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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한 걸까, 추천받은 걸까 – 알고리즘이 취향을 흔드는 시대

TREND/요즘 사는 법

내가 좋아한 걸까, 추천받은 걸까 – 알고리즘이 취향을 흔드는 시대

저는 스스로 취향이 꽤 확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인정 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물건을 고를 때 기준이 비교적 분명한 편입니다.

배경이 되는 물건은 최대한 조용한 것이 좋습니다. 눈에 띄지 않고, 쓰는 사람보다 앞서 나서지 않고, 오래 보아도 피곤하지 않은 것. 디자이너로 치면 재스퍼 모리슨이나 후카사와 나오토 쪽에 가까운 물건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물건이 조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실의 배경이 되는 것들은 최대한 물러나 있으면 좋지만, 전경에 놓이는 물건은 가끔 아주 튀어도 괜찮습니다. 필립 스탁이나 마크 뉴슨의 제품처럼, 갑툭튀인데 이상하게 설득되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취향은 대충 이렇습니다.

배경은 조용하게, 전경은 가끔 특이하게.

 

이 정도면 저는 제 취향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알고리즘은 귀차니즘을 건너뛴다

그런데 요즘 물건을 고르다 보면 그 믿음이 가끔 흔들립니다. 제 취향대로 고르려면 생각보다 많은 수고가 필요합니다. 검색창을 열고, 브랜드를 확인하고, 가격 비교 사이트를 보고, 리뷰를 읽어봐야 합니다. 때로는 해외 사이트까지 뒤지고, 국제 배송이 안 될 경우 구매 대행사를 통해 배송대행지 지정이라는 귀찮은 일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고르는 일인데 어느 순간 머리 속에 소더비나 크리스티가 펼쳐집니다.

 

알고리즘은 그 과정을 건너뜁니다.

제가 찾기도 전에 제 앞에 물건을 가져다 놓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꽤 그럴듯합니다. 아니, 솔직히 너무 그럴듯합니다. 제가 원래 좋아하던 물건은 아닌데, 그 물건이 놓인 장면이 좋고, 사용하는 방식이 좋아 보이고, 소개하는 사람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 물건을 잘 쓰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산 적이 있습니다.

제 취향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했습니다. 그런데 숏폼 콘텐츠가 너무 그럴듯했습니다. 제품보다 장면이 먼저 들어왔고, 기능보다 분위기가 먼저 설득했습니다. 광고라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의 추천처럼 보였습니다. 제품 보는 안목이 있는 친구가 지나가듯이 던진 말 같았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아. 너도 한 번 써 볼래?

 

문제는 그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겁니다.
그렇게 산 물건 하나가 지금도 집에 있습니다. 도착한 날 책상에 올려놓고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광고에서 본 건 그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놓여 있던 배경이었다는 걸요. 화면 속에서는 분명 근사했는데, 우리 집에 놓으니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게 들어오면 집 전체가 조금 더 세련되어 보이리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물건에 그런 힘은 없었습니다. 저는 물건을 고른 게 아니라, 그 물건이 빌려 쓰던 배경을 산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만의 민망한 고백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스미디어 2025 NPR 요약보고서를 보면, 숏폼 동영상 광고와 SNS 피드 광고는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숏폼 동영상 광고는 전체 응답자 기준 구매 응답이 8.1퍼센트, SNS 피드 광고는 5.0퍼센트로 나타났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광고가 피드 속 콘텐츠처럼 지나가다가 실제 결제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큰 수치입니다.

광고 유형별 구매 퍼널
검색광고
접촉73.4
 
클릭40.5
 
구매15.4
 
숏폼 동영상 광고
접촉54.8
 
클릭20.5
 
구매8.1
 
배너광고
접촉69.0
 
클릭22.2
 
구매7.9
 
카카오 메신저 광고
접촉60.1
 
클릭17.1
 
구매7.9
 
동영상 광고
접촉65.1
 
클릭22.5
 
구매5.9
 
SNS 피드 광고
접촉44.2
 
클릭14.2
 
구매5.0
 
출처 · KT 나스미디어 2025 NPR 요약보고서(전체 응답자 1,900명, 단위 %) · 막대 길이는 최댓값(검색광고 접촉 73.4)을 기준으로 한 상대 비율. 접촉 후 구매 전환율이 아닌 전체 응답자 기준 응답 비율임.

다만 이 수치는 인스타그램 단독 구매 전환율이 아닙니다. 광고 유형별 전체 응답자 기준 구매 응답 비율입니다. 또 접촉한 사람 중 몇 퍼센트가 구매했는지를 뜻하는 접촉 후 구매 전환율과도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자료는 인스타그램 광고가 몇 퍼센트의 구매를 만든다는 증거라기보다, SNS 피드와 숏폼 광고가 이미 구매와 꽤 가까운 위치에 들어와 있다는 참고 자료로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광고는 원래 사람을 설득합니다. 그런데 요즘 광고는 이전의 광고처럼 오지 않습니다. 사용기처럼 오고, 후기처럼 오고, 브이로그처럼 오고, 누군가의 일상처럼 옵니다. 물건을 사라는 말보다, 이 물건이 있는 생활을 먼저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저는 물건에 혹한 게 아니라, 그 물건이 놓인 장면에 혹한 것입니다.

 

알고리즘은 내가 흔들릴 만한 순간을 찾아낸다

며칠 전 가디언지에서 읽은 기사는 알고리즘 피드가 개인 취향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고 썼습니다. 예전에는 잡지, 친구, 매장, 지역, 우연한 발견 같은 것들이 취향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소셜미디어와 스트리밍 플랫폼, 전자상거래 사이트의 추천 피드가 취향 형성에 깊게 개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내가 정말 좋아한 것인지, 반복해서 보았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찔렸습니다.

저는 인스타그램을 거의 보지 않게 된 뒤로 그런 충동구매가 확실히 줄었습니다. 제 취향이 갑자기 단단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냥 흔들릴 만한 장면을 덜 보게 된 것에 가깝습니다. 제 취향이 이긴 것이 아니라, 유혹의 빈도가 줄어든 셈입니다.

 

이건 약간 민망한 인정입니다.

저는 취향이 확고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비교적 안전한 환경 안에서 확고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추천 피드가 계속 들어오고, 숏폼 광고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고, 제품보다 장면이 먼저 설득하는 환경 안에서는 제 기준도 생각보다 자주 흔들립니다.

 

알고리즘은 제가 좋아하는 것만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제가 흔들릴 만한 순간을 찾아냅니다.

가령 저는 조용하고 미니멀한 물건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알고리즘은 물건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미니멀한 물건을 쓰는 사람의 책상, 아침, 조명, 커피잔, 정돈된 침대까지 함께 보여줍니다. 물건 하나가 아니라 작은 생활 양식을 묶어서 보여줍니다. 저는 제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을 가진 사람의 하루를 잠깐 빌려보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하루는 대체로 저의 하루보다 더 좋아 보입니다.

 

달라진 것은 속도와 빈도다 

그래서 헷갈립니다.

내가 이 물건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저 장면에 들어가고 싶은 걸까. 내가 이 색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피드가 반복해서 보여준 색에 익숙해진 걸까. 내가 필요해서 고르는 걸까. 아니면 지금 내 생활에서 비어 있는 무언가를 제품이 대신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고르는 걸까.

 

물론 예전에도 취향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잡지도 영향을 주었고, 친구도 영향을 주었고, 매장 진열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옷차림, 누군가의 가방도 취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알고리즘만 탓하는 것은 단순한 일입니다.

달라진 것은 속도와 빈도입니다.

 

예전에는 제가 찾아가야 했습니다. 서점에 가고, 매장에 가고, 잡지를 넘기고, 친구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취향의 후보들이 저를 찾아옵니다. 제가 피곤할 때도 오고, 별생각 없을 때도 오고, 밤에 누워 있을 때도 옵니다. 심지어 제가 찾고 있던 것보다 더 그럴듯한 얼굴로 옵니다.


그런 환경에서 취향을 유지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취향은 단지 좋아하는 목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지나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너무 그럴듯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별로인 것을 거절하는 것보다, 꽤 괜찮아 보이는 것을 보류하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취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제 취향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조용한 물건을 좋아하고, 가끔 특이하게 생긴 물건에 끌립니다. 여전히 배경은 물러나 있기를 바라고, 전경에는 작은 예외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기준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 그 기준이 매일 시험받고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알고리즘은 제 취향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 취향과 비슷한 얼굴을 한 다른 욕망들을 계속 보여줍니다. 제가 좋아할 법한 것. 제가 필요하다고 착각할 만한 것. 제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요즘 저는 사고 싶은 게 생기면, 그게 우리 집 어디에 놓일지를 먼저 그려봅니다. 그 물건이 우리 집에 어울리면 사고, 그 물건이 놓인 남의 장면만 떠오르면 멈춥니다. 시시한 규칙이지만, 사고 나서 후회할 것과 아닐 것은 대개 거기서 갈립니다.

 

그러니 취향을 지킨다는 건, 알고리즘을 거부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추천받은 것을 무조건 의심하는 일도 아닐 겁니다. 가끔은 추천받은 것 중에도 좋은 것이 있으니까요.

 

다만 제가 좋아한 것과 혹한 것을 늦게라도 구분해보는 것 정도가 지금의 취향을 지키는 저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

 

 

*참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