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에서는 점심을 먹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먹는 날이 많습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난 뒤 탕비실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도시락을 꺼냅니다.
그런데 전자레인지 앞에 서면 화면에 애매한 숫자가 떠 있을 때가 있습니다.
5초, 7초, 8초.
앞에 쓴 사람이 음식이 다 데워지기 전에 문을 열고 그대로 간 겁니다. 새 시간을 입력하려면 취소 버튼을 한 번 누르면 됩니다. 수고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취소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거의 매번 몇 초가 남아 있으면 취소 버튼 한 번도 성가셔집니다. 음식을 꺼냈으면 남은 시간도 지우고 가지, 왜 다음 사람이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지 못마땅했습니다.
탕비실에 안내문을 붙이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전자레인지 사용 후 남은 시간을 취소해주세요.’
문구를 머릿속으로 읽어보니 붙이지 않는 편이 나았습니다. 회사에는 그것보다 중요한 안내가 많고, 전자레인지의 7초를 참지 못해 안내문까지 만든 상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말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점심시간에 전자레인지 앞에 서 있는 직원들을 보면 괜히 쓰는 모습을 살피게 됐습니다. 종료음이 울리기 전에 문을 여는 사람은 없는지, 음식을 꺼낸 뒤 취소 버튼까지 누르는지 슬쩍 봤습니다.
다들 용의자로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전자레인지 옆에 서서 끝까지 감시할 수도 없었습니다. 물을 마시는 척해도 한계가 있었고, 냉장고 문을 이유 없이 두어 번 여는 것도 수상합니다. 현장에서 범인을 잡더라도 “취소 버튼을 누르고 가세요”라는 말을 꺼낼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 몇 초를 문제 삼는 순간, 버튼을 안 누른 사람보다 제가 더 피곤한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매번 혼자 취소 버튼을 눌렀습니다. 숫자를 지우고 시간을 다시 설정하면서 속으로만 말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말이야 기본이 안 돼 있어.
얼마 전에도 늦게 점심을 먹으려고 탕비실에 들어갔습니다. 전자레인지 화면에는 6초가 남아 있었습니다. 취소 버튼을 누르고 도시락을 넣은 뒤 1분을 설정했습니다.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 휴대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음식이 충분히 데워진것 같았습니다. 화면을 보니 10초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만 돌려도 될 것 같아 문을 열었습니다.
그릇은 생각보다 뜨거웠습니다. 한 손으로 들었다가는 놓칠 것 같아 휴대폰을 쥔 채로 양손으로 받쳐 들었습니다. 이제 취소 버튼을 누르려면 그릇을 다시 전자레인지 안에 넣거나 옆 선반에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화면에는 10초가 떠 있었습니다.
잠깐 고민했습니다.
다음 사람이 취소 버튼 한 번 누르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릇을 든 채 탕비실을 나왔습니다.
자리로 돌아가면서 그동안 찾으려 했던 범인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도 뜨거운 국이나 음식을 들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음식을 꺼낸 뒤 취소 버튼을 누르려다 손이 모자라서 그냥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전자레인지에 몇 초가 남아 있어도 화가 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여전히 화면에 5초나 8초가 떠 있으면 취소 버튼을 누르며 속으로 투덜거립니다.
다만 사정이 있다는 사실은 기억합니다.
제가 남긴 것은 10초였고, 그릇도 꽤 뜨거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