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와 여동생은 아버지를 흉내 낼 때 긴 대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눈앞에 놓인 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이게 뭐냐.”
둘 중 한 명이 이 말을 하면 다른 한 명은 바로 웃습니다. 아버지의 표정도, 목소리도, 다음에 이어질 말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뭐 하러 샀냐.”
생일 선물을 준비했을 때도 그랬고, 식사 자리를 마련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자식들이 시간을 맞추고 돈을 쓰고 나름대로 마음을 보탰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그걸 알기 때문에 아까워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보다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썼느냐는 말이 먼저 나왔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원래 말이 적습니다.
좋으면 왜 좋은지 말하지 않았고, 싫으면 왜 싫은지도 길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만날 때마다 한두 마디를 합니다.
살 좀 빼라.
돈 아껴라.
그건 왜 샀냐.
그렇게 해서 되겠냐.
한 번 들으면 잔소리인데, 몇 년을 들으면 아버지가 저를 바라보는 틀처럼 느껴집니다.
20대부터 저는 아버지 앞에서 말을 줄였습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설명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지나치게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서로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돈 아껴라”가 실은 “고생하지 마라”는 뜻이라는 걸 한참 동안 몰랐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반대로 살고 싶어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되도록 이유를 설명하는 편입니다. 하지 말라는 말만 던지지 않고 왜 그래야 하는지 말하고, 의견이 다를 때는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합니다. 결론만 던지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의 배경을 말하고, 맥락을 이해시키고, 예상되는 질문까지 미리 설명합니다.
저는 아버지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설명하지 않았고, 저는 설명하는 사람이니까요.
집에서는 제 설명이 자꾸 길어집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먼저 묻습니다. 그런데 대답을 기다리기보다, 그 행동이 왜 잘못됐는지를 먼저 설명하는 날이 많습니다.
아내가 무언가를 샀을 때도 왜 샀는지 묻습니다. 이미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린 채로 말입니다.
질문은 했지만 궁금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이게 뭐냐” 하고 끝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 뒤에 이유와 근거와 대안까지 붙였습니다. 말은 훨씬 길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 집에 처음 보는 휴대용 선풍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사주려고 점찍어 놓은 것보다 못생긴 건 둘째 치고, 이번에도 테무에서 만 원도 안 되는 물건을 산 것 같았습니다.
이런 건 좀 사지 말지.
저는 제 안의 결론을 가지고 아내에게 묻습니다.
“이게 뭐야?”
아버지와 달라지려고 말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아버지가 했던 말을 더 길게 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