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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용실에서 작아진다

LIFE/일상의 기록

나는 미용실에서 작아진다

저는 미용실이 조금 무섭습니다.
 
머리를 자르는 일이 무서운 건 아닙니다. 
저는 어린이가 아니라 40대 중년 남성입니다. 당연히 가위도 바리캉도 무섭지 않습니다. 
무서운 건 대화입니다.
 
저는 내향인입니다. 모르는 사람과 갑자기 대화를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오래 다닌 미용실에서는 선생님이 제 성향을 압니다. 
필요한 말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조용히 머리를 잘라줍니다. 
저는 그 침묵이 고맙습니다. 돈을 내고 머리를 자르는 곳에서, 침묵까지 서비스로 받는 기분입니다.
 
문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미용실에 가야 할 때입니다.
그때부터는 약간 긴장합니다. 
오늘 처음 뵙겠습니다, 정도로 끝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미용실의 대화는 대부분 예상보다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어디 사세요. 무슨 일 하세요. 오늘 쉬는 날이세요. 주말에는 뭐 하셨어요. 결혼하셨어요. 아이는 있으세요.
 
별 질문이 아닌 건 압니다. 미용사분도 분위기를 풀려고 묻는, 이를테면 아이스 브레이킹입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 제 신상정보부터 어릴 때 잘못했던 일까지 모두 털어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악명 높은 자백실에 들어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수사관이 아니라 미용사인 장면이랄까요. 
아무튼 저는 거기서부터 약해집니다.

그래도 대화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습니다. 
적당히 웃고, 짧게 대답하고, 제가 먼저 새로운 주제를 열지 않으면 됩니다. 
제 안의 모든 사회성을 끌어모으면 3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정말 곤혹스러운 건 거울입니다.
미용실 의자에 앉으면 앞에 큰 거울이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너무 큽니다. 피할 곳이 없습니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습니다. 옆을 보면 미용사분과 눈이 마주칠 것 같고, 아래를 보면 너무 소극적인 사람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앞에 있는 제 얼굴을 봅니다.

저는 제 얼굴을 오래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주 잘생겨서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얼굴이면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미적 기준이 낮은 사람도 아닙니다. 나름 엄격합니다. 
다만 그 기준을 제 얼굴에 적용하면 좋을 게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르시스트도 아닙니다. 그래서 미용실 거울 앞의 시간은 길어집니다.

평소에는 제 얼굴을 그렇게 오래 볼 일이 없습니다. 
아침에 세수할 때도 이 정도로 진지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늘 저를 바라봐주는 아내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까지 듭니다.
가운을 두르고, 목에는 수건이 감겨 있습니다. 머리는 젖어 있거나 반쯤 정리된 상태입니다.
안경을 벗으면 얼굴은 더 무방비가 됩니다. 뽀로로가 그렇듯이 사람도 그럴 때 더 약해 보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눈을 감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열심히 머리를 잘라주시는데 제가 눈을 감고 있으면 잠든 사람처럼 보일까 봐 신경이 쓰입니다. 
너무 편해 보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숙면을 취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눈을 뜨고 있자니, 거울 속의 제가 저를 보고 있습니다.
그 시간이 참 깁니다.
 
머리를 자르는 시간은 보통 길어야 30분쯤일 겁니다. 
그런데 미용실 거울 앞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릅니다. 
아마도 불편함의 중력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앞머리를 자르는 동안에도 저는 여러 생각을 합니다.
 
얼굴이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나.
턱선은 어디로 갔나.
나는 왜 머리를 자르러 와서 인생을 점검하고 있나.

미용사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제 머리를 잘라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 쪽입니다. 저는 머리를 맡기러 왔는데, 동시에 제 얼굴을 너무 오래 맡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머리가 정리되고, 미용사분이 말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르게 답합니다.
네. 정말 고생스러웠습니다.

내향인에게 미용실은 머리를 자르는 곳이기 전에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낯선 대화를 견뎌야 하고, 거울 속 자기 얼굴을 오래 봐야 합니다. 
눈을 감아도 될지 말지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혼자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머리는 계속 자랍니다. 
이게 가장 잔인한 부분입니다. 한 번 다녀오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머리는 다시 길어지고, 저는 다시 예약을 해야 합니다. 
오래 다니던 미용실에 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잘라주는 곳. 
제게는 그런 미용실이 안식처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또 낯선 미용실의 문을 열어야 할 겁니다. 
가운을 두르고, 거울 앞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척 제 얼굴을 바라봐야 할 겁니다. 
미용사분이 말을 걸면 적당히 대답해야 하고, 말을 걸지 않으면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척해야 합니다.
 
저는 또 제 발로 미용실에 갈 겁니다.
머리는 자라니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