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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손자국이 사라지지 않는다 – 터치 세대 아이를 키우며

TREND/기기와 경험

TV에서 손자국이 사라지지 않는다 – 터치 세대 아이를 키우며

우리 집 TV에는 아이 손자국이 가득합니다.

닦아도 닦아도 다시 생깁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과자를 먹고 만졌나 보다. 손을 안 씻고 TV 앞에 갔나 보다. 화면 가까이서 뭔가를 보다가 실수로 짚었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 알았습니다.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작은아이는 TV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화면을 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거 터치스크린 아니야.”
하지만 말은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작은아이는 오늘도 TV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화면을 밉니다.
가끔은 누르고, 가끔은 옆으로 넘기고, 가끔은 무언가를 확대하려는 것처럼 두 손가락을 벌리기도 합니다.
그 엉뚱한 행동을 하면서 표정은 사뭇 진지합니다.
어이가 없긴 합니다. 그런데 또 귀엽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이상한 행동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처음 만난 화면들은 대부분 손가락에 반응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휴대폰도, 아이패드도 그랬습니다. 키오스크도,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식당의 주문 화면도 그렇습니다.
아이는 화면을 보며 자란 것이 아니라, 화면을 만지며 자랐습니다.

그러니 거실에서 가장 큰 화면인 TV가 손가락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할 수 있습니다.
화면인데 왜 안 움직이지. 이렇게 커다란데 왜 안 밀리지. 이 포스터는 누르면 열릴 것처럼 생겼는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게다가 우리 집은 애플 TV를 씁니다.
애플 TV 화면은 제가 봐도 애매합니다. 앱과 콘텐츠가 큼직한 카드처럼 배열되어 있고, 포스터들은 손가락으로 밀면 넘어갈 것처럼 보입니다. 이른바 벤토 그리드 UI 입니다.
리모컨으로 움직여야 하는 화면인데, 생김새는 터치를 부릅니다.
저라도 태어나서부터 아이패드와 휴대폰을 만지며 자랐다면, 화면을 밀어봤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더 어릴 때 집에 소니 카세트테이프 CD 플레이어가 있었습니다.
2010년대 어린 자녀를 키운 부모님들은 기억할 것 같은데, 영어 동요나 동화 CD를 틀어주던, 손잡이가 달린 작은 오디오였습니다.
그 플레이어에는 큼직한 버튼들이 있습니다. 재생, 정지, 앞으로 감기, 뒤로 감기.
누르면 딸깍 하고 들어가고, 멈출 때는 다시 튀어나오는 버튼 말이죠.
그런데 아이는 그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밀거나 문질렀습니다. 마치 화면을 넘기듯이요.

그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버튼은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손가락에 힘을 줘서 안쪽으로 밀어 넣고, 딸깍하는 반응을 받아야 하는 물건.
그런데 아이에게 버튼은 표면 위의 표시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손끝으로 스치면 반응해야 하는 무엇. 아이에게는 버튼도 화면의 일부처럼 보였던 것인지 모릅니다.

문제는 저와 아이가 배운 기계의 기본값이 너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작은아이는 제가 마흔에 낳은 아이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와 저 사이에는 나이 차이만이 아니라, 기계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도 꽤 크게 놓여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기계는 대체로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버튼은 꾹 눌러야 했습니다. 다이얼은 끝까지 돌려야 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를 되감으려면 버튼을 누른 채 계속 손가락에 힘을 줘야 했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려면 아주 미세하게 살살 돌려야 했습니다. 누르는 느낌, 돌아가는 느낌, 걸리는 느낌, 딸깍하는 소리. 제대로 작동했는지 손끝으로 먼저 알 수 있었습니다.
잘 안 되면 조금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TV가 지지직거리면 안테나를 만지고, 그래도 안 되면 본체를 툭툭 쳤습니다.
그러면 종종 안 되던 게 됐습니다. 기계와 사람 사이에는 약간의 물리적 협상이 필요했던 시기죠.

하지만 아이에게 화면은 다릅니다. 힘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살짝 닿으면 됩니다.
밀면 넘어가고, 벌리면 커지고, 누르면 열립니다. 화면은 저항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아이에게 기계는 조작하는 물건이라기보다 반응하는 표면에 가깝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떤 물건이 잘 작동하려면 물리적인 확신이 필요합니다.
버튼이 들어가고, 스위치가 넘어가고, 다이얼이 돌아가야 안심합니다.
그래서 물리감 없는 터치식 버튼만 있는 제품을 보면 약간 불안합니다. 인덕션 같은 것 말이죠.
눌렀는지 안 눌렀는지 알 수 없고, 켜진 건지 꺼진 건지 화면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반대로 아이는 물리 버튼을 낯설어합니다.
리모컨으로 방향키를 여러 번 눌러 이동하는 것보다, 그냥 화면을 직접 미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아이에게 리모컨은 조작기의 본체가 아니라, 화면 대신 만져야 하는 불편한 우회로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TV는 애매한 UI를 가진 물건이 되었습니다.
화면은 점점 더 스마트해졌습니다. 메뉴는 앱처럼 생겼고, 콘텐츠는 카드처럼 배열되고, 추천 화면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조작은 여전히 손에 쥔 작은 리모컨으로 합니다. 화면은 터치될 것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멀리서 조종해야 합니다.
어른은 그 간극을 이해합니다. 화면이 비슷하게 생겨도 조작 방식은 다를 수 있다고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분류하지 않습니다. 화면은 화면이고, 화면은 만지면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TV를 미는 아이는 틀렸다기보다, 자신이 배운 세계의 규칙을 적용하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조금 우습고, 조금 이상하고, 조금 쓸쓸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세계는 제가 자라던 세계와 다릅니다.
저는 기계를 물리력으로 얼르고 달래며 자랐고, 아이는 화면이 부드럽게 응답하는 세계에서 자랍니다.
저는 물리적인 버튼과 다이얼과 스위치로 세상을 배웠고, 아이는 터치와 스와이프와 핀치 줌으로 세상을 배웁니다.

그러니 아이의 손자국은 단순히 더러운 얼룩만은 아닙니다.
그건 아이가 세상을 배운 방식의 흔적입니다.
화면은 만지면 반응한다고 믿는 세대의 작은 서명입니다. 동시에 제가 그 세계를 조금 늦게 따라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TV 화면을 계속 손으로 밀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오늘도 말합니다.
"그거 터치스크린 아니야."
그리고 오늘도 TV를 닦습니다.
그러면 작은아이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알아들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TV 앞에 서서 손가락을 뻗습니다.
화면 속 카드가 옆으로 넘어갈 것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번에는 정말로 넘어갈 것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이 아이가 더 크면 TV가 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겁니다.
아니면 그때쯤의 TV는 정말로 터치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스탠바이미나 더 무빙스타일 같은 이동식 소형 TV는 터치가 되기도 하고요.
그때 아이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부터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했잖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도 화면의 손자국을 닦습니다.
닦아낸 자리에 곧 다시 새로운 손자국이 생길 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