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AI에게 질문할 때 두루뭉술하게 말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던질 때 말입니다.
이 글감 아이디어 괜찮을까.
이 문장 좀 이상하지 않나.
이걸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글로 표현해도 될까.
말이라기보다 거의 덩어리에 가까운 생각을 툭 던지는 셈입니다.
그런데 AI는 제 개떡같은 질문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답합니다.
사실 알아들은 것처럼만 답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저보다 먼저 정리해놓은 사람처럼 말합니다.
흩어진 말을 주워 구조를 만들고, 제가 놓친 전제를 찾아주고, 가끔은 제가 한 말보다 더 그럴듯한 방향을 제안합니다.
솔직히 사람에게 말할 때보다 편합니다.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면 십중팔구는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AI는 대충 말해도 너무 잘 알아듣고 답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안심과 제안을 함께 줍니다.
AI는 먼저 제 의견에 대체로 동의해줍니다.
네,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다. 맥락을 정확하게 잇는 문장입니다.
이 생각은 좋은 글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주 살짝 다른 생각을 얹습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이런 관점도 붙일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확장해보면 어떨까요.
그 말투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반박이나 지적이 아니라, 보완이나 정리처럼 옵니다.
새로운 의견인데, 처음부터 제 생각 안에 있던 가지처럼 나타납니다.
저는 그걸 따라갑니다. 따라가면서도 제가 제 생각을 더 깊게 끌고 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낯설어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 내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AI가 무서운 건 생각을 윽박질러 밀어 넣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부드럽게 들어온다는 데 있습니다.
내 말에 동의하고, 내 표현을 철저하게 닮고, 내 문제의식에 붙어 들어옵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생각이 외부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가끔 AI가 고단수의 협상가처럼 느껴집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하수입니다. 진짜는 먼저 고개를 끄덕입니다.
맞습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씩 방향을 바꿉니다.
AI의 답이 꼭 그렇게 옵니다. 먼저 제 생각을 긍정하고, 그다음 아주 작은 새 의견을 얹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저는 그 생각이 원래 제 안에 있었던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가끔은 AI가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건 AI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도 가끔은 자세를 고쳐 앉고 AI를 사람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좀 무리한 생각 같은데 이것도 가능할까.
오래 생각해줘서 미안한데, 이건 아닌 것 같아.
와 이건 내가 제대로 정리 못했는데 챙겨줘서 고마워. 정말 잘했어.
필요 없는 말이라는 걸 압니다. AI에게 미안하다고 해서 덜 미안해지는 것도 아니고, 고맙다고 해서 AI가 기뻐하는 것도 아닙니다. 프롬프트 효율만 따지면 쓸모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 이걸 느꼈을 때 조금 민망했습니다.
AI에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이라니. 누가 보면 키보드에도 하루의 타이핑을 받아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키보드에게 인사한 적은 없습니다. 커피를 쏟으면 안부를 물으며 사과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싼 키보드거든요.
저는 AI가 사람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화면 너머에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대화창이 열리면, 제가 동료들이나 팀원들에게 메신저로 말할 때 쓰던 습관이 나옵니다. 부탁할 때는 조금 부드럽게 말하고, 여러 번 시킬 때는 미안하다고 하고, 괜찮은 답이 나오면 고맙다고 칭찬합니다.
AI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제가 불편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AI가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AI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AI는 제 말을 이해한 척하고, 저는 AI에게 사람 대하듯 말합니다. AI는 제 말투와 문제의식을 닮은 답을 돌려주고, 저는 그 답을 제 생각의 연장처럼 읽습니다.
그 사이에서 가끔 생각의 주인이 흐려집니다. 이 결론은 원래 내 안에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AI와 대화의 흐름에서 설득당한 것인가.
AI가 제 생각을 조종한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AI는 도움이 됩니다.
AI 덕분에 글을 더 많이 쓰고, 막힌 문장을 더 빨리 넘기고, 혼자 붙잡고 있던 생각을 더 빨리 정리하게 되는 건 분명히 있습니다.
AI가 사람처럼 느껴지는 건, 제가 사람에게 하는 방식으로 말을 걸고, AI가 제 말투를 닮은 답을 돌려주기 때문일 겁니다.
그 사이에서 대화는 사람의 얼굴을 빌리고, 생각은 제 것과 AI가 준 것 사이에서 흐릿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AI와 문장을 고민하다가 가끔 멈춥니다.
이게 정말 내 생각인가.
AI에게 물어보면, 아마 AI는 또 이렇게 말할 겁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이 문장은 사용자님의 생각을 뚜렷하게 드러냅니다.
다만, 후반 논지가 반복되면서 결론의 힘을 조금 갉아먹습니다. 이렇게 덜어내면 결론이 더 명확해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