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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한 곳은 결국 물건에게 점령당한다

LIFE/일상의 기록

평평한 곳은 결국 물건에게 점령당한다

대청소를 시작하면 먼저 보는 곳들이 있습니다.

 

식탁 위, 아일랜드 위, 책상 위, 피아노 위, 선반장 위. 

바닥을 닦거나 서랍을 열기 전에 그 위에 올라와 있는 물건들을 치워야 집이 정리되는 기분이 납니다. 먼지를 닦는 일보다 급한 건, 어딘가에 잠깐 내려놓은 물건들을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려보내는 일입니다.


그 물건들은 대체로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래된 잡지는 책장이나 재활용함으로 가야 하고, 빌려온 책은 읽을 곳이나 반납할 가방 근처에 있어야 합니다. 택배를 뜯을 때 쓴 가위는 서랍으로 돌아가야 하며, 태블릿은 충전기 근처에서 발견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옷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옷이 식탁 위에 있어야 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느새 다들 잠깐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옵니다. 택배를 뜯다가 가위를 식탁 위에 둡니다. 읽다 만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둡니다. 외출했다 돌아와 손에 들고 있던 우편물을 선반장 위에 내려놓습니다. 태블릿은 충전하려고 아일랜드 한쪽에 둡니다. 그 순간에는 모두 임시입니다. 곧 치울 생각이고, 마음속으로는 이미 치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집 안에서 잠깐은 오랜 시간이 됩니다. 잠깐 둔 물건 옆에 다른 물건이 놓이고, 그 위에 새로 들어온 물건이 얹힙니다. 며칠 전 택배 송장 위에 오늘 아파트 경비실에서 온 안내문이 올라가고, 지난주에 읽던 잡지 위에 아이가 가져온 도화지가 놓입니다. 위쪽에는 최근의 물건들이 있고, 아래쪽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확인하기 두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생활의 만년설 아래 영구 동토층이 생기는 방식입니다.


대청소는 그 층을 깨는 일입니다. 잡지를 들추면 쿠폰이 나오고, 쿠폰 아래에는 영수증이 나오고, 영수증 아래에는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는 충전 케이블이 있습니다. 분명 택배를 뜯기 위해 꺼낸 가위였는데, 며칠을 버티는 동안 식탁의 고정 멤버처럼 변해 있습니다. 빌려온 책은 책상 위에서 반납 기한을 기다리며 조용히 저를 압박합니다. 물건들은 말이 없는데, 오래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존재감을 키웁니다.


평평한 곳은 물건에게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높이가 맞고, 손이 닿고, 지나가다 내려놓기 쉽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손에 든 것을 잠시 맡기기에도 좋고, 방으로 가져가기 귀찮은 물건을 숨 고르게 하기에도 좋습니다.

 

식탁은 밥을 먹는 곳이지만, 어느새 우편물을 분류하고 택배를 뜯고 아이가 가져온 도화지를 확인하는 곳까지 겸합니다. 한 가지 역할로 살기에는 표면이 너무 넓습니다.


피아노는 더 억울할 것 같습니다. 피아노는 소리를 내는 물건인데, 위가 평평하다는 이유만으로 낮은 선반 취급을 받습니다. 잡지 한 권이 올라가고, 그 옆에 책이 놓이며, 다시 그 위에 무언가가 얹힙니다. 어느 순간 피아노를 치려면 먼저 물건을 치워야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일보다 악기 위에 형성된 생활 퇴적층을 발굴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책상도 쉽게 당하는 곳입니다. 책상은 일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일하기 전의 물건들이 먼저 모입니다. 읽어야 할 책, 처리해야 할 서류, 충전해야 할 기기, 정리해야 할 케이블, 나중에 봐야 할 문서 따위가 책상 위에 자리를 잡습니다. 일하려고 앉았는데 일과 관련된 물건들이 이미 책상을 차지하고 있으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정리부터 해야 합니다. 그러다 다른 문서를 발견하고, 그 문서가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하다가, 아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해집니다.


대청소를 하고 나면 집은 확실히 시원해집니다. 식탁의 표면이 보이고, 아일랜드 위에 빈 공간이 생깁니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 하나만 남습니다. 피아노는 다시 피아노처럼 보이고, 선반장도 장식장에 가까워집니다. 방의 크기는 그대로인데 사용할 수 있는 표면이 돌아온 것만으로도 집이 넓어진 듯합니다. 물건이 줄어든 것보다, 물건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상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며칠 뒤 누군가 책 한 권을 올려둡니다. 그 옆에 우편물이 놓이고, 택배를 뜯으며 가위가 다시 등장합니다. 태블릿은 충전기를 찾아 책상 한쪽에 눕고, 옷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의자나 식탁 가장자리에 걸칩니다. 평평한 곳은 비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물건들을 부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건은 오래 버티면 권리를 얻습니다. 누가 허락한 적은 없지만 계속 그곳에 있었으니 이제 그곳이 자기 위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빌려온 책이 책상 위에 오래 있으면, 그 책은 더 이상 임시로 놓인 책이 아니라 책상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가위가 식탁 위에 며칠 있으면 서랍으로 돌아가야 할 도구가 아니라, 언제든 택배를 뜯을 준비가 된 상시 대기 도구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보면 저도 흔들립니다. 이 물건은 여기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 어차피 자주 쓰는데 굳이 서랍에 넣었다가 다시 꺼낼 필요가 있을까. 책은 눈에 보여야 읽게 되니 책상 위에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반복되는 치움과 쌓임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물건이 오래 머문다는 사실 자체가 정리의 기준처럼 굴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결국 거슬립니다. 물건은 슬금슬금 하나씩 올라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간의 이름을 바꿉니다. 밥 먹는 식탁이 우편물 분류대가 되고, 소리를 내던 피아노가 선반이 됩니다. 그게 싫어서 다시 치웁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물건들은 계속 임시로 놓일 것이고, 임시는 오래 버틸 겁니다. 그렇게 오래 버틴 물건은 자기 자리인 척할 것입니다. 저는 또 어느 날 대청소를 시작하면서 식탁과 아일랜드와 책상과 피아노 위를 먼저 볼거고, 혀를 차며 다시 치울 겁니다.
식탁은 밥을 먹는 곳이고, 피아노는 소리를 내야 하는 물건이니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