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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금융 공부 5 - 은퇴와 연금 사이의 5년

STUDY/직장인의 금융 공부

직장인의 금융 공부 5 - 은퇴와 연금 사이의 5년

지난 글에 이어서

지난 글에서 부동산이 안전해 보이는 진짜 이유와, 그 안전이 어떤 조건 위에 있는지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 짧게 언급했습니다. 

제 경우 대출 상환의 마지막 10년은 은퇴 이후의 시기라고요.

이 한 줄이 노후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부동산을 가진 직장인이 진짜 두려워하는 건 집값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집값이 떨어지는 것도 두렵지만, 더 근본적인 두려움은 따로 있습니다.

안전해 보이는 자산을 계속 유지하려면 내 소득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조건은 한국 직장인 대부분 겪게 되는 이벤트로 흔들립니다.

 

바로 은퇴입니다.

 

법정 정년과 연금 사이

한국의 법정 정년은 60세입니다. 그리고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현재 기준으로 65세입니다.

이 사이에 5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5년이라는 숫자는 단순해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 직장인에게는 가장 먼저 도착하는 노후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노후를 생각할 때 보통 80세 이후를 떠올립니다.

몇 살까지 살지, 병원비는 얼마나 들지, 노후 생활비는 얼마나 필요할지를 계산합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오는 시간이 있습니다.

60세부터 65세까지의 5년입니다.

 

정년 60세를 온전히 채우는 직장인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운 좋게 정년을 채운다고 가정해도, 그 다음 5년은 소득이 사라지거나 크게 줄어드는 시기입니다. 문제는 이 시기에 지출까지 함께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출 상환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비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 부양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생활비는 계속 필요합니다. 건강보험료와 세금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월급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은퇴와 연금 사이의 5년입니다.

 

중견기업 이상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일부 직장인은 이 공백을 다른 방식으로 넘길 수 있습니다. 임기가 연장되거나, 자문 역할로 이동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다음 자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전과 비슷한 소득을 곧바로 이어가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직장인의 진짜 노후 문제는 먼 미래의 80세가 아니라, 먼저 도착하는 60세부터 65세까지의 5년일 수 있습니다.

 

5년의 공백이 만드는 것

5년의 공백을 사람들은 보통 돈 문제로 생각합니다. 수입이 없으니까,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버텨야 한다는 식입니다.

맞습니다. 우선은 돈 문제입니다.

 

하지만 돈 문제만은 아닙니다. 5년은 통장 잔고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자리의 문제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돈을 벌던 나의 역할이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30여 년 동안 매일 아침 출근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집니다.

명함이 사라집니다. 회의에서 의견을 묻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업무 메신저가 조용해집니다. 월요일과 토요일의 차이가 희미해집니다.

이 변화는 생각보다 큽니다.

 

직장 안에서는 나를 설명하기가 쉬웠습니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 사람, 어느 팀의 팀장, 어떤 일을 맡은 사람, 어떤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사람.

직함과 조직이 나를 대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은퇴 이후에는 그 설명이 사라집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돈만이 아닙니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하루를 채울 것인가. 나는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인가. 나는 어떤 역할로 살아갈 것인가. 이런 질문이 갑자기 앞에 놓입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 질문에 답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장인은 오랫동안 회사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키워왔습니다.

부장님, 팀장님, 이사님으로 불리던 사람이 어느 날 그 호칭을 잃으면,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 밖의 정체성이 있는 사람, 깊은 취미가 있는 사람, 회사 바깥의 인간관계가 넓은 사람, 퇴직 이후에도 이어갈 기술이나 역할을 준비한 사람은 이 공백을 다르게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수십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사람 중에 그렇게 준비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돈보다 먼저 흔들리는 것

저는 은퇴 후 5년의 진짜 위험이 통장이 비는 것보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데 먼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도 무섭습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통장에 돈을 넣던 나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월급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수입원이 끊긴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매달 내 노동이 돈으로 바뀌던 구조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내가 시간을 쓰면 소득이 생기고, 그 소득으로 가족을 지키고, 대출을 갚고, 생활을 유지하던 구조가 끊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퇴는 재무 이벤트이면서 동시에 정체성 이벤트입니다.

 

한국에서 4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50대와 60대에서는 암이 1위로 올라가지만, 자살 역시 주요 사망 원인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은퇴 문제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중장년층이 겪는 경제적 압박, 사회적 역할의 상실, 심리적 고립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신호로는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은퇴 이후의 위험은 하나가 아닙니다.

 

돈이 줄어듭니다. 역할이 줄어듭니다. 관계가 줄어듭니다. 하루를 설명해주던 구조가 사라집니다.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오면,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노후 준비의 첫 번째 질문

노후 준비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보통 자산 이야기부터 합니다.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어떤 상품에 넣어야 하는지, 연금은 언제부터 받아야 하는지, ETF를 사야 하는지, 배당주를 사야 하는지 같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들은 중요합니다. 저도 결국 이 질문들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60세 이후의 나를 어떤 사람으로 살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이 없으면, 노후 자산 준비가 완벽해도 절반만 준비된 것입니다.

통장 잔고가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불안이 줄어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하루의 역할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노후 준비는 얼마를 모을 것인가의 문제이기 전에, 월급이 사라진 이후에도 나를 유지할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 구조 안에는 돈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돈만 있어서는 부족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계속할 수 있는 역할, 사람들과 연결되는 관계,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하루, 그리고 내가 여전히 쓸모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저도 이 질문에 완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47세인 지금, 13년 후의 저를 어떻게 정의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회사와 일이 저를 많이 설명해주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하지만 60세 이후에도 그 설명이 그대로 통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후의 나를 갑자기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일과 경험을 바탕으로 60세 이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역할을 조금씩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작은 컨설팅일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일 수도 있습니다. 교육일 수도 있습니다. 지역사회 안에서의 역할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은 일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퇴 이후의 역할을 은퇴 이후에 찾기 시작하면 늦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결국 돈의 문제로 돌아온다

정체성 이야기를 길게 했지만, 결국 이 문제는 다시 돈으로 돌아옵니다.

60세 이후에도 나를 유지할 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은, 결국 60세 이후에도 일정한 현금흐름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 반드시 예전 직장만큼 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완전히 0이 되는 것과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것은 다릅니다.

30만 원이든, 5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은퇴 후의 작은 현금흐름은 단순한 금액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활비의 일부가 되고, 자산을 덜 꺼내 쓰게 하고, 동시에 내가 아직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줍니다.

 

이 지점에서 노후 준비는 단순한 저축 계획이 아니게 됩니다.

노후 준비는 자산을 모으는 일인 동시에, 소득이 끊긴 이후의 현금흐름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현금흐름은 금융상품에서 나올 수도 있고, 작은 일에서 나올 수도 있고, 연금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젊을 때의 돈은 주로 불리는 돈입니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돈은 꺼내 쓰는 돈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해야 노후 자산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수익률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은퇴 이후에는 수익률만큼이나 현금흐름, 변동성, 인출 순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해집니다.

, 자산을 얼마나 크게 만들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자산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안정적으로 꺼내 쓸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이 글에서는 은퇴와 국민연금 사이의 5년이 만드는 공백을 정리해봤습니다.

5년은 단순한 소득 공백이 아닙니다.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고, 매달 들어오던 현금흐름이 끊기며, 기존 자산을 지킬 힘이 약해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노후 준비는 먼 노후를 막연히 걱정하는 일에서 시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봐야 할 것은 60세부터 65세까지의 5년입니다.

이 구간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 이때 무엇으로 생활비를 만들 것인가. 이때 나는 어떤 역할로 하루를 채울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산이 있어도 현금흐름이 막히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문제를 조금 더 금융의 관점에서 보려 합니다.

노후 준비라는 흔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서 한 가지 다르게 봐야 할 게 있습니다.

노후 자산의 진짜 게임은 자산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수명을 모르는 상태에서 돈을 안정적으로 꺼내는 것입니다.

 

이 패러다임 전환을 이해하면 왜 ETF와 연금이 서로 다른 도구인지, 왜 노후 자산은 젊을 때 자산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굴려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