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인 매장에 들어가면 사람이 없다는 사실보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붙어 있는 문장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대개 A4 용지에 프린트되어 있고,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죠.
도난 시 형사처벌 됩니다.
문제 발생 시 아래 번호로 연락 주세요.
CCTV 녹화 중입니다.
상품을 꺼낸 뒤 반드시 결제해 주세요.
사람이 앉아 있던 계산대가 사라진 대신, 벽과 유리문과 계산기 옆에 문장이 늘었습니다. 누군가 말해주던 안내는 종이에 인쇄되어 붙어 있고, 눈빛으로 전하던 경고는 검은 반구형 카메라가 대신합니다. 매장 안에는 점원이 없지만, 점원이 해야 할 말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무인 매장은 말 그대로 사람이 없는 가게입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보면 사람을 완전히 지운 곳은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의 역할을 여러 장치로 나눠 놓은 곳이죠. 계산은 키오스크가 맡고, 감시는 CCTV가 맡고, 안내는 종이가 맡고, 민원은 휴대폰 번호가 맡습니다. 손님은 물건을 사는 소비자인 동시에, 계산원이자, 규칙을 수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을 시도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무인 매장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말이 많습니다. 벽에 붙은 안내문이 말을 걸고, 결제 단말기의 화면이 절차를 지시하며, 냉동고에 붙은 문구가 순서를 알려줍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은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지만, 공간은 계속해서 손님을 향해 요구합니다. 여기서 결제하세요. 이 순서대로 하세요. 그냥 가져가면 안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전화하세요.
무인화는 사람을 없애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 공간에서는 사람의 부재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나타납니다.
저는 그 문장들이 재미있습니다.
어떤 매장은 최대한 친절하게 말합니다. “불편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라고 전화번호와 함께 적어 놨습니다. 어떤 매장은 처음부터 손님을 의심하는 투로 말을 건넵니다. 유리문 앞에 “무단 반출 시 신고합니다”라고 적혀 있죠. 어떤 매장은 부탁과 경고를 한 장의 종이에 함께 담습니다. “양심 결제 부탁드립니다”라는 말 아래에 “CCTV 녹화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그 두 문장이 나란히 있을 때, 무인 매장의 표정이 생깁니다.
사람이 있는 가게에서는 표정이 점원의 얼굴에 있습니다. 피곤한지, 귀찮은지, 바쁜지 어느 정도 보입니다. 무인 매장에는 그런 얼굴이 없습니다. 대신 문구의 어조와 안내문의 위치, CCTV의 개수, 이전 손님이 남기고 간 흔적이 그 가게의 표정을 만듭니다.
아이스크림 냉동고가 줄지어 있고, 그 옆에 작은 결제기가 놓여 있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보면 구조가 보입니다. 냉동고를 비추는 조명은 밝은데, 공간 전체에는 어딘가 감시받는 듯한 긴장이 있습니다.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설 필요는 없지만, 잘못 계산하면 안 된다는 부담이 생깁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끝날 일을 기계 앞에서 혼자 확인해야 하니, 편해진 만큼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무인 문구점도 비슷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장난감과 필기구가 잔뜩 놓여 있지만, 그 주변에는 늘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뜯지 마세요. 만지지 마세요. 결제 후 가져가세요. 아이를 위한 물건이 가득한 공간인데, 정작 아이를 믿지 못하는 문장도 함께 놓여 있습니다. 사람 없는 가게는 친절한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아주 예민한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편리함은 노동을 없애기보다, 손님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옵니다. 손님은 직접 스캔하고, 결제하고, 영수증을 확인합니다. 때로 문제가 생기면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해야 합니다. 가게가 조용해진 만큼 손님은 바빠집니다.
물론 무인 매장이 손님에게 노동을 전가한다고만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늦은 밤에 문이 열려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는 편합니다.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저 같은 내향인에게는 장점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계산을 끝내고 나올 수 있고, 눈치 보지 않고 물건을 고를 수도 있습니다. 점원이 없는 공간은 삭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담이 덜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무인 매장은 어떻게 보면 구멍가게, 슈퍼마켓, 편의점을 이은 다음 세대의 소형 리테일, 미래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인간적인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그 흔적은 반가운 종류만은 아닙니다. 의심, 경고, 배려, 불안이 한 가게 안에 섞여 있습니다. 사람은 없는데 사람을 상대하던 방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얼굴 대신 문구가, 목소리 대신 알림음이, 눈빛 대신 카메라가 남았습니다.
무인화가 정말 바꾸는 것은 가게에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하던 일을 누가 대신하는지, 그 일을 어떤 말투로 대신하는지, 그 과정에서 손님에게 무엇을 더 요구하는지가 함께 바뀝니다. 그래서 저는 무인 매장을 갈 때마다 매대보다 안내문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곳에는 기술보다 빠르게 도착한 생활의 변화가 붙어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