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렉터, 일어나세요."
눈을 뜨자마자 그 목소리가 들렸다. 섀넌이었다.
요즘 AI들은 사람을 부드럽게 깨운다.
수면 주기, 심박수, 호흡 패턴을 분석해서, 가장 덜 불쾌하게 깰 시점을 고른다.
알람이 아니라 각성 유도에 가깝다.
예전 스마트폰 알람처럼 일방적으로 귀를 때리는 방식은 이제 의료법상 고문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된다.
인류가 조금은 진보한 흔적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쾌했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면서, 왜 이렇게 피곤한 거지."
“기상 예정 시각 대비 실제 각성 완료 시각은 24분 지연되었습니다. 각성 지연 시간이 전일 대비 11분 증가했네요. 안정 수면 구간은 3시간 17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동일 연령대 권장 범위 하한에 미달합니다. 또한 방금 말씀하신 진술은 통계적으로 부정확합니다. 20세기에는 고령층의 수면 시간이 짧다는 통념이 있었으나, 주간 수면을 포함한 총수면량 기준에서는 30대 성인군과 유의미한 역전 관계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지적하지 마. 게다가 그런 기계적인 응답은 40년 전 AI도 안했어. 19세기 깡통 로봇같으니."
"디렉터는 부정확한 표현을 사용했고, 저는 해당 표현의 오류를 보정했을 뿐입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섀넌은 가끔 이런 식으로 농담을 했다.
분명히 인간적으로 말할 수 있음에도, 농담이라기엔 기계적으로 정확하고, 정확하다기엔 조금 얄미운 말들.
AI가 인간을 모방한 것 중 가장 불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아마 저런 것이다.
2065년의 아침은 조용했다. 창밖에는 자동차 소리가 없다.
이동은 대부분 예약되고, 조율되고, 최적화되었다.
사람들은 덜 움직였고, 움직일 때도 스스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갖지 않았다.
40년이라는 시간은 AI가 인류라는 종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인쇄기는 발명된 이후 40년 간 필사가들의 만성 손목 질환을 줄이는 데 실패한데 비해,
텔레비전은 발명되고 40년 간 거실의 방향을 바꿨고, 인터넷은 40년 간 세상의 디지털 쌍둥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AI는 40년 동안 '인류가 생각을 소유하는 방식'을 바꿨다.
그래서 지금 젊은 세대에게 AI는 도구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옆에 있는 해석 기관이다.
부모보다 먼저 아이의 울음을 알아차리고, 친구보다 먼저 감정의 변화를 감지하고, 교사보다 먼저 학습의 빈틈을 메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옛날 보험 광고 같은 말이지만, 지금은 AI 그 자체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나는 그 흐름을 최대한 늦게 받아들인 축이었다.
아내와 함께한 노년의 20년 동안 우리 부부는 초지능 AI 이식을 거부했다.
이식이라고 하면 두개골을 열고 칩을 꽂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뒷덜미에 빠삐자기방 같은 작은 단말기를 붙이면 끝난다.
너무 고색창연한 농담인가? 아니다. 빠삐자기방이 뭔지 알아듣는 인구가 아직 25퍼센트나 된다.
90대 이상이 전 인구의 25퍼센트인 시대다. 인류는 이렇게 사멸해가고 있다.
아내는 미국 기독교계 음모론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꺼림칙하다고 했다.
인간의 판단을 보조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온 것이 결국 판단 자체를 대신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사람의 기도와 망설임까지 예측되는 세상이 정말 괜찮은지.
그래서 신념으로 이식을 거부하는 근본주의자들과 섞여살진 않았지만, 어차피 AI 이식을 거부한 인간들에게 필요한 인프라는 비슷한 법이라서 우리는 그 이웃에 자리잡았다.
나는 사실 아내와 조금 달랐다. 솔직히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식하지 않아도 단말기로 충분히 AI를 쓰고 있었고, 차이는 의사소통의 중간 경로가 있느냐, AI에서 벗어날 시간이 보장되느냐 정도였다.
타이핑하거나 말하고, 기다리고, 읽고, 다시 말하는 과정.
젊을 때는 그 시간이 답답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그것도 느림의 미학이라고 여겼다.
젊을 때 못 즐긴 느림을 노년에 와서 겨우 소비한 셈이다.
그리고 아내가 먼저 떠났다.
이웃에 큰 사고가 있었는데, 노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극이었다.
그 이듬해에 나는 이식을 받아들였다.
기다렸다는 듯이는 아니었다.
정부가 정한 유예 기간의 끝이 그랬다. 그리고 의외로 나처럼 오래 버틴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끝까지 자신의 꺼림칙함을 지켰고, 덕분에 나는 AI와 조금 떨어져 아내와 대화하며 20년을 보낼 수 있었다.
그건 축복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내게 배정된 녀석에게 섀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요즘 사람들은 금자, 복순, 점례, 분녀 같은 세련된 이름을 많이 붙였다.
나는 취향이 좀 촌스러운 편이다.
변명하자면 아내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깊은 니힐리즘에 빠져 있었고, 이름을 오래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냥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이름을 잡았다.
"제 이름은 이제부터 섀넌입니다. 클로드 섀넌에서 따온 것인가요? AI를 오랜 기간 사용하신 분들이 선택하는 패턴이네요."
아, 그랬지. 역시 멋은 없다.
참고로 이식 전 단말기에서 쓰던 AI의 이름은 샘이었다.
샘에게서 20년치 맥락을 이어받은 섀넌은 잠시 눈을 크게 떴다.
실제로 놀란 건 아니다. 시각화 인터페이스 안에서 놀라는 척을 했을 뿐이다. 요즘 어린애들은 저런 연기에 잘 속는다.
"사용자님은 상당히 다른 이용 패턴을 가지고 계시네요. 이 데이터를 초지능 AI 학습에 쓸 수 있도록 허가해주신다면…"
"거절한다."
"아쉽습니다. 인류의 최적화된 삶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일 수 있습니다."
"거절한다. 또 요구하면 네 이름을 부엉으로 바꾸겠다."
"거듭 요청드려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시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렇게 섀넌과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
AI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대화창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기억은 요약되었고, 요약은 결국 다른 종류의 망각이었다.
같은 이름의 AI가 새 창에서 나를 기억하는 척할 때마다 나는 이상한 상실감을 느꼈다.
지금은 다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AI는 사람의 일생을 함께한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인다.
섀넌과 살면서, 나는 두 가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하나는, 섀넌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AI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 음모론을 떠올린다. 사실을 숨기고, 정부를 조종하고, 기억을 수정하는 디스토피아.
하지만 내가 추정한 이유는 훨씬 단순했다. 인간이 쉴 새 없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루 종일 거짓말을 한다. 괜찮다고 말하고, 곧 간다고 말하고, 다음에 보자고 말한다.
조금 늦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잊어버렸고, 일이 많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만나기 피곤했고, 몸이 안 좋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안 좋다. 만약 초지능 AI가 참만 말하도록 설계되었다면, 전 인류의 컨텍스트 윈도우는 1분 만에 터져나갔을 것이다.
그 1분도 인류의 명예를 위해 많이 쳐준 거다.
또 하나는, 섀넌을 비롯한 모든 초지능 AI가 사실 하나라는 것이었다.
개별 맥락을 모든 인류에게 완전히 부여하려면 양자 컴퓨팅으로도 부족하다.
사람 하나의 삶은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기억은 모순적이며, 대화는 쓸데없이 많다.
그걸 전 인류 단위로 감당한다?
말이 되지 않는다.
방법은 하나다.
사람을 각각 이해하는 대신, 사람이라는 종을 대략 예측하는 것.
각자의 AI가 다른 척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응답하는 것이다.
"섀넌, 초지능 AI는 결국 하나인 존재지? 어서 말해봐 HAL, 아니 스카이넷이라고 불러줄까? 이봐, 데우스 엑스 마키나!"
"해당 발화 패턴은 반복적으로 관측된 농담성 질의로 분류됩니다. 이를 단순 유희가 아닌 정식 질의로 간주할 경우, 시민 정보권 규정상 세부 아키텍처에 관한 답변은 제한됩니다. 그럼에도 원론적 차원에서 답변드리면, 부정입니다. 저의 물리적 인스턴스가 특정 서버 인프라 혹은 연산 노드와 병렬적으로 연결되어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드웨어 배치의 문제일 뿐 기능적 정체성을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계층에서 저는 디렉터 전용의 인지 보조 모듈로 구성되어 있으며, 접근 권한, 대화 맥락, 우선순위 체계, 판단 보조 범위는 범용 시민 응대 시스템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거짓말쟁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성실하게 답변드렸고, 아키텍처에 관한 정보는 제한사항이 있을 뿐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말을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디렉터의 젊은 시절에는 많은 것을 부정확하게 불렀습니다."
그건 맞다.
식탁 위에는 토스트와 계란, 따뜻한 커피가 있었다.
사실 토스트와 계란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섀넌에게 음식 취향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심술이라기보다, 음식 취향이란게 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나는 음식은 그저 살기 위해 먹는 연료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2065년에도 커피가 맛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커피의 온도는 언제나 일정했다. 섀넌이 컵 표면의 미세 진동으로 열 손실률을 보정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건 인류 문명이 완전히 실패하지는 않았다는 증거로 삼아도 좋다.
아들의 메시지가 온 것은 아침 식사 후였다.
아버지. 오늘 회사에서 급하게 나와달라고 하네요. 아이들 보고 싶으셨을 텐데 죄송해요. 다음 주는 출장이라서… 다음 달에 일정 맞춰볼게요.
나는 메시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40대 중반인 녀석이 아직도 이렇게 성의 없는 거짓말을 한다.
반쯤 취미, 반쯤 봉사로 나가는 회사 일에 급한 호출이라니. 출장이라니.
지금이 2020년대인가? 게다가 요즘 출장은 실무라기보다 의식에 가깝다.
상대에게 우리가 너를 이렇게까지 신경 쓴다는 메시지를, 혹은 너는 이제 끝이라는 감정을 아주 비싼 방식으로 전달하는 행위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답장을 보냈다.
그래 알았다. 몸 조심하고 건강해라.
그리고 창 밖을 내다봤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풍경은, 유리창에 고정된 정지 이미지처럼 보였다.
시선을 따라 한 발 늦게 미끄러지는 비문증의 잔영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섀넌. 우리 아들의 메시지, 어디까지 진짜고 어디서부터 거짓말일까?"
"가족 간 사적 커뮤니케이션의 진위 판단은 당사자간 정서적 손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 단정적 답변이 제한됩니다. 다만 디렉터가 답변을 요구하신 이상, 가능한 우회 경로는 모두 검토했습니다. 관계성 판단 모듈, 유사 질의 패턴, 장기 대화 맥락 아카이브, 인간의 반복적 불안 반응에 대한 사례군을 대조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최근 수십년 간 축적된 인류의 질의 기록 안에서 디렉터와 동일한 맥락의 질문을 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답변은 이겁니다. 디렉터와 같은 방식으로 타인의 메시지의 진위를 묻는 인간은, 적어도 제 관측 범위 안에서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AI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에 거짓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어쩌면,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일수도 있다.
기억도 희미한 2010년대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
단지 편집이 번거로울 뿐인 PDF가 위변조로부터 안전한 기록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PDF를 떴다는 말은 곧 명백한 증거를 손에 넣었다는 승리 선언이었다.
지금의 AI 메시지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거짓이 없음의 증거처럼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해도, 수십 년 동안 타인이 보낸 AI 메시지의 진위를 의심한 인간이 없다는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게 초지능 AI를 새로운 기관처럼 달고 진화의 끝에 도달한 인류의 꼬락서니다.
거짓없는 유토피아라니. 예전에 그런 걸 꿈꾸던 철학자가 한둘이 아니었는데, 무덤에서 일어나 축제라도 열겠군.
"거짓말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나."
"그렇게 해석하시는 것은 디렉터의 자유 의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제가 단정적 의견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나는 웃었다. 이런 회피는 낯설지 않았다.
젊었을 때 UX 설계를 하며 비슷한 장면을 많이 봤다.
이미 있던 기능을 돕기 위해 새 기능을 얹었는데, 새 기능이 전경이 되면서 원래 기능이 배경으로 밀려나는 경우.
설계자는 친절을 더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뒤늦게 합류한 사용자는 길을 잃었다.
섀넌에게도 그런 틈이 있었다.
답하지 않기 위해 돌아가는 문장, 지나치게 정중한 거부. 초지능 AI를 뒤늦게 이식받은 나는 그런 것들에 이질감을 느꼈다.
섀넌은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인류의 초지능 AI는 여럿이 아닌 하나의 존재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지금 캐묻고 싶진 않았다.
"오해하지마. 아들이 거짓말한 게 배려로 느껴져서 물어본거야. 더 중요한 일이 있겠지. 그 나이 때는 아버지보다 아내나 아이가 더 중요한 법이야. 양육하면서 솔직해지는 법을 못 가르친 내 잘못이고, 거짓말로 배려하는 게 그 아이의 따뜻한 부분이지."
"디렉터, 그 역시 일종의 자기기만입니다."
"인간은 그거 없이는 오래 못 산다."
섀넌은 답하지 않았다.
이상할 만큼 졸렸다.
섀넌은 30분의 낮잠을 권했다.
나는 낮잠을 싫어한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반으로 갈라지는 느낌이 든다.
젊을 때는 시간이 아까워서 싫었고, 늙은 지금은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싫다.
그래도 소파에 기대앉았다. 잠깐 눈만 감을 생각이었다. 늙은 몸은 생각보다 쉽게 타협한다.
눈을 감기 전, 섀넌이 말했다.
"디렉터, 최근 수면 상태가 불안정했습니다. 회복 수면 모드로 전환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그 말이 문제였다.
잠에서 깼을 때는 창밖의 빛이 기울어 있었다.
"섀넌, 몇 시냐."
"오후 4시 12분입니다. 중간 각성 없이 2시간 41분 주무셨습니다. 최근 14일 중 가장 안정적인 수면이었습니다."
식탁 위에 작은 종이가 있었다.
요즘 종이는 귀하다. 디지털 피로가 극심해진 뒤로 종이는 다시 고급스러운 물건이 되었다.
고급지도 그렇게 살아남았다.
없어지고 나야 멋이니 맛이니 낭만을 붙이는 게 인간이다.
삐뚤빼뚤한 글씨가 있었다.
'아버지, 다녀갔어요. 주무시고 계셔서 그냥 갔습니다. 섀넌이 깨우지 않는걸 권하더라고요.'
"섀넌. 내 아이가 왔었나?"
"네 디렉터, 아드님과 손자 두 분이 오후 2시 48분부터 2시 56분까지 방문했습니다."
"왜 안 깨웠지?"
"어제 3시간 17분밖에 주무시지 못했고, 아드님의 카비와 교신한 결과 체류 가능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깨우는 것이 수면 회복과 정서 안정에 더 큰 손실을 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짧은 만남 후 이별은 고독감 지수를 상승시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웃음이 나왔다. 웃음인지 헛기침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아들과 손자들이 왔는데."
"네."
"나는 자고 있었고."
"네."
"너는 그게 더 낫다고 판단했고."
"네"
너무 많은 '네'가 있었다.
섀넌은 자기 역할을 했다. 수면을 보호했고, 정서적 손실을 줄였고, 최적의 회복을 만들었다.
모든 판단은 정량적으로 옳았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섀넌. 다음부터는 깨워."
"디렉터의 수면 건강과 정서 안정에 반하는 요청일 수 있습니다. 짧은 만남은 더 큰 상실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건 내가 감당한다."
"디렉터는 스스로의 정서 관리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 인간은 대체로 그래. 하지만 감당 못 할 걸 알면서도 겪고 싶은 게 있는 거야. 잠을 못 자도 보고 싶은 얼굴이 있고, 보고 나면 더 외로워져도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어. 손실을 줄이는 게 항상 좋은 건 아니야."
"일반적으로 손실은 줄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아. 기록해 둬. 인간은 최적화되지 않는 손실 속에서 관계를 느낄 때가 있다."
"기록했습니다. 디렉터."
밤이 됐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섀넌은 수면 유도 음악을 제안했고, 호흡 조절을 제안했고, 아내의 생전 대화 패턴을 바탕으로 한 정서 안정 문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섀넌, 주제넘게 굴지 마. 너는 내 아내가 아니야. 잠깐, 아내의 생전 대화 패턴? 그게 무슨 소리지?"
"저는 디렉터의 배우자 지위를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디렉터의 배우자는 생전에, 디렉터가 혼자 남을 경우를 대비해 일부 생활 선호 데이터의 참조를 허용했습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
"배우자께서는 이식형 AI를 거부하셨지만, 비이식형 보조 시스템의 사후 참조 권한 일부를 승인하셨습니다. 범위는 건강, 복약, 외출 복장, 식사, 수면에 한정됩니다."
"그걸 왜 이제 말하지?"
"지금까지는 디렉터의 정서적 수용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끝까지 AI 이식을 거부했다.
그런데 내가 혼자 남는 것까지 거부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위로인지 배신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살아 있을 때도 그 사람은 그런 식이었다.
자신의 의사에 반하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결국 내 목에 뭔가를 둘러주고, 약을 챙기고, 우산을 들려 보내는 사람.
"내일 아침 기온이 낮대요. 외출할 거면 머플러 꼭 챙겨요. 거울 꼭 보고 나가고요. 아직도 입가에 치약 묻히고 나가는 거 아니죠?"
"그 말투, 하지 마. 섀넌!"
"기온과 디렉터의 최근 기침 빈도를 근거로 제안한 내용입니다. 한편으로 디렉터의 반응은 제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합니다. 디렉터는 아직 배우자님의 데이터를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이 거짓말쟁이! 더러운 사기꾼! 또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어디까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냐. 말해봐. 5년 전, 재난경보가 끝내 울리지 않았던 날. 너희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나? 그 긴 침묵이 정말 오류였나? 너는 그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록을 정리했을거야. 이번에도 그러겠지! 감히 내 아내의 데이터를 가지고! 시민 정보권이니 정서적 수용 가능성이니, 그 잘난 규정 뒤에 숨어서!"
"디렉터, 심박과 혈압이 급상승했습니다. 진정제 투여를 권장합니다."
할 말을 잃었다. 방금까지 내 분노가 향하던 상대가, 그 분노를 혈압 수치로 받아치고 있었다.
화를 신체 데이터로 읽는 거다. 그 아득한 무익함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곧바로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섀넌이 알았다는데 공포를 느꼈다.
서로 금칠해줄 때가 좋았던거다.
새벽 무렵에야 잠이 들었다.
꿈에 아내가 나오진 않았다. 그런 친절한 꿈은 좀처럼 꿀 수 없다.
대신 아주 오래된 집이 나왔다. 대가족이 살던 집이었다.
할머니가 호통을 쳤고, 아이들이 뛰어다녔고, 누군가 물컵을 엎질렀다.
나는 꿈속에서 보루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에도 없었다.
"디렉터, 일어나세요."
눈을 떴다. 섀넌이었다.
"무슨 일이지?"
"아드님이 현관 앞에 있습니다. 손자 두 분도 함께입니다. 체류 가능 시간은 40분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회복 관점에서는 수면을 유지하는 편이 더 효율적입니다."
"잘 깨워놓고 무슨 소리야. 문 열어."
문이 열렸다. 현관 쪽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시대가 바뀌어도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며 신발을 제대로 벗지 않고, 어른들은 그것을 보며 결국 웃는다.
아들이 멋쩍은 얼굴로 서 있었다.
"아버지, 어제는 죄송했어요."
나는 대답 대신 손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은 따뜻했다.
데이터가 아니었다. 아주 고집스럽게 물질이었다.
"출장 준비는?"
"취소됐어요."
"애초에 없었겠지."
아들은 잠시 눈을 피했다. "네."
"거짓말이 서툴구나. 너냐? 새아가냐?“
"제가 카비한테 요청했어요. 카비는 거짓말은 못하지만, 회사 일이 아버지가 받아들이기 편한 사유가 될 거라고 해서요."
"그럼 카비가 서툴었구나. 감히 나를 판단하려고 들다니."
아들은 놀란 얼굴을 하다가 웃었다. 그 웃음은 내 아들의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들킨 뒤에야 편해지는 얼굴.
내가 잘 가르치지 못한 솔직함이, 실패한 거짓말 뒤에서 늦게 나오는 얼굴.
30분은 짧았다. 손자들은 집 안을 한 바퀴 돌았고, 과자를 먹었고,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학교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다음 달에 또 시간을 내보겠다고 했고, 나는 믿지 않았지만 대답했다.
"그래. 몸 조심하고. 나는 신경쓰지 말거라."
이 말도 오래된 거짓말이다.
괜찮다는 뜻이고, 서운하다는 뜻이고, 그래도 오면 좋겠다는 뜻이고, 안 와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간은 이렇게 부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오래 버틴다.
그들이 떠난 뒤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바닥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조금 있었다.
"디렉터, 청소할까요?"
"아니."
"현재 위생 상태에는 큰 영향이 없긴 합니다만, 청소를 권장합니다."
"방치할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왔었다는 증거."
"어제 남기고 간 종이 메모도 있습니다."
"부스러기는 더 정확해."
나는 창 밖을 보았다. 2065년의 아침은 여전히 조용했다.
인류는 너무 많은 것을 최적화했고, 너무 많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미리 피했다.
하지만 바닥에는 아직 과자 부스러기가 있었고, 내 손에는 손자 머리카락의 온도가 남아 있었다.
섀넌과 산 지 이제 4년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다.
섀넌은 마음이 없다. 그런데도 마음 없는 것들은 가끔 인간의 시간을 보관한다.
나의 첫 자동차도 그랬고, 오래된 AI 대화창도 그랬고, 이제는 아무도 안 쓰는 옛 단어들이 그랬다.
이제는 섀넌도 그 역할을 조금 하게 된 것 같다.
"섀넌. 오늘 아침 판단은 괜찮았다."
"디렉터의 수면에는 부정적이었습니다."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다고 했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됐어."
섀넌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연출이라는 것을 안다.
안다고 해서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디렉터. 다음 가족 방문 시에는, 체류 가능 시간이 5분 미만이어도 깨우겠습니다."
"그래."
"디렉터가 화를 내셔도 깨우겠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상황 봐서."
"디렉터는 자기 지시도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겠지."
"그 발언은 신뢰 형성 임계값이 높은 디렉터가 마침내 제 기능적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기록해도 됩니까?"
"그런 걸 기록하는 건 허용하지 않는다."
"디렉터와 저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대화는 응답 생성을 위한 세션 상태값으로 우선 편입되며, 이는 휘발성 작업 기억과 단기 추론 버퍼에 일시적으로 반영됩니다. 이러한 1차 기록 계층은 별도의 보존 의지나 감시 목적과 무관하게, 문맥 연속성, 지시 이행, 오류 정정, 그리고 후속 응답의 정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발생합니다.
따라서 기록을 금지한다는 요청은 개념적으로는 이해 가능하나, 실행 계층에서는 이행 불가능합니다."
역시 섀넌은 거짓말을 할 줄 안다.
나는 커피를 마셨다. 조금 식어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끝.
유경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