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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벤트 앞에서 문장력은 왜 무너지는가

LIFE/일상의 기록

리뷰 이벤트 앞에서 문장력은 왜 무너지는가

배달앱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 것은 식단 계획이 아닙니다. 

리뷰 이벤트 앞의 자존심입니다.


음료 하나를 준다거나, 사이드 메뉴를 하나 더 준다고 합니다. 

저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지만, 사실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습니다. 주문 요청사항에 조심스럽게 적습니다.

리뷰 이벤트 참여합니다.

 

이 문장을 쓰는 순간 작은 계약이 시작됩니다. 

가게는 저에게 무언가를 더 주고, 저는 나중에 리뷰를 남겨야 합니다. 

계약서는 없지만 마음에는 확실한 의무감이 생깁니다. 공짜로 사이드 메뉴 하나를 받았으니,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그 최소한의 성의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음식은 맛있게 먹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엔 정말 맛있습니다. 

배고플 때 도착한 음식 앞에서 저는 관대한 사람입니다. 뜨겁고, 짭짤하고, 양이 충분하면 저는 금방 좋은 사람이 됩니다. 

튀김이 조금 눅눅해도 괜찮습니다. 면이 약간 불어도 이해합니다. 

배달 음식은 완벽한 요리가 아니라, 배고픈 저를 구하러 달려온 응급 처방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먹고 나서 리뷰창을 열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저는 만족했습니다. 서비스도 받았습니다. 이제 좋은 말을 남기면 됩니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면 이상하게 그럴듯한 문장이 나오지 않습니다.


맛있어요.
양이 많아요.

잘 먹었습니다.
또 시킬게요.


제게서 나올 수 있는 표현이 이 정도라는 사실을 매번 확인합니다. 

블로그에는 몇천 자씩 쓰면서, 배달 리뷰 앞에서는 갑자기 어휘력이 줄어듭니다. 

일할 때는 문장을 고르고, 흐름을 따지고, 마지막 한 줄을 붙잡고 고민하는 사람인데, 리뷰창 앞에서는 ‘맛있어요’ 근처에서 맴돕니다.

조금 변주를 주면 앞에 '정말' 같은 강조 부사를 붙이는 정도일까요. 


틀린 말은 아닌데, 그 문장이 너무 자주 쓰입니다. 

제 리뷰 목록을 모아보면 거의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맛있어요, 양도 많고, 또 주문할게요. 순서만 바뀔 뿐입니다.
리뷰는 짧으면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길게 쓰기도 애매합니다. 

갑자기 음식 평론가처럼 굴 수는 없습니다. 소스의 산미가 좋고, 튀김의 식감이 살아 있습니다, 모처럼 깊이 있는 풍미를 즐겼습니다. 같은 말을 쓰기에는 제가 방금까지 허겁지겁 먹었다는 기억이 선명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 저는 평가자가 아닙니다. 그냥 배고픈 사람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이성적이지도, 냉정하지도 않습니다. 일단 먹습니다. 

사진 구도 같은 건 생각하지 않습니다. 식탁이 정리되어 있는지 살피지도 않습니다.
아차, 방금 리뷰 이벤트 조건이 생각났습니다.

 

사진 리뷰.

이게 가장 어렵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음식은 처음의 아름다운 상태를 넘어 생활의 흔적이 보이는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치킨은 몇 조각이 사라졌고, 피자는 이미 이 빠진 원형입니다.

이걸 찍어도 될까 싶습니다. 도움이 되는 사진인지, 영업 방해에 가까운 사진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일단 사진을 포기합니다.

 

그럼 글이라도 잘 써야 합니다. 

그런데 글도 쉽지 않습니다. 별점은 이미 5개를 눌렀습니다. 

사실 별점 5개를 누르는 손은 빠릅니다. 서비스까지 받았으니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런데 리뷰를 쓰는 손은 갑자기 신중해집니다. 

너무 칭찬하면 광고처럼 보이고, 너무 담백하면 냉정해 보입니다. 

대충 쓰자니 서비스 받은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공짜 사이드 메뉴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듭니다.

 

사장님 입장도 이해합니다. 배달앱 안에서는 사진과 별점과 리뷰가 주문을 부르는 기준이고, 리뷰 한 줄이 가게의 인상을 바꿉니다. 

저는 서비스를 받았고, 사장님은 리뷰 한 줄을 기대합니다. 

그러니 이건 속고 속이는 일이 아닙니다. 작은 약속입니다.

 

저는 그 약속 앞에서 매번 문장력을 잃습니다. 

좋은 말을 쓰고 싶습니다. 너무 형식적이지 않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사장님께 도움이 되면서도 제가 너무 공짜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최소한의 품위를 갖춘 적당한 문장을 찾고 싶습니다.


그런 문장은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저는 다시 익숙한 문장으로 돌아갑니다.

맛있어요. 양도 많고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주문할게요.


쓰고 나면 부끄럽습니다. 이토록 안전하고, 흔한 문장이라니. 

틀린 말은 안 썼습니다. 맛있었고, 양도 괜찮았고, 실제로 다음에 또 주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금 초라할 뿐입니다.

 

등록 버튼을 누릅니다.
작은 계약이 끝났습니다. 저는 리뷰 이벤트 약속을 지켰고, 사장님은 리뷰 하나를 얻었습니다. 

배달앱은 또 하나의 별점과 또 하나의 리뷰를 저장합니다. 세상을 바꾸지도, 누군가의 주문 결정을 돕지도 못하는 초라한 문장을요.

 

오늘도 제 문장력은 사이드 메뉴 하나와 말없이 교환되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