식당에서 팁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호텔 체크인이 늦어지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영상으로 확인합니다. 놀이공원은 최적의 동선을 알려주는 영상이 있고, 유명한 식당에는 주문 방법을 설명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직접 가기 전에 한 번쯤 예행연습을 마칩니다.
이런 정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 경찰을 만났을 때 덜 당황했던 것도 미리 본 장면 덕분이었을 수 있습니다. 굳이 모르는 상태로 가서 실수하고 고생하는 일을 여행의 재미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길을 잃고, 예약 시간을 놓치고, 맛없는 음식을 비싼 돈을 주고 먹는다고 모두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실제로 가서 하는 일이 달라졌습니다.
카페에 들어가서는 사진에서 본 구도가 맞는지 살펴봅니다. 숙소에 도착하면 화면에서 보던 방과 비교합니다. 관광지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풍경을 찾아 카메라를 듭니다.
“사진보다 작네.”
“영상에서 보던 그대로네.”
처음 가본 곳에서 자주 하는 말입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간인데, 이미 봤던 이미지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이지 않았던 골목을 발견해도 그냥 들어가기보다 휴대폰을 꺼냅니다. 가볼 만한 곳인지, 문을 연 가게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했는지 확인합니다. 잠시 낯설었던 곳은 검색 결과가 뜨는 동안 다시 익숙해집니다.
낯선 나라로 해외여행을 가도 크게 신기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도시의 거리와 지하철, 시장과 호텔을 영상으로 너무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게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화면으로 본 것은 화면 안의 모습뿐인데, 직접 가보기도 전에 이미 안다고 여기고 있으니까요. 날씨와 냄새, 사람들의 말투, 거리의 속도는 영상으로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낯선 곳에 도착하면 저는 먼저 휴대폰을 봅니다.
얼마 전 처음 가본 동네에서 골목 안쪽에 작은 카페 하나가 보였습니다. 사진으로 본 곳도 아니고, 검색해서 찾은 곳도 아닌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잠깐 들어가볼까 생각했습니다.
가게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후기는 세 개뿐이었습니다.
저는 세 개를 모두 읽고 들어갔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