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꾸기 전에는 세탁기가 베란다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그래서 종료음이 들려도 못 들은 척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빨래가 세탁기 안에서 썩기 전에만 건조기로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며 버티다가, 한두 시간쯤 지나 마음이 불편해지면 베란다로 어슬렁어슬렁 나갔습니다.
가족들도 소리를 들었을 테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 빨래를 옮겨야 했으니까요.
요즘은 못 들은 척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IoT 기능이 좋다고 해서 샀는데, 세탁기와 식기세척기가 스마트싱스에 연결되면서 일을 마칠 때마다 거실 TV 화면에 알림이 뜹니다.
‘세탁이 완료되었습니다.’
주말 오후에 가족이 함께 TV를 보다가 이 문장이 나타나면 잠시 조용해집니다. 이제 모두가 알림을 봤습니다. 일어날 사람까지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듭니다. 방금 중요한 연락이라도 온 사람처럼 화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봅니다. 아내는 TV를 보다가 슬쩍 제 쪽을 봅니다. 딸아이는 이 알림이 자신과 상관없다는 표정을 유지합니다. 여덟 살인 작은아이는 아직 이런 눈치싸움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마침내 아내가 한숨을 쉬며 일어납니다. 그 순간 저는 휴대폰에 집중한 얼굴을 유지한 채 속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아내도 매번 당하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너 빨래 좀 건조기에 올려.”
딸아이가 궁시렁거리며 일어나 베란다로 갑니다. 건조기 문이 닫히고 딸이 거실로 돌아오면, 가족은 한 차례 위기를 넘긴 사람들처럼 다시 TV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건조기의 작동이 끝나면 난도가 더 높아집니다. 빨래를 꺼내고, 가족별로 나누고, 개서 옷장에 넣어야 합니다. 세탁기에서 건조기로 옮기는 일은 딸에게 부탁할 수 있지만, 빨래를 개는 일은 결국 아내와 제 몫으로 돌아옵니다.
식기세척기도 제 할 일만 끝냅니다. 세척이 완료되면 그릇을 꺼내 찬장에 넣는 건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래도 식기세척기에는 시간을 벌 수 있는 핑계가 있습니다.
“아직 물기가 있으니까 좀 말려야 해.”
문을 열어둔 채 이렇게 말하면 한동안 미뤄도 게으름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끼니가 다가오면 싱크대에는 그릇이 쌓이고, 식기세척기 안에는 깨끗한 그릇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그때는 비워내야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가장 꺼리는 것은 음식물 처리기입니다. 처리가 끝난 가루를 모으는 통에 옮기면 되는 간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뚜껑을 여는 순간 냄새가 올라오고, 가루를 붓다가 바닥에 흘리면 청소까지 해야 합니다. 일은 금방 끝나지만 선뜻 나서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주말에는 네 기계가 번갈아 식구들을 부릅니다. 빨래를 여러 차례 돌리고, 건조기는 세탁기와 본체만 다른 한 쌍이고, 식기세척기도 두 번쯤 작동시키고, 음식물 처리기는 하루 종일 돌아갑니다. 하나를 끝내고 소파에 앉으면 다른 기계가 일을 마쳤다고 알려옵니다.
이번 주말에도 세탁 완료 알림이 TV 화면에 떴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휴대폰을 들어 올렸습니다. 아내는 그런 저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도 넘어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식기세척기 완료 알림이 화면에 이어서 떴고, 주방에서는 음식물 처리기 종료음까지 울렸습니다.
휴대폰만 들여다보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저도 일어나야 합니다.
예전에는 세탁기가 베란다에서 울 때, 못 들은 척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이제는 온 가족이 같은 화면으로 동시에 알림을 봅니다.
편리해졌다는데, 도망갈 곳이 사라졌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