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정해진 시간도 없이 확성기 소리가 찾아왔습니다.
두부를 파는 트럭이 골목을 돌았고, 계란이나 배추를 싣고 온 차에서도 확성기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폐가전이나 헌 물건을 산다는 말은 음질이 좋지 않아 절반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몇 번 들으면 어떤 차가 왔는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들리면 어느 집에서 사람이 나왔습니다.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지갑을 들고 골목으로 내려갔습니다. 트럭이 멈춘 자리에는 잠시 사람들이 모였고, 흥정과 안부가 오갔습니다.
그런 트럭을 보지 못한 지 꽤 오래됐습니다. 두부와 계란은 마트에서 사고, 무거운 물건은 문 앞까지 배송됩니다. 오래된 가전도 앱으로 신청하면 정해진 날에 가져갑니다. 골목을 돌며 살 사람을 부를 이유도, 트럭을 기다릴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이웃간의 대면이 줄어든 삭막한 현대의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그게 싫지 않습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이어폰부터 낍니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면 전동차의 굉음이 멀어집니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가 늘어나면서 거리가 조용해진 것도 좋습니다. 엔진음과 매연이 줄어드는 건 반가운 변화입니다. 확성기 트럭이 다시 매일 골목을 돈다면 저는 아무리 더워도 며칠 안에 창문을 닫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라진 것이 그런 소리만이 아닙니다. 학교가 끝날 때면 운동장과 골목에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놀이터에서는 공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저녁까지 이어졌습니다. 문방구 앞에 놓인 오락기 주변에는 게임을 하는 아이보다 구경하는 아이가 더 많았습니다. 게임 효과음보다 “내 차례야”나 “거기서 피해야지” 같은 말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디에서 노는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학원이 끝난 뒤 집으로 가거나, 실내에서 게임을 하고, 친구와 이야기할 때도 메신저를 사용합니다. 게임은 훨씬 화려해졌지만 대부분의 소리는 이어폰 안에 있습니다. 문방구 앞에서 남의 게임에 참견하던 아이들도 오락기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거리의 가게들도 전보다 조용합니다. 예전에는 옷가게가 입구에서 음악을 틀었고, 시장 상인은 지나가는 사람을 목소리로 붙잡았습니다. 요즘은 닫힌 유리문과 안내문이 손님을 맞습니다. 들어가도 직원보다 키오스크를 먼저 만나는 곳이 늘었습니다. 말을 하지 않고도 주문하고 결제할 수 있으니, 굳이 목소리를 낼 일이 없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여러 사람이 서 있어도 대부분 화면을 보고 있습니다. 친구와 연락하고, 회사 이야기를 하고, 영상을 보지만 그 내용은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길을 걸으며 통화하는 사람보다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고, 영상을 볼 때는 이어폰을 낍니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닌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소리로 확인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아마 이게 제가 지운 소리와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트럭의 확성기 소리, 전동차의 굉음이나 자동차의 엔진 소리는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해질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소리가 없어진 곳은 그냥 조용해지는 게 아니라 이상합니다. 정류장에 열 명이 서 있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평화로운 오후로 보이는 게 아니라 조금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주말에 집 근처 길에서 아이들 몇 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친구를 놀리며 소리를 지르고, 한 명이 달아나면 나머지가 웃으며 뒤쫓습니다. 보행로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뛰니 얌전한 모습은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비켜 가며 시끄럽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 소리에 고개가 돌아갑니다.
아이들이 골목 끝으로 사라진 뒤에도 웃음소리는 잠시 더 남아 있습니다. 저는 멀어져가는 그 소리를 한동안 듣고 있었습니다.
소음이 그리운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소리는 왠지 반가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