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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고 하는데, 안 쓰고 싶어집니다 – 기업의 AI 도입은 왜 실패하는가

WORK/AI 시대의 일

쓰라고 하는데, 안 쓰고 싶어집니다 – 기업의 AI 도입은 왜 실패하는가

요즘 기업들은 모두 AI를 말합니다.

회의에서도 말하고, 보고서에서도 말하고, 임원 메시지에서도 말합니다.

'AI를 활용해야 한다, 업무 효율을 높여야 한다, 반복 업무를 줄여야 한다.'

 

에이전시에서 프로젝트 운영을 대행하는 입장에서도 조금 압박처럼 느껴집니다.

클라이언트가 우리에게 AI를 도입해 인력비를 줄이라고 요구하는 식입니다.

그럴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도입하지 않으면 줄이지 않아도 될 인력비를, 왜 굳이 도입해서 줄여야 하는 걸까.'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말은 기업의 AI 도입이 가진 모순을 꽤 정확히 보여줍니다.

AI는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로 들어오지만, 현장에서는 종종 비용 절감의 압박으로 먼저 도착합니다.

 

어쨌든 바야흐로 AI 도입의 압력이 본격화된 시대입니다.

IT 기업이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난리도 아니라고 합니다.

교육이 열리고, 사내 세미나가 열리고, 가이드가 나오고, 부서별 우수 사용 사례가 공유됩니다.

누군가는 자료를 요약하고, 누군가는 회의록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이미지를 만들고, 누군가는 코드를 짭니다.

겉으로 보면 많은 기업이 AI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친구들에게서, 차라리 AI가 없던 때가 나았다는 탄식도 함께 듣습니다.

 

쓰라고 하는데, 안 쓰고 싶어진다

가까이에서 보면 다른 분위기가 있습니다. 

AI를 쓰라고는 하는데, 어디까지 써도 되는지 모호합니다.

특히 대기업은 보안 때문에 외부 도구가 막혀 있고, 사내 도구는 아직 답답합니다.

실제 데이터는 넣으면 안 되고, 공개 자료만 넣자니 업무와 멀어집니다.

회사는 AI를 쓰라고 하는데, 직원은 새롭게 개정된 AI 보안교육을 먼저 이수해야 합니다.

AI는 도입된 것 같지만, 일상 업무 안으로 깊게 들어오지는 못한 겁니다.

 

세미나에서 공유되는 우수 사례조차 현실과 괴리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보안상 쓰기 어려운 자료와 외부 도구를 사용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례를 만들기 위해 약간의 특혜를 받은 셈입니다.

예외가 있어야 가능한 일을, 일반 규칙 안에서 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업의 AI 도입이 실패하는 이유가 기술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술 문제는 있습니다. 보안, 비용, 도구 선택 모두 중요합니다.

기업은 개인이 아닙니다. 개인은 새 도구가 마음에 안 들면 바꾸면 되지만, 기업은 고객 정보, 영업 기밀, 법적 책임, 시스템 연동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AI를 도입한다는 말은 챗봇 하나를 켜는 일이 아니라, 조직의 정보 흐름과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더 깊은 문제는 사람 쪽에 있습니다.

 

사람은 새 도구가 아니라 '내 자리에 대한 위협'을 경계한다

제가 다니는 에이전시는 다행히 AI에 상당히 개방적인 회사입니다.

개인 AI 구독료를 지원하고, 매달 프롬프트 콘테스트를 열어 좋은 결과물에 보상도 합니다.

처음엔 프롬프트로 재미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정도였습니다. 아마 이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줘, 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바이브코딩 결과물의 수준도 꽤 높습니다.

개발자적 사고가 필요한 복잡한 결과물을 디자이너가 며칠 야근해서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생각보다 재능 있고 똑똑하다는 걸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가지를 느꼈습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결과물에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AI는 시작 비용을 크게 낮춥니다.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입으로 바꾸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완성 비용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실제 업무에 붙일 수 있는 수준으로 다듬고, 예외 상황을 처리하고, 운영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다들 발전시켜 완성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툴이 완성된 사례는 아직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시작은 쉬워졌지만, 완성은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 직무와 밀접한 툴은 잘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본 일부 사례에 불과합니다. 다만 그 장면은 꽤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기획자가 기획서를 자동화하는 툴을 만들거나, 컨설턴트가 리서치 자동화 툴을 만들어 제출하는 경우는 제 눈에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타 직군의 업무를 돕는 툴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타 직군의 업무를 이해하고 체화한 경험이니 훌륭합니다.

다만 왜 사람들은 자기 일과 아주 가까운 영역보다, 조금 거리가 있는 영역에서 AI 실험을 먼저 하는가 하는 질문은 남습니다.

 

사람들은 새 도구를 싫어해서 AI를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한 도구가 나오면 생각보다 빨리 적응합니다. 스마트폰도, 메신저도, 협업툴도 결국은 썼습니다.

AI가 어려운 이유는 조금 다릅니다.

 

AI는 일을 도와주는 동시에, 그 일을 하던 사람의 존재 이유를 흔듭니다.

엑셀을 잘 쓰면 일 잘하는 사람이 됩니다. 파워포인트를 잘 쓰면 문서 잘 만드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AI를 잘 쓰면 불편한 질문이 따라옵니다.

그럼 이 사람은 계속 필요한가.

 

이것이 기업 안에서 잘 표면화되지 않는 불안입니다.

회사는 생산성 향상이라고 말하지만, 직원은 대체 가능성으로 듣습니다.

회사는 반복 업무를 줄이자고 말하지만, 직원은 내가 하던 일이 사라진다고 느낍니다.

회사는 AI를 도구라고 말하지만, 직원은 그것이 언젠가 경쟁자가 되고, 심지어 평가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직무와 먼 것부터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자기 일에 AI를 깊이 붙일수록, 자기 자리가 줄어드는 게 먼저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게으름이라기보다 방어에 가깝습니다.

 

사람의 뇌는 회사의 생산성을 위해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생존을 위해 진화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손실회피처럼,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낍니다.

AI가 가져올 편리함보다, AI 때문에 잃을지도 모르는 내 역할과 숙련도와 자리의 위협이 먼저, 더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러니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단순히 가장 좋은 도구를 평가하고 사오는 것이 아닙니다.

AI가 직원에게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이것은 나의 도구인가, 동료인가, 감시자인가, 경쟁자인가, 나를 대체할 장치인가.

회사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직원이 스스로 답합니다.

그리고 대개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답합니다.

설명되지 않은 빈자리는 좋은 쪽으로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일자리와 평가가 걸린 문제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많은 기업은 이 정체성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쓰라고 하고, 교육을 듣게 하고, 사례를 공유하고, 생산성이 오르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직원에게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걸 잘 쓰면 내 일은 어떻게 되는가. 

아낀 시간은 나에게 돌아오는가, 아니면 더 많은 일이 들어오는가. 

내가 만든 방식은 내 것인가, 회사의 것인가.

 

누가 만들었고, 누가 가져가는가

앞으로 더 복잡해질 문제는 개인이 만든 AI 활용 자산입니다.

솔직히 저도 그런 요청을 자주 받습니다. '괜찮은 프롬프트나 업무용 툴 만든 것 있으면 다른 팀에도 공유하세요' 같은 요청입니다.

조직장인 제 입장에서 곤란한 건 '내 노력이 들어간 자산'이라는 억울함은 아닙니다.

우리 부문 업무에 맞춰 만든 것을, 맥락이 전혀 다른 팀에 이식하라는 건 결국 범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팀에서 잘 쓰고 있는 걸 공유하기 위해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곤란함이 더 큽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조직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직원 입장에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어떤 직원이 밤새 프롬프트를 다듬어 자기 업무에 맞는 에이전트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반복 업무가 크게 줄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유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좋은 사례고, 조직 전체에 퍼뜨리면 생산성이 오를 테니까요.

하지만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 에이전트는 단순한 파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시간과 시행착오와 업무 이해가 들어간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회사가 별다른 보상 없이 가져가 모두에게 배포하고, 나아가 그 사람의 필요성을 줄이는 근거로 쓴다면 어떨까요.

그 직원은 다음에도 기꺼이 공유할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의 문제입니다.

공유하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에게 무엇을 돌려줄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보상인지, 권한인지, 시간인지, 평가인지, 새로운 역할인지. 그 규칙이 없으면 개인은 자신의 노하우를 숨깁니다.

 

아마 정확히는 이런 일이 벌어질 겁니다.

직원들은 개인적으로는 AI를 씁니다.

퇴근 후 개인 계정으로 실험하고, 집에서 더 좋은 도구를 써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입니다.

그런데 회사 안에서는 그 노하우가 공유되지 않습니다.

회사는 AI를 도입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지식은 개인의 노트북 안에 숨어 있습니다.

개인은 AI를 배우지만, 조직은 AI를 배우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막으면, 아무것도 막지 못한다

보안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보안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고객 정보와 영업 기밀을 외부 도구에 넣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 기본입니다. 하지만 보안을 이유로 모든 것을 막는 방식은 너무 쉬운 해결책입니다.

 

횡령이 걱정된다고 임직원의 개별 결제를 전부 금지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대신 전결 규정과 승인 권한과 증빙과 감사 로그를 둡니다.

위험을 없애는 게 아니라, 위험이 커지지 않도록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데이터는 절대 안 되는지, 어떤 자료는 써도 되는지, 어떤 업무는 사내 도구만 써야 하는지를 세분화해야 합니다.

모두 막으면 안전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이 밖에서 몰래 씁니다.

그러면 더 위험해집니다. 통제도, 교육도, 축적도 못 합니다.

금지는 질서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비공식 사용을 만듭니다.

 

그래서 기업의 AI 도입은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다

결국 기업의 AI 도입은 정체성의 문제이고, 보상의 문제이고, 신뢰의 문제입니다.

AI를 어디에 쓸 것인가보다, AI를 쓰는 사람의 역할을 어떻게 다시 설명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자동화로 줄어든 시간을 어디에 쓸지 말하지 않으면, 직원은 그 시간이 자기 일자리에서 빠져나가는 시간처럼 느낍니다.

 

기업은 자주 어떤 AI 도구를 도입해야 할까를 묻습니다.

하지만 더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AI를 자기 편으로 느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AI는 여러모로 모순적인 위치에 놓입니다.

쓰라고는 하지만 믿지 못하는 도구.

편리하지만 불안한 도구.

잘 쓰면 칭찬받지만, 너무 잘 쓰면 자기 일을 없앨 것 같은 도구.

이런 상태에서는 조직이 바뀌기 어렵습니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가장 좋은 AI 도구를 판단해서 빨리 도입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 기술을 자기 편으로 느끼고 안심하게 만드는 것에 가깝습니다.

AI를 쓰면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일이 다른 방식으로 넓어진다는 확신.

내가 만든 것이 조직에 흡수될 때 내 기여도 함께 인정받는다는 확신.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막는 게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며 실험할 수 있다는 확신.

이 확신이 없으면 기업은 AI를 도입하고도 실패합니다.

 

그런 사례를 이전에도 많이 봤습니다.

기술은 들어왔지만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교육은 했지만 습관은 바뀌지 않고, 성과는 기대보다 작고.

 

조직은 이번에도 말할 겁니다. 역시 AI는 아직 쓸 만하지 않다고.

하지만 조직은 알고 있을겁니다. AI가 쓸 만하지 않은 게 아니란 것을.

구성원을 설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기업의 AI 도입은 단순히 조직에 기술을 도입하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직원의 불안을 확신으로 재설계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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