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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원에게 연결될 때쯤, 이미 화가 나 있다

TREND/요즘 사는 법

상담원에게 연결될 때쯤, 이미 화가 나 있다

처음부터 화가 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선량한 고객입니다. 오류가 발생한 서비스를 정상으로 돌리고 싶었습니다. 

보상을 요구할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화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센터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저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됩니다.

처음에는 자주 묻는 질문을 확인해보라고 합니다. 제가 찾는 질문은 없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질문을 눌러봅니다. 답변은 대체로 원칙적이라서 제 상황에 맞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챗봇이 저를 상대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묻습니다. 저는 제 상황을 설명합니다. 

챗봇은 잠시 생각하는 듯한 점 세 개를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제가 방금 지나온 FAQ와 비슷한 답을 내놓습니다.
혹시 제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서 거의 글 한 편을 쓰듯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챗봇은 이해를 못하고 엉뚱한 답을 합니다.

저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지, 문제 해결 여정을 체험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객센터의 많은 길은 해결보다 여정에 가깝습니다. 

FAQ를 지나고, 챗봇을 지나고, 자동응답을 지나고, 다시 처음 메뉴로 돌아옵니다.
처음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째부터 저는 덜 예의 바른 사람이 됩니다.
폭탄 돌리기를 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폭탄 취급한다면, 기꺼이 그의 폭탄이 되어주라는 인터넷 명언이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폭탄이 되어주마.

 

표현이 과하다는 건 알지만 고객센터의 자동화된 통로를 오래 지나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처음부터 화가 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시스템 안에서 조금씩 데워집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시간은 지나가며,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말투는 짧아집니다.

마침내 시스템은 마지못해 상담원 연결을 안내합니다.
그때 저는 안도하지 않습니다. 이미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화는 상담원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상담원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이고, 저와 다르지 않은 노동자입니다. 

상담원이 일부러 저를 기다리게 한 것도 아니고, 챗봇을 설계한 것도 아니며, FAQ의 미로를 만든 사람도 아닐 가능성이 극도로 높습니다. 

만든 사람은 아마 저와 비슷한 직군의 서비스 기획자일 겁니다.

그런데 제가 상담원에게 닿았을 때는 이미 여러 경로를 거치고, 시간을 쓰고,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나서입니다.

그러니 상담원은 문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시스템이 데워놓은 감정까지 함께 받습니다.

 

이 구조가 참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AI와 챗봇을 상담원 앞의 완충재로 세운 것 같습니다. 

간단한 문의를 먼저 처리하고, 반복적인 질문을 줄이고, 사람 상담원이 더 복잡한 문제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그 의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그 완충재가 가끔 발화제처럼 작동합니다.

AI 상담은 쓸모가 있습니다. 단순 조회, 배송 상태 확인, 기본 안내처럼 정형화된 문제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해외 핀테크 기업 Klarna는 2024년 2월, AI assistant가 도입 첫 달에 230만 건의 대화를 처리했고 고객 서비스 채팅의 3분의 2를 맡았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복 문의는 25% 줄었고, 고객 문제 해결 시간은 기존 11분에서 2분 미만으로 단축됐다고 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AI 상담은 성공에 가깝습니다. 기업이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은 이유는 충분합니다. 상담 인력은 비용이 크고, 반복 문의는 많습니다. AI는 빠르게 답합니다. 쉬지 않고 여러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자연어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기술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뒤의 이야기도 중요합니다. Klarna는 이후 다시 상담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을 언급했습니다.

고객에게 필요할 때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사례를 AI 상담의 실패라고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방향으로 보입니다.

AI가 효율을 크게 만들 수는 있지만, 고객지원에서 사람의 역할까지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웠던 겁니다.

고객지원은 답변을 출력하는 일이 아닙니다. 맥락을 이해하고 예외를 가려내야 합니다. 

어느 선까지는 규정대로 처리하되, 어느 순간에는 사람이 결정해야 합니다. 

특히 돈, 계약, 개인정보, 서비스 중단처럼 고객 입장에서 손해가 걸린 문제는 단순한 안내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객은 답변이 아니라 해결을 원합니다.

AI가 기능적으로 부족해서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AI에게 임의 처리 권한을 주거나 책임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AI가 계속 친절하게 말해도, 실제 문제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친절한 정체 상태.


요즘 고객센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장면은 여기에 가깝습니다.


이 피로는 제 인성 문제만은 아닌 듯합니다. 

챗봇 도입을 다룬 한 연구는 고객이 불완전한 자동화 단계를 거친 뒤 사람 상담으로 넘어가야 하는 구조 자체를 꺼린다고 설명합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gatekeeper aversion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에게 가기 전, 기계 관문을 먼저 통과해야 하는 구조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제 체감도 비슷합니다. 챗봇이 싫은 것이 아닙니다. 챗봇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붙잡고 저를 오래 놓아주지 않을 때 힘든 겁니다. 

제가 찾는 것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 해결 방안입니다. AI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AI가 처리하면 됩니다. 

하지만 AI가 처리할 수 없는 문제라면 빨리 사람에게 보내야 합니다. 그 판단이 늦어질수록 고객은 마음이 상합니다.

한번은 ARS 안내와 AI 상담의 허들을 통과한 뒤, 상담원 연결을 안내받고 전화를 켜둔 채 30분 가까이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대기 음악으로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클래식 음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바이올린의 가벼운 선율이 조롱처럼 들렸습니다. 

봄은 오고 있었지만, 상담원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안내가 나왔습니다.

연결 가능한 상담원이 없어 통화를 종료합니다.

 

그 순간 저는 고객이 아니라 전사가 됩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런 마음이 드는 순간, 이미 고객 경험은 실패한 겁니다. 

저는 더 이상 문제만 해결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스템과 겨루려는 사람이 됩니다. 

앱을 다시 열고, 홈페이지를 뒤지고, 검색을 시작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오프라인 고객센터에 찾아가야 하나 생각합니다.

이제 포효에 가까운 질문이 생깁니다.

이거 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


기업 입장에서는 이해가 됩니다. 비용 절감은 매력적입니다. 

상담 인력은 쉽게 늘릴 수 없고, 고객 문의는 계속 들어옵니다. 

AI가 1차 응대를 해주면 많은 문제가 빠르게 정리될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잘 설계된 AI 상담은 효과를 냅니다.
문제는 배치입니다. 고객지원 AI를 운영한 사례들을 보면, 잘되는 시스템은 단순히 챗봇을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맥락 설계가 필요하고, 사람의 반복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실제 운영에서 계속 성과를 확인해야 합니다. 

AI가 어느 문의를 잘 처리하는지, 어느 순간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지 판단하는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AI는 해결사가 아니라 문지기가 됩니다. 

문지기가 안쪽에 있는 사람을 너무 오래 숨기면, 고객은 문 앞에서 지칩니다. 

지친 고객은 차분한 고객과 다릅니다. 같은 문제를 말해도 말투가 달라집니다. 같은 설명을 들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Alibaba Taobao의 고객 서비스 현장실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AI 배치는 평균 상담 시간을 줄였지만, AI가 처리한 상담의 고객 평점은 낮아졌습니다. 

특히 고객이 이미 불만을 표출한 뒤 사람 상담으로 넘어오면 사람 개입의 효과도 떨어졌습니다.

자동화가 실패했을 때 비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객의 시간, 상담원의 감정 노동, 브랜드에 대한 불신에 쌓입니다. 

기업은 상담 비용을 줄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용이 고객과 상담원에게 옮겨갔다면, 정말 줄어든 것인지는 다시 봐야 합니다.

그래서 고객센터의 미래는 AI냐 사람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목표는 사람 상담원을 최대한 늦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한 순간을 정확히 알아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화난 고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어떤 고객센터는 고객을 화나게 만든 뒤에야 사람에게 연결합니다.

끝.

 

REFERENCE · 2024 · Klarna Klarna AI assistant handles two-thirds of customer service chats in its first month Klarna는 OpenAI 기반 AI 어시스턴트가 출시 첫 달 230만 건의 대화를 처리하며 고객 서비스 채팅의 3분의 2를 맡았고, 반복 문의 25% 감소, 문제 해결 시간 11분→2분 미만 단축을 발표했다. 기업이 AI 상담을 도입하려는 이유, 즉 효율의 매력을 보여주는 자료로 인용했다. 다만 기업 공식 발표라 홍보성 수치일 수 있다. klarna.com ↗ REFERENCE · 2025 · Entrepreneur Klarna CEO Reverses Course By Hiring More Humans, Not AI Bloomberg 보도를 인용해, Klarna CEO가 고객이 필요할 때 사람과 대화할 수 있도록 상담 인력을 다시 채용하는 방향을 언급했다고 전한 기사. AI가 효율을 만들 수 있어도 사람 상담의 필요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는 균형 근거로 인용했다. 'AI 상담 실패'보다는 AI 중심 전략을 사람 상담과 다시 조정한 사례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entrepreneur.com ↗ REFERENCE · 2025 · arXiv Deploying Chatbots in Customer Service: Adoption Hurdles and Simple Remedies 고객 서비스에서 챗봇이 기대만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를 실험으로 분석한 논문. 핵심 개념인 'gatekeeper aversion'은 사람에게 가기 전 불완전한 기계 관문을 먼저 통과해야 하는 구조에 대한 거부감을 뜻한다. 본문에서 '사람에게 가기 전 기계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피로'를 설명하는 자료로 인용했다. arxiv.org ↗ REFERENCE · 2026 · arXiv Agentic AI and Human-in-the-Loop Interventions: Field Experimental Evidence from Alibaba's Customer Service Operations Alibaba Taobao 고객 서비스 현장실험 논문. AI 배치는 평균 상담 시간을 줄였지만 AI가 처리한 상담의 고객 평점은 낮아졌고, 고객이 이미 불만을 표출한 뒤 사람 상담으로 넘어온 경우엔 사람 개입의 효과도 떨어졌다. 'AI가 고객을 오래 붙잡다 늦게 넘기면 상담원은 문제뿐 아니라 감정까지 넘겨받는다'는 논지의 근거로 인용했다. arxiv.org ↗ REFERENCE · 2026 · arXiv Building Customer Support AI Agents at 100M-User Scale: An Evaluation-Driven Framework Nubank의 대규모 고객지원 AI 운영 사례 논문. AI 고객지원이 잘 작동하려면 단순한 챗봇 배치가 아니라 구조화된 맥락 설계, human-in-the-loop 반복 개선, 평가 체계, 실제 운영 검증이 함께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AI 상담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제대로 된 운영 설계가 필요하다는 균형 근거로 참고했다. arxiv.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