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에는 잠을 줄이면 삶이 늘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 인생의 3분의 1은 잠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침대의 중요성을 말하던 광고였던 것 같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을 자면 정말 3분의 1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럼 4시간만 자면 하루에 4시간을 버는 거 아닌가!
남들이 8시간 잘 때 나는 4시간만 자면, 하루를 4시간 더 사는 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꽤 그럴듯한 계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잠을 줄이면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젊은 사람다운 오해였습니다.
잠은 죽어서나 자도 된다
20대의 저는 잠에 대해 스티브 아오키식 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에 스티브 아오키의 삶을 다룬 <잠은 죽어서나>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그 제목만 놓고 보면 당시의 제 생활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세계적인 DJ도 아니었고, 밤새 공연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시험기간에 2박 3일을 안 자고 버틴 뒤, 컨디션 난조로 시험을 여러 번 말아먹은 평범한 대학생이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잠을 안 자는 일이 일종의 패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냥 잠들기엔 들끓는 혈기를 주체할 수 없었고, 생각과 열정이 잠을 거부한다고 믿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제 사상의 빈틈을 궁구하며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흑역사를 박제했습니다. 밤새 고스톱을 치며 확률과 통계에 대한 끝없는 고찰을 시도한 적도 있었고, 학과 선배의 부탁으로 경주향우회 대자보를 그릴 때는 아이디어가 샘솟아 석굴암을 모티브로 망사스타킹을 신은 부처님을 그리면서 이틀 밤을 내리 샌 적도 있습니다. 불교 동아리에서 대대적인 항의를 받은 것은 물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저는 불교의 가르침에 심취한 상태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뒤늦게 참회합니다.
피곤하다는 말은 해도, 자야겠다는 말은 잘하지 않았습니다. 잠은 필요한 것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빼앗기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하루에 4시간을 더 얻겠다는 계산은 제 몸의 회복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장부였습니다.
잠은 자면서 살아야 한다
30대가 되자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잠은 죽어서나' 자는 것에서, 그래도 '잠은 자면서 살아야' 하는 것으로 내려왔습니다.
“야, 그래도 잠은 자면서 놀아야지.”
“아, 잠은 재워주고 일을 시켜야 할 거 아냐.”
그런 말을 종종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만 그랬지 실제로는 그 시기에 철야 근무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밤을 새우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다시 아침 회의에 들어가고, 낮에는 멀쩡한 척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멀쩡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젊어서 멀쩡하지 않은 상태를 멀쩡한 상태로 착각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30대의 철야는 이상한 자부심을 줍니다.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할 수는 있습니다. 밤새 일하고 나면 몸은 망가져 있는데 마음 한쪽에는 이상한 승리감이 남습니다. 내가 이걸 해냈구나. 이 정도는 아직 버틸 수 있구나.
문제는 그 승리감이 꽤 위험하다는 데 있습니다. 버텼다는 사실이, 버텨도 된다는 증거로 오해되기 때문입니다.
잠은 반드시 자야 한다
40대 초반이 되자 '잠은 반드시 자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안 자면 티가 났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말이 헛돌고,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밤을 새우면 다음 날 힘든 정도였는데, 이제는 다음 날까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몸이 회복에 요구하는 시간과 회복하는 속도가 달라진 거죠.
그래도 철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제안서 마감일은 오고, 고객사 요청은 바뀌고, 누군가는 최종이라고 부른 파일을 다시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쪽잠이라도 잤습니다. 회의실 구석에 스티로폼을 깔고 누운 적도 있습니다.
예전에 대표님이 만들어둔 폼보드 판넬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하신 적이 있는데, 네, 범인은 접니다.
그때는 잠이 응급처치에 가까웠습니다. 침대가 아니어도 됐습니다. 베개가 없어도 됐습니다. 바닥이 조금 딱딱해도 괜찮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잠깐이라도 눈을 감는 일이었습니다. 몸이 더 이상 허세를 이해하지 못하기 시작한 겁니다.
안 자면 죽는다
40대 후반이 되자 문장은 더 짧아졌습니다.
'안 자면 죽는다.'
정말 바로 죽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몸의 체감은 꽤 단호합니다. 철야는 이제 이벤트가 아닙니다. 사고에 가깝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어쩔 수 없이 하기는 합니다. 제안서 마감일 같은 날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며칠을 앓아눕습니다.
예전에는 밤을 새우면 하루를 잃었는데, 이제는 며칠을 잃습니다.
그러니 효율로 따져도 손해입니다. 예전에는 4시간 덜 자면 4시간을 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4시간 덜 자면 다음 날 8시간이 망가집니다. 심하면 그다음 날까지 망가집니다. 수면 부족은 시간을 아껴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나중에 더 비싼 이자로 회수해갑니다. 아주 성실한 사채업자처럼요.
잠은 관리의 영역으로 간다
이쯤 되면 잠은 더 이상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관리해야 하는 일이 됩니다.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몸 상태를 보고 잠을 잘 잤는지 알았습니다. 이제는 기기가 말해줍니다. 수면 시간, 깊은 수면, 얕은 수면, 깨어 있었던 시간, 회복 상태. 분명히 저는 잤는데, 점수가 낮으면 숙제를 덜 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듭니다.
얼마 전에는 애플워치 수면 추적에 대해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손목에 차고 자면 수면을 추적할 수 있지만, 문제는 충전입니다. 밤에 차고 자면 언제 충전할 것인가. 충전하려고 빼두면 수면 추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잠을 잘 자기 위해 기기를 차야 하는데, 그 기기를 충전하느라 잠의 기록이 비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수면 추적 기기에 눈이 갑니다.
예전에는 잠을 줄이기 위해 애썼는데, 이제는 잠을 잘 잤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 기기를 고민합니다. 이 변화가 조금 우습기도 합니다.
여기서 자료를 하나 보면 조금 더 느낌이 이상해집니다.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의 연령별 수면시간을 보면, 2024년 기준 수면시간은 10대 8시간 37분, 20대 8시간 15분, 30대 8시간 6분, 40대 7시간 52분, 50대 7시간 40분으로 줄어들다가 60세 이상에서 7시간 58분으로 다시 늘어납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잠을 더 챙겨야겠다고 느끼는데, 실제 수면시간은 50대까지 계속 줄어드는 셈입니다. 이건 40대와 50대의 몸이 잠을 덜 필요로 해서라기보다, 그 나이의 생활이 잠을 덜 허락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몸은 회복 쪽으로 가자고 하는데, 일과 책임은 아직 버티라고 말하는 시기입니다.
60세 이상에서 수면시간이 다시 늘어나는 것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그 나이가 되어 갑자기 잠이 더 필요해진 것이 아니라, 그제야 잘 시간이 생긴 것일 테니까요.
그래프에 나란히 놓인 2019년 숫자를 보면 다시 한 번 이상해집니다. 2024년에는 모든 연령대가 5년 전보다 덜 잡니다. 웰빙이니, 웰니스니 외치면서 잠을 챙기자는 말은 그사이 부쩍 늘었는데, 정작 잠은 줄었습니다.
젊을 때는 잠을 관리한다는 말 자체가 이상했습니다. 잠은 오면 버티는 것이고, 부족하면 주말에 몰아서 갚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면은 운동, 식단, 혈당, 체중처럼 관리 항목이 되었습니다. 몸을 잘 운영하기 위한 필수 지표가 되었습니다.
아마 이건 저만의 변화는 아닐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잠을 꽤 진지하게 다룹니다. 수면의 질을 말하고, 회복을 말하고, 수면 루틴을 말합니다.
누군가는 빛을 조절하고, 누군가는 카페인을 줄이고, 누군가는 매트리스와 베개를 바꿉니다.
예전의 잠이 하루의 끝에 밀려나는 시간이었다면, 이제 잠은 다음 날의 상태를 결정하는 기반처럼 다뤄집니다.
예전에는 잠을 못 잔 사람이 바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이제는 잠을 못 잔 사람이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조금 피곤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쉬는 일마저 잘해야 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은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인데, 이제는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점수와 그래프가 붙습니다. 깊이 자야 하고, 오래 자야 하고, 제때 자야 하고, 일어나서도 개운해야 합니다.
잠까지 잘해야 한다니, 성실함의 영토가 너무 넓어졌습니다.
아낀 잠은 결국 돌아온다
하지만 제 몸은 이미 그쪽 편입니다.
여전히 저는 새벽 2시까지 맥북 앞에 쪼그려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아마 그럴 겁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쓰고 싶은 글이 있고, 미뤄둔 생각이 있습니다.
20대의 저는 그런 밤을 승리라고 불렀을 겁니다. 30대의 저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을 겁니다. 40대 초반의 저는 조금이라도 자야 한다고 했을 겁니다. 지금의 저는 압니다.
잠은 자야 합니다. 그것도 잘. 깊이.
50대가 되면 이 문장이 어떻게 바뀔지 벌써 조금 걱정됩니다.
아마 더 단호해질 겁니다. 8시간 못 자면 안 된다. 아니, 8시간을 지켜야 한다.
어쩌면 잠은 하루 중 가장 먼저 배정해야 하는 일정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조금씩 시간을 옮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업무와 일상과 놀이 사이에서 잠을 밀어냈습니다. 지금은 그 반대입니다.
업무와 일상에서 조금씩 시간을 떼어 잠 쪽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계산은 틀렸습니다.
제가 번 것은 순수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회복을 미뤄둔 시간, 피로를 외상으로 넘긴 시간, 나중의 몸이 대신 갚아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남들보다 4시간씩 더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만큼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늙어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후회라기보다는 수정에 가깝습니다.
20대의 저는 잠은 죽어서나 자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8살의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잠을 제대로 자야, 죽기 전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