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톡에는 메시지를 읽지 않은 사람의 수가 표시됩니다.
단톡방에 세 명이 있으면, 두 사람이 안 읽었을 때 2가 뜹니다. 누군가 읽으면 숫자는 하나씩 줄어듭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들 바쁘고, 메시지는 언젠가 읽히고, 숫자는 알아서 사라집니다. 평소에 저는 이 숫자를 거의 의식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사라져야만 하는 순간에 사라지지 않을 때입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저는 고객사 워크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늘 그렇듯 일정은 시작하자마자 망가졌고, 모든 일은 일정보다 급하게 돌아갑니다.
저는 택배를 기다릴 수 없어, 팀원 둘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맡긴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점검을 하다 보니 빠진 물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별것 아니었습니다. 오는 길에 사 오면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것도 좀 사다 주세요.’
그리고 숫자 2가 떴습니다.
여기까지는 정상입니다. 메시지를 보냈고, 아직 아무도 안 읽었고, 그래서 2가 뜬 겁니다.
이건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저는 다른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2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3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숫자는 그대로 2였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을 압니다. 둘 다 휴대폰을 손에서 떼어놓는 부류가 아닙니다.
화장실에도 가지고 가고, 밥을 먹으면서도 보고, 길을 걸으면서도 봅니다.
그런 두 사람이, 동시에, 메시지를 안 읽고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이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인류 지성의 금자탑. 망상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1단계 - 짜증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당연히 가벼운 짜증이었습니다.
심부름을 부탁했는데 답이 없다. 그것도 둘 다. 혹시 일을 마쳤다고 벌써 마음이 풀어진 건 아닌가. 어디 카페에라도 들어가 앉아서, 수고했다며 서로를 치하하느라 휴대폰은 보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일은 아직 안 끝났는데. 빠진 물건이 있는데.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짜증은 합리적인 시나리오를 좋아합니다. 짜증의 단계에서 인간은 상대방을 약간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설정합니다. 그래야 화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단계 - 걱정
그런데 짜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0분쯤 지나자, 짜증의 자리에 다른 감정이 슬그머니 들어왔습니다.
이상한데. 아무리 그래도 둘 다 이렇게 오래 안 볼 리가 없는데.
한 명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두 명이 동시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길을 건너다가, 혹은 무거운 짐을 들다가, 혹은 그 밖의 무언가가.
걱정은 짜증과 달리 상대방을 무력한 사람으로 설정합니다.
방금 전까지 카페에서 노닥거린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 갑자기 어떤 사고의 잠재적 피해자가 됩니다.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5분 만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은, 그 평가가 그 사람과 별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저 제 불안을 두 사람의 침묵에 덧칠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3단계 - 위안
걱정이 너무 커지자, 이성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친절하게도, 불안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럴듯한 위안을 자동으로 생성합니다.
별일 아닐 거야. 아마 길에서 외국인이 길을 물었을 거야. 여기 청담동이잖아. 관광지도 가까우니까. 두 사람이 더듬더듬 영어로 길을 알려주느라 정신이 없는 거겠지. 둘 다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니까,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래, 분명히 그런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이 위안에는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저는 두 사람의 안전을 빌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영어 실력을 폄하하고 있었습니다.
걱정과 무례가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위안이라는 것은 원래 논리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만 가라앉히면 되니까요.
4단계 - 파국
그러나 자기위안은 외부의 자극 하나에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마침 그때 제가 보고 있던 인터넷 포털 화면에 뉴스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달리던 차가 인도로 돌진하는 사고가 있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지금 벌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전날 뉴스였을 겁니다. 위치도 회사 근처가 아니었습니다.
그 기사와 저의 팀원 둘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불안한 정신은 논리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화면 속 기사와 사라지지 않는 숫자 2가, 제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졌습니다. 식은땀이 났습니다. 어쩌지. 내가 심부름을 시켜서. 그 물건 하나 때문에. 별것도 아닌 그 물건 때문에.
이 단계에 이르면 인간은 이미 이후의 동선을 짜고 있습니다.
팀원과 가족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회사에는 어떻게 보고하나. 애초에 내가 심부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5단계 - 해소
그때 답장이 왔습니다.
팀장님 늦게 확인해서 죄송해요 둘 다 양손에 짐을 들고 있어서 카톡을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양손에 짐을 들고 있었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 15분 동안 제 머릿속에서는 분노가 일었고, 걱정이 자랐고, 외국인이 등장했고, 두 사람의 영어 실력이 도마에 올랐고, 뉴스 속보가 끼어들었고, 식은땀이 났고, 이후의 동선까지 그려졌습니다.
그동안 현실에서 벌어진 일은 단 하나였습니다. 두 사람이 양손에 짐을 들고 걷고 있었던 것.
저는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곧,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라지지 않는 숫자 2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숫자 2는 텅 빈 화면이었고, 저는 거기에 15분짜리 단편영화 한 편을 상영했습니다. 시나리오, 감독, 주연, 관객까지 전부 저 혼자 맡아서.
생각해보면, 메시지를 보낸 상대가 제 상사였다면 저는 15분 동안 영화를 찍지 않았을 겁니다.
'바쁘겠지' 하고 말았을 텐데, 팀원이 안 읽자 저는 짜증부터 냈습니다.
같은 침묵인데 누구의 침묵이냐에 따라 제 반응이 달라진다는 건, 제가 그 숫자에서 읽으려던 것이 팀원의 안녕이 아니라 '내 말이 즉시 닿고 있다는 확인'이었을겁니다.
그 뒤로 저는 사라지지 않는 숫자를 조금 다르게 봅니다.
숫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화면일 뿐이고,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언제나 저입니다.
다음부터는 자동차가 인도를 덮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합니다.
이 사람, 그냥 양손에 짐을 들고 있는 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