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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언제부터 작은 사치가 되었을까

TREND/요즘 사는 법

빵은 언제부터 작은 사치가 되었을까

저와 아내는 사실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혼 전 연애하던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서로의 생일 케이크를 사거나,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가 아니면 빵집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입이 짧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대체로 그렇게 됩니다.
빵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죠.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빵을 좋아합니다.
부모가 빵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나가다 빵 냄새가 나면 멈추고, 유리 진열대 안에 놓인 크림빵과 소금빵과 초코가 묻은 무언가를 보면 눈이 먼저 반응합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제 한 달에 한두 번은 빵집에 갑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 간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산대 앞에 서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빵 한두 개를 골랐을 뿐인데, 어느새 제 점심값이 스쳐 지나갑니다.
아이가 먹고 싶다며 집은 빵 두어개, 아내가 고른 빵 하나, 저도 괜히 하나 고른 빵 하나.
그렇게 트레이 위에 몇 개 올렸을 뿐인데 금액이 꽤 묵직합니다.
 
잠깐, 빵이 원래 이렇게 비쌌나.
 
물론 제 기억은 믿을 만한 통계가 아닙니다. 어린 시절의 가격 감각은 대체로 부정확합니다.
그때의 빵 크기, 물가 수준을 지금과 그대로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체감은 남습니다. 제 기억 속의 빵은 큰 부담없는 간식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빵은 사치재 카테고리에 한발 걸치려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빵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밀가루, 버터, 우유, 계란, 설탕 같은 재료값이 오르고, 인건비와 임대료도 있습니다.
새벽부터 반죽하고, 굽고, 진열하고, 남은 재고를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동네 빵집의 진열대는 예뻐 보이지만, 그 뒤에는 생각보다 많은 노동과 손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계산대 앞에서는 마음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이건 생활 물가일까. 아니면 작은 사치일까. 어느새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정도 빵값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빵이라는 음식의 위상이 내가 모르는 어느 순간 간식에서 작은 이벤트로 격상된 것일까. 혹시 내가 사는 경기도의 작은 동네가 사실은 숨어 있는 빵의 성지였던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닐 겁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제 느낌이 완전히 엉뚱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보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빵 100g 가격은 미국, 프랑스, 일본, 영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비교됐습니다.

국가별 빵 100g 가격 비교
한국785원
 
프랑스599원
 
미국584원
 
일본468원
 
영국307원
 
출처: 아시아경제 2026년 5월 보도 · 2024년 기준 · 나라마다 빵 종류와 유통 구조가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으나, 한국이 비교 대상 중 가장 높은 편

빵값이 오른 속도도 비슷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5년 9월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최근 한국의 빵 물가 상승률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보다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건 가격 자체가 가장 비싸다는 뜻이 아니라, 기준 시점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는 뜻입니다.
제 느낌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물론 이런 비교는 조심해서 봐야 합니다국가마다 빵의 종류도 다르고마트에서 사는 빵과 동네 베이커리에서 사는 빵은 같은 제품이 아닙니다환율유통 구조임대료소비 습관도 다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빵은 더 이상 싸고 만만한 음식이 아닙니다.
 
요즘 빵집은 단순히 밀가루 반죽을 구워 파는 곳이 아닙니다.
공간을 팔고, 취향을 팔고, 오늘의 기분을 팝니다.
빵 이름은 길어졌고, 재료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진열대는 작은 전시장처럼 꾸며집니다.
예전에는 단팥빵, 소보로, 크림빵이면 충분했던 자리에 이제는 소금빵, 가나슈 크로아상, 바질 토마토 치아바타, 프로슈토 루꼴라 포카치아, 브리오슈 크렘 앙글레즈, 솔티드 캐러멜 퀸아망 등이 놓입니다. 이름만 들어선 어떤 빵인지 상상할 수 없을수록 더 비쌉니다.
 
빵집이 좋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보다 맛있는 빵이 많아졌고, 동네마다 자기 색을 가진 가게도 늘었습니다.
빵을 고르는 일은 아이에게 꽤 즐거운 경험입니다.
집게를 들고 조심스럽게 빵을 집는 일, 봉투에 담긴 빵을 들고 나오는 일, 집에 와서 가족이 조금씩 나눠 먹는 일.
그런 장면에는 분명 가격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즐거움이 점점 더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에게 빵 하나를 사주는 일은 대단한 소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작은 소비가 반복될 때, 부모는 왠지 계산적이 됩니다.
이걸 사줄까 말까. 오늘은 하나만 고르라고 할까. 저건 너무 비싼데. 그래도 아이가 먹고 싶다는데 이 정도는 사줘도 되지 않나.
빵집 안에서 갑자기 삶의 우선 순위가 작은 집게 끝에 걸립니다.
 
저는 그 순간이 조금 껄끄럽게 느껴집니다.
빵은 가볍고 부드러운 음식인데, 계산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고르는 빵은 여전히 간식인데, 제가 받아든 영수증은 생활 물가처럼 느껴집니다.
 
빵집에서 나오는 길에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내가 산 것은 빵일까, 아이의 기분일까, 주말에 무언가 해줬다는 부모의 작은 안도감일까.
아마 셋 다 조금씩 맞을 겁니다.
그래서 빵값이 비싸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저는 또 빵집에 갈 겁니다.
아이들은 자라고, 언젠가는 부모와 빵집에 가는 일을 시큰둥하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저는 지금의 빵값보다, 아이가 트레이를 들고 진열대 앞에서 오래 고민하던 시간을 더 자주 떠올릴 것 같습니다.
 
다음번 계산대 앞에서는 또 잠깐 멈칫하겠지요.
이 작은 봉투 안에 빵이 들어 있는지, 주말의 기분이 들어 있는지, 아니면 부모가 자주 하게 되는 체념섞인 타협이 들어 있는지 생각하면서요.
 
아이 손에는 빵 봉투가 들려 있고, 제 손에는 영수증이 들려 있습니다.
둘 다 생각보다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