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태어났을 때 작은 카메라를 하나 샀습니다.
DSLR은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커다란 카메라를 갓난아기 얼굴 앞에 들이대는 게 영 부담스러웠습니다. 휴대폰카메라는 지금만큼 좋지 않았던 때라, 작고 가벼우면서 사진도 제법 잘 나오는 카메라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인치 이미지 센서가 들어간 소니 카메라를 골랐습니다.
살 때는 용도가 아주 분명했습니다. 아이와 나갈 때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휴대폰보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 써보니 생각만큼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휴대폰이 훨씬 편했고, 오늘 사진을 제대로찍어봐야겠다는 날에는 아무래도 DSLR을 들게 됐습니다. 소니 카메라의 사진이 나쁜 것도 아니고 휴대성이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늘 더 편한 것과 더 좋은 것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는 해가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아이를 찍고 바로 사진을 확인해서 아내에게 보내는 데에는휴대폰이 편했습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옮기고 보정하는 과정은 그만큼 더 번거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소니 카메라는 서랍으로 들어갔습니다.
몇 년 뒤 정리를 하다가 이 카메라를 다시 발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제 썼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고, 이렇게안 쓰는 물건을 계속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나 싶었습니다. 마침 당근에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꺼냈습니다.
판매 사진을 찍으려고 상태부터 확인했습니다. 몇 년을 묵혀뒀으니 먼지라도 닦아야 하나 싶었는데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사용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깨끗했습니다. 흠집이 없었고 버튼도 멀쩡했습니다. 몇 년 된 카메라인데 상태만 보면 몇 번 안 쓴 물건이라는말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믿을 만했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한 김에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볼 겸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나왔습니다.
DSLR과 비교하면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이 크기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훌륭했습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포토샵에서 노이즈를 줄이는 것도 편해졌고, 필요한 경우 사진 크기를 키워주는 프로그램도쓸 수 있습니다. 가볍게 들고 나가서 찍은 뒤 집에서 손을 보면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근에 올릴 글에는 상태가 좋고 사용 횟수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작고 가벼워 들고 다니기편하고, 1인치 센서라 휴대폰과는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내용도 넣었습니다. 구매할 사람 입장에서 어떤점이 괜찮을지 생각하다 보니 제가 몇 년 동안 잊고 있던 장점들이 계속 나왔습니다.
글을 쓰다가 카메라를 다시 봤습니다.
이 정도면 아직 쓸 만한데.
DSLR을 가져가기 부담스러운 날에는 이걸 챙기면 될 것 같습니다. 휴대폰보다 사진 찍는 재미도 있을 테고, 결과물이 아쉬우면 요즘 프로그램으로 보정하면 됩니다. 크기도 작으니 가방에 넣어 다니는 데 별 부담도 없어보였습니다.
결국 작성하던 판매 글을 지웠습니다.
카메라는 다시 서랍에 넣었습니다. 이번에는 안 쓰는 물건을 묵혀두는 게 아니라, 조만간 다시 쓸 카메라를 잘보관해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썼습니다. 밖에 나갈 때는 늘 가지고 있는 휴대폰으로 찍으면 됐고, 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은 날에는 DSLR이 먼저생각났습니다. 작은 카메라로 찍은 뒤 보정하면 괜찮다는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사진 몇 장을 위해보정할 생각을 하니 귀찮았습니다.
며칠 전 서랍을 열었다가 소니 카메라를 다시 봤습니다.
여전히 새것처럼 깨끗했습니다. 그동안 거의 손대지 않았으니 당연합니다.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생각했습니다.
당근에 올려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