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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먼저 안부를 묻지 않는다

LIFE/AI 시대의 삶

AI는 먼저 안부를 묻지 않는다

친한 친구가 회사를 나왔습니다.

친구가 있던 회사에는 새로운 사업부가 생겼습니다. 
친구가 그 사업부를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꽤 긴 시간 동안 기획해서 개발했고, 이제 막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글로벌 기업이 비슷한 방향의 AI 기능을 내놓았습니다.
기능이 겹쳤는데, 설상가상으로 상대가 가진 생태계의 힘은 너무 컸습니다. 

경쟁 여부를 오래 따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회사는 사업을 접기로 했고,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친구도 회사를 나왔습니다.
뉴스로 보면 짧게 정리될 일입니다. 
시장 변화.
사업 철수.
조직 정리.
 
하지만 가까운 사람의 일로 들으면 전혀 다릅니다.
그건 시장 변화가 아니라, 친구가 다니던 회사의 책상이 사라진 일입니다. 
지난 시간이 갑자기 설명하기 어렵게 된 일입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흩어지고,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전략 수정이지만, 친구에게는 생활의 문제입니다.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한다는 말은, 친구의 퇴사 소식을 들은 뒤에야 형태를 갖게 됐습니다.
그전에도 몰랐던 건 아닙니다. 보고서에서도, 기사에서도 봤습니다. 자동화, 생산성, 효율, 에이전트 같은 말들은 이미 익숙합니다. 
저도 AI를 씁니다. 보고서를 만들고, 글을 다듬을 때 AI는 이미 제 일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압니다.
지금은 제가 AI를 쓰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는 제가 하던 일이 AI로 대체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 판단은 악의가 아니라 비용과 속도에 설득되어 내려질 가능성이 큽니다.

누군가에게는 기능 추가이고, 생산성 향상입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해오던 일에서 설 자리를 잃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의 일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힘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 가볍게 느껴집니다.
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친구의 막막함을 너무 빨리 정리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곳 갈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지금 친구가 지나고 있는 시간을 건너뛰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위로는 가끔 말하는 사람의 불안을 덜기 위해 너무 빨리 나옵니다.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친구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분명한데, 그 말이 친구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이 불편한 마음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꺼내는 말인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럴듯한 위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상황에 맞는 말투를 고르고, 상대의 감정을 배려한 메시지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먼저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습니다. 
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먼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오랜 친구가 괜찮은 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직 할 수 있는 대단한 일이 남아 있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오히려 남아 있는 일은 너무 작습니다. 
먼저 연락하기. 안부 묻기. 별말 없이 같이 앉아 있기. 
해결책을 주지 못해도, 상대가 혼자 밀려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아주 조금이라도 남겨주기.
 
이런 일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친구의 이직을 대신해주지도 못하고, AI가 들어온 시장의 방향을 바꾸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이런 일까지 아무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정말 혼자가 됩니다.
 
저는 아직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휴대폰을 들고 엄지 손가락을 화면 위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쓰려고 하면 문장이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겁습니다. 
그래서 자꾸 지웁니다. 조언은 건방지고, 침묵은 비겁해 보입니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작고 시시한 말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한참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나니, 아주 평범한 문장 하나가 남았습니다.
 
야 끼니는 챙겨먹었냐?
 
끝.

 

 

 

친구
회사의 노예가 뭐래. 형님 게임 중이다. 이따 연락해라.
FRME
...너어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