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와 아내는 잘 맞는 부부는 아닙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부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눈빛만 보고 알 수 있는 건 대체로 “지금 내가 뭔가 잘못했나?” 정도입니다. 저는 살가운 대화를 좋아하는 편이고, 아내는 살가움이라는 게 굳이 필요한지 의문을 갖는 편입니다. 물론 이건 제 기준입니다. 아내 기준에서는 제가 불필요하게 말이 많고, 확인이 많고, 신중이라는 이름으로 답답하게 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저는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아내는 감정이 올라오면 목소리부터 앞으로 나옵니다. 저는 그 목소리에 종종 놀랍니다. 아직 제 잘못인지 확인도 안 됐는데, 이미 제 안에서는 변호가 시작됩니다.
“그거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아내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제가 먼저 변명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더 어이없어합니다. “누가 뭐래?”라는 표정으로 저를 봅니다.
성격도 꽤 다릅니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경우의 수를 따지고, 실패했을 때의 대비책까지 생각해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 과정에서 계획이 틀어지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아내는 일단 해보고, 중간중간 있던 계획마저 파기하고 새로운 경로를 찾는 쪽입니다. 저는 출발 전에 경로를 보고, 주차장을 확인하고, 혹시 문이 닫혀 있으면 어디로 갈지까지 봅니다. 아내는 일단 가자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이 무섭습니다. 일단 가자는 말 안에는 너무 많은 미확정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 입장에서 저는 얼마나 답답할까요. 어딜 가자고 하면 검색부터 하고, 뭘 사자고 하면 리뷰를 보고, 뭔가 하자고 하면 예산과 일정을 궁리합니다.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일이 제게 입력되면 갑자기 체크리스트로 반환됩니다. 아내는 아마 이런 생각을 할 겁니다.
이 사람은 인생을 사는 건지,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건지.
저도 인정합니다. 저는 부부 생활에도 PM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부딪힙니다. 아주 큰 이유가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생활에서는 합당한 이유보다 작은 말투가 더 큰일을 만듭니다. 문을 닫는 소리, 대답의 속도, 아이 문제를 두고 먼저 화를 내는 사람과 먼저 정리하려는 생각의 차이. 이런 것들이 어느 날은 아무렇지 않고, 어느 날은 하루 전체를 흔듭니다.
며칠 동안 말이 줄어드는 날도 있습니다. 같은 집에 있는데 각자 다른 집 사람처럼 지낼 때도 있습니다. 부부에게도 생활형 냉전이 있습니다. 냉장고 문은 같이 열고, 아이 등교 준비는 같이 하지만, 말은 필요한 만큼만 합니다. “밥 먹어” 정도의 문장으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런 날에도 저는 아내를 미워하진 않습니다.
화가 나고, 서운하고, 억울하게 느낄 때도 있지만, 미움까지는 잘 가지 않습니다. 미움으로 가기 전에 늘 다른 것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내가 말없이 챙겨준 것들, 티 내지 않고 버틴 시간들, 힘든 날에도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고 있던 모습 같은 것들입니다.
아내는 말로 다정함을 많이 표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대신 행동으로 챙길 때가 있습니다. 제가 힘들어 보이면 아무 말 없이 뭔가를 해둡니다. 필요한 걸 사두거나, 아이들 일을 먼저 처리하거나, 제가 놓친 생활의 구멍을 막아둡니다. 그걸 아주 다정한 말투로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늦게 알아차릴 때도 많습니다.
아내는 티를 잘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기도 합니다. 저는 힘들면 얼굴에 표시가 잘 나는 편입니다. “나 힘듦”, “위로 필요”, “지금 말 걸면 위험” 같은 문장이 얼굴에 적혀 있는 사람이랄까요. 아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버티고,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폭발합니다. 저는 그때서야 아내가 오래 버티고 있었다는 걸 압니다. 그럴 때마다 2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며 갈고 닦은 제 눈치와 통찰력은 한 박자 늦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우리 집의 중요한 축입니다. 제가 아무리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해도, 집이 실제로 굴러가는 데에는 아내의 시작이 필요합니다. 저는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일이 많고, 아내는 일단 움직입니다. 저는 위험을 줄이려 하고, 아내는 멈춰 있는 시간을 못 견딥니다. 저는 아내를 보며 불안해하고, 아내는 저를 보며 답답해합니다. 그 둘이 만나면 종종 소음이 납니다.
그래도 우리의 가정은 굴러갑니다. 영화처럼 낭만적인 방식으로만 굴러가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덜컹거리고, 가끔은 서로 운전대를 잡겠다고 하며, 가끔은 왜 이 길로 왔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목적지 근처에 와 있습니다. 역할이 잘 나뉘어서라기보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각자의 방식으로 메우면서 온 것 같습니다.
아내가 야구를 볼 때도 비슷합니다. 아내가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으면 집 안 공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그걸 알면서도 가끔 쓸데없는 말을 합니다.
“그러게 그런 똥팀을 왜 응원해.”
이 말은 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는데도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한소리를 듣습니다. 사실 한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남의 팀을 똥팀이라고 부른 죄, 그것도 그 팀 때문에 이미 마음이 상한 사람 앞에서 빈정댄 죄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데, 저는 종종 똥팀을 응원하는 아내가 안타까워서 그 한마디를 하고야 맙니다. 원죄는 야구를 못하는 팀에 있는데 혼나는 건 저라는 게 좀 억울하긴 합니다.
그래도 저는 그 장면이 싫지 않습니다. 아내는 화를 내고, 저는 괜히 웃고, 아이들은 상황을 보며 각자 안전한 쪽으로 흩어집니다. 이게 좋은 부부의 장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육아 서적이나 부부 상담 책에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그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다정하다고 부르기엔 시끄럽고, 불행하다고 부르기엔 너무 익숙한 장면들입니다.
저는 아내와 잘 지내고 싶습니다. 사랑을 매일 확인하며 살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매일 눈을 맞추며 고맙다고 말하고, 서로의 상처를 아름답게 이해하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성숙한 대화를 나누는 부부가 될 자신은 없습니다.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종종 싸울 것이고, 말이 줄어드는 날이 있을 것이며, 저는 또 괜히 방어적이 될 겁니다. 그러면 아내는 또 저를 답답해할 겁니다.
그래도 잘 지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언젠가 집에 둘만 남는 시간이 길어지면 저는 아마 아내를 더 따라다닐지도 모릅니다. 아내는 벌써 걱정합니다. 아내는 혼자 있고 싶은데, 제가 괜히 말을 걸고, 같이 나가자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요. 지금도 이렇게 성가신데 나중에는 얼마나 더 성가실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쉽니다.
사실 제가 원하는 미래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티비를 보다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아내가 야구를 보며 화를 내면 저는 똥팀이라는 말을 참아보고, 산책을 하다가 별말 없이 돌아오는 정도입니다. 그림 같은 부부가 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냥 오래 같이 있고 싶습니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저는 아내가 좋습니다. 아내 앞에서 말하면 아내는 아마 “갑자기 왜 그래?”라고 할 겁니다. 그래서 글로 쓰는 편이 낫습니다. 글은 적어도 중간에 “됐고, 분리수거나 해”라고 끊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글을 다 쓰고 나면 분리수거는 해야 할 겁니다.
아내와 저는 아주 잘 맞는 퍼즐 조각은 아닙니다. 맞추다 보면 모서리가 걸리고, 억지로 누르면 악소리가 납니다. 가끔은 이게 같은 상자에서 나온 조각이 맞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 놓여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은 서로의 모양을 어느 정도 외우게 됩니다. 어디를 건드리면 안 되는지, 어느 쪽으로 밀면 더 틀어지는지, 언제 그냥 기다려야 하는지 배웁니다.
완벽하게 맞지는 않아도 같이 살아온 모양이 있습니다.
저는 그 모양이 좋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똥팀을 응원하는 건 적당히 하면 좋겠습니다. 이건 말로는 안 하는 쪽이 낫기 때문에 글로만 남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