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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동하면 시간도 지나가?

LIFE/일상의 기록

순간이동하면 시간도 지나가?

아이는 다리가 아프면 과학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집까지는 아직 거리가 남아있는데, 아이는 발걸음을 늦추며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행동과 말의 모순을 아이에게 지적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다리가 아프니 그만 걷고 싶다는 마음과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의 방향은 어차피 같은 쪽을 향하니까요.

이럴 때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힘내보자, 같은 말은 격려나 설득이 아니라 그냥 아빠의 말버릇입니다. 아이가 설득되지 않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조금만 더'는 어른이 만든 의심스러운 단위입니다. 특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아빠가 말하는 '조금만 더'는 아이와 협의를 거친 결론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이는 걷지 않고 집에 가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누가 업어주는 방법이 있지만 아이는 8살입니다. 동네에서 제법 형님 행세하고 다니는 입장에서 마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하늘을 날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건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말이지 맨몸으로 날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를 닮아서 겁이 많거든요. 그리고 가장 편리해 보이는 방법.

순간이동.

아이는 순간이동을 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빠도 그랬으면 좋겠다며 대충 맞장구를 쳤습니다. 솔직히 저도 이 무더위에 빨리 집에 가고 싶지만, 어른이라서 말로 하기보다 걸음을 빨리 옮기는 쪽이고, 아이는 아직 그런 말을 굳이 참지 않는 쪽입니다.
일단 서로의 의견은 일치했으니 순간이동을 주제로 대화가 시작됩니다.

아이가 물었습니다.
“순간이동하면 시간도 지나가?”
저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순간이동은 말 그대로 순간에 이동하는 거니까 시간이 안 지나가는 거라고요. <스타트렉> 같은 영화에서 사람이 전송장치에서 사라졌다가 먼 우주의 우주선에 바로 나타나는 장면이 떠올랐고, 그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될 줄 알았습니다.
“순간이동은 순간에 가는 거니까 시간이 안 지나가지.”
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왜?”
“순간이동이니까.”
말하고 나니 조금 허술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이동이 순간이동인 이유는 순간이동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맞나. 지하철 2호선도 아니고 원인과 결과가 순환되는 게, 딱 지하철의 진동만큼 아빠의 권위가 흔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는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그래도 이동할 때 시간이 지나가잖아. 우리가 집에 갈 때 오래 걸리는 것처럼.”
잠깐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순간이동을 좌표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기로 가는 데 중간 길을 생략하는 일. 그런데 아이는 거기에 시간을 붙였습니다. 위치가 바뀌는 일이라면, 그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시간도 흐르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는데, 반박할 말이 없습니다.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습니다. 정말 순간이동은 사람이나 물체를 순간적으로 좌표이동만 시키는 개념일까. 아니면 전송 속도 같은 게 있을까. 전송이라는 말이 붙는다면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 없겠지. 그러면 1광년 떨어진 곳으로 순간이동할 때는 1년이 필요한 걸까.
아이는 어려운 말을 쓴 것도 아닙니다. 제 자식이라 사랑스럽지만 객관적으로 똑똑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순간이동이라는 말을 자기 방식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른에게 순간이동은 이미 장면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사람이 사라지고, 효과음이 나고, 다른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 정도면 설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순간이면 시간이 없는 건지, 이동이면 시간이 필요한 건지, 둘이 붙어 있으면 어느 쪽이 맞는지 묻는 셈이었습니다. 저는 그 단어를 너무 오래 대충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이동은 순간이동이지, 하고 넘겨온 말이 아이 손에 들어가자 갑자기 의미도, 단어 자체도 낯설게 보입니다. 이른바 게슈탈트 붕괴라는 것이죠.

어른이 되면 단어를 대충 통과시킵니다. 순간이동은 순간이동이고, 투명인간은 투명인간이고, 타임머신은 타임머신입니다. 이미 장면을 알고 있으니까 더 묻지 않습니다. 묻지 않아도 대화가 되고, 대화가 되니 안다고 착각합니다. 모르는 단어를 발견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본 게 대체 몇 년 전인지 모르겠습니다. 맥락으로 이해하고, 다음엔 비슷한 맥락에서 써먹습니다. 그러면 그 단어를 안다고 믿어버립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말을 한 번씩 열어보는 것 같습니다. 투명인간은 그림자가 생길까. 시간이 멈추면 나는 움직일 수 있을까. 순간이동하면 시간도 지나갈까. 그러다 갑자기 과자 이야기를 하고, 게임 이야기를 하고, 집에 가면 뭘 할지로 넘어갑니다. 질문을 던진 아이는 먼저 떠나고, 질문에 맞은 저만 그 자리에 남아서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아이에게 길게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말하는 양자 텔레포테이션이 사람이 통째로 사라졌다 나타나는 일이 아니라는 정도, 정보가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는 말 정도는 어디선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꺼내봐야 어렵고 못 미더운 어른들의 단어로 아이의 입을 막아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이는 그냥 물은 겁니다. 순간이동할 때 시간도 지나가냐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질문을 잊은 것 같습니다. 손을 씻고, 물을 마시고, 엄마에게 힘들었다며 어리광을 부리다가 금방 다른 놀이로 넘어갑니다. 아이의 질문은 대체로 그런 식입니다. 깊숙이 들어오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방향을 바꿉니다. 질문을 받은 아빠만 뒤늦게 정리할 방법을 몰라서 허둥대는데, 대부분 저도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이가 물어봐서 제가 모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아이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제가 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순간이동이 뭔지 안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뭔지도 대충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던진 말 하나 때문에 제가 알고 있다고 믿은 단어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아빠는 아이에게 답을 주는 사람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키우다 보니 대부분 답을 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조금 부끄럽고 때로 검색창이 필요하지만 아이가 세상을 묻는 순간 저도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완벽한 아빠와는 거리가 멀지만, 같이 걸어가는 아빠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