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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는 선생님이 불러준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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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는 선생님이 불러준 게 틀림없다

마음이 여리다는 말은 종종 듣지만 눈물이 많은 사람은 아닙니다.

학창 시절 수련회를 기억해보면, 밤까지 얼차려를 받고 구르다가 잔뜩 지치고 서러운 상황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두운 운동장에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은 뒤, 지금의 나를 키우기 위해 부모님이 얼마나 애쓰셨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순서였습니다.

주변에서 하나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앞에 앉은 친구는 고개를 숙였고, 옆에는 급한 대로 옷으로 얼굴을 닦아대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진행 방식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 같이 울어야 한다는 요구처럼 느껴졌습니다.

신파 영화도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리고,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보통 바이올린의 선율로 시작하는 음악이 커지면 저는 오히려 영화가 관객을 울리기 위해 어떤 장치를 쓰고 있는지부터 분석했습니다. 같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눈이 빨개진 채 극장을 나왔는데 저만 무덤덤한 표정으로 있으면, 냉혈한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크게 억울하지는 않았습니다. 슬픈 장면과 제 감정 사이에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사실을 괜찮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가면서 그 거리가 자꾸 무너집니다.
슬픈 장면에 우는 것은 아닙니다. 신파 영화에는 아직도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등장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치료가 필요한 아이의 후원 광고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안타깝다고 생각하며 화면을 넘겼습니다. 이제는 아이의 사연과 사진을 한참 보게 됩니다. 저 아이도 평소에는 밥을 먹기 싫다고 버티고, 부모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고, 잠들기 전까지 뛰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다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봅니다. 눈을 여러 번 깜빡인 뒤 후원 계좌를 찾습니다. 많이 보내지는 못합니다. 용돈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입금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아저씨가 미안해.


지난 5월에는 아들이 학교에서 어버이날 편지를 써왔습니다.
자기를 아껴주고 키워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들이 생각해낸 문장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편지를 쓰라고 했을 것이고, 교실에서는 부모님께 감사한 일을 떠올려보라는 설명도 했을 것 같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의 편지에 모두 비슷한 말이 적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읽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내용이 감동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문장을 아들이 손으로 썼고, 받는 사람이 저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 저를 아껴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아이를 아끼고 키우는 일은 제가 선택한 건 아닙니다. 부모가 된 뒤 그냥 매일 해온 일이었습니다. 밥을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데려가고, 학교 준비물을 챙기는 동안 아이에게 감사받아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삐뚤삐뚤한 자기 글씨로 감사하다고 적어놓으니, 갑자기 지나온 시간들이 편지지 위에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학창 시절 수련회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라는 말을 들어도 울지 않던 제가, 학교에서 시켜 쓴 것이 분명한 어버이날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했고, 지금도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는 글을 쓰게 합니다.

달라진 건 제가 부모의 입장이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때는 부모님을 생각해야 하는 아이였고, 지금은 아이가 쓴 편지를 받는 부모가 됐습니다. 눈물을 강요한다고 비웃던 장치가 아주 오랜 시간을 돌아 결국 저를 울렸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에겐남이 된 모양입니다.
눈물이 늘어난 이유를 제 성격이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화면 속 아픈 아이의 얼굴에 우리 아이를 겹쳐 보고, 편지의 상투적인 문구에서 제가 부모로 살아온 시간을 찾아냈을 뿐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기 전에 벽에 붙여둔 어버이날 편지를 다시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문장은 아이 담임선생님이 불러준 대로 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울컥했습니다.
냉혈한은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