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오래 돌아다닌 카톡 이미지 하나를 봤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별일 없니?
네가 아기여서 업고 다니는 꿈 꾸었네
맛있는거 사준다니까 좋아하대 ㅎ
전에도 본 적이 있었던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마지막의 ㅎ까지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자주 아팠습니다. 여섯 살 때는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치료 방법도, 부모에게 해줄 설명도 훨씬 많겠지만 당시에는 어머니가 제 생사까지 걱정해야 했던 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머니 등에 업혀 있던 기억이 없습니다. 여동생이 등에 업혀 있던 모습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 차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장남, 장손이라는 말을 들으며 컸고 의젓해야 한다는 요구도 일찍 받았습니다. 그 기억들이 앞쪽을 차지해서인지, 어머니 등에 붙어 있던 더 어린 저는 제 머릿속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아기였으니 분명 업혀 다녔을 겁니다. 몸이 아픈 날도 많았으니 어머니가 저를 업고 병원에 간 적도 있었겠지요. 무엇을 사준다는 말에 금세 좋아했을 것이고, 어머니의 등에 붙어 잠든 날도 있었을 겁니다.
저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기억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제 아들을 봤습니다. 태어나자마자 NICU에 들어갔던 아이입니다. 자라면서 병원에 몇 번 입원했고 팔과 다리도 한 번씩 부러졌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별 생각을 다 했는데, 아이는 어느새 여덟 살이 됐습니다.
지금은 뛰어다니는 아이를 잡는 게 어렵습니다. 못하는 말도 없어서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일입니다.
그래도 아직 업어달라고 합니다. 여덟 살이라 제법 무겁습니다. 예전처럼 등에 얹은 채 가볍게 걸어다닐 수는 없지만 아직은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사준다고 하면 눈빛부터 달라집니다.
카톡 이미지를 보면서, 이 평범한 모습이 갑자기 달리 보였습니다.
제 아들도 나중에는 지금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아빠 등에 올라탄 일이나 병원에 입원했던 날, 맛있는 것을 사준다는 말에 좋아했던 기분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제 어린 시절을 어머니가 품고 있듯이, 아이가 잊어버릴 지금을 제가 계속 품고 살게 된다는 것을요.
카톡 속의 어머니는 꿈에서 깨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기는 이미 오래전에 커버렸고, 이제 별일 없느냐고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야 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그런데 꿈에서는 다시 등에 업혀 있었습니다. 맛있는 것을 사준다는 말에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ㅎ를 붙였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이 늘 행복해서는 아니었을 겁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아픈 날도 있고 걱정도 많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오래 지나고 나니 꿈에 돌아온 것은 그런 날들의 어려움이 아니라 등에 얹혀 있던 아이였습니다.
저도 아이가 여덟 살이 된 뒤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 제가 나중에 그리워할 때일 수 있다는 것을요.
보통은 한참 지난 뒤에야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데, 이번에는 조금 먼저 알았습니다.
아직 아이가 제 등에 올라오고, 맛있는 것을 사준다는 말에 좋아할 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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