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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호가 뭐였더라

LIFE/일상의 기록

보물 1호가 뭐였더라

몇달 전 없어진 줄 알았던 웹사이트에 로그인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웹사이트가 아직 살아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안에 제 계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계정이란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휴면 계정을 활성화해야 하는데, 당연히 비밀번호를 기억할 리가 없습니다.
비밀번호 찾기를 눌렀더니 요즘은 거의 보이지 않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나의 보물 1호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2차 인증이 아니라 비밀번호 복구 질문이 남아있는 것도 웃긴데, 나의 보물 1호라니.

이 질문을 선택하고 설정한 사람이 저인 것은 분명한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가입한 지 20년은 넘었던 것 같은 웹사이트였고, 그 시절 제가 남겨둔 비밀번호 복구 질문이 아직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사실부터 당황스러웠습니다.

가장 먼저 무서운 가능성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당시 여자친구 이름인가.

그럴 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젊은 시절의 저는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물 1호라는 말은 부담스러울 만큼 크지만, 20대 중반의 저는 그런 말을 진심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었던것 같습니다. 잠시 식은땀을 흘리며 가입 시기를 계산했습니다. 그 사이트에 가입했을 무렵 제가 연애 중이었는지, 아니면 아무도 만나지 않던 시기였는지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계산 결과, 일단 가정의 평화는 지켜졌습니다.

다음으로는 물건들을 떠올렸습니다.
당시의 저는 전자제품을 꽤 진지하게 아끼는 사람이었습니다. DSLR 카메라였을까. 블랙베리였을까. 월급을 모아 샀던 노트북 모델명이었을까. 그 시절에는 물건 하나를 사면 상자를 버리지 못했고, 리뷰를 다시 읽으며, 제가 꽤 좋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계속 증명하면서 뿌듯해 하던 시기였습니다.

카메라 이름을 넣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블랙베리 모델명도, 노트북 모델명도 아니었습니다.
세 번 틀리고 나니 더 시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밀번호를 찾고 싶었을 뿐인데 과거의 저에게 농락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창을 닫으려다가 지금의 나라면 뭐라고 쓸지 떠올렸습니다. 지금의 저에게 보물 1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물건 이름을 쓰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족

별 기대 없이 입력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맞았습니다.

계정이 복구됐다는 안내 메시지 앞에서, 제가 맞힌 답이 믿기지가 않아 생각이 갈피를 잃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가족과 살가운 편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과 다정하게 말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여동생과는 투닥거리다 못해 말도 섞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혼자 살면서 대학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고, 외로웠지만 외롭다고 말하는 법도 잘 몰랐습니다. 아마 가족이 그립다고 말하는 일은 더 어색했을 겁니다.

그 칸은 저는 꽤 안전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말도 아니고, 직접 전해야 하는 말도 아닙니다. 비밀번호를 잊었을 때 저만 알아보려고 남겨두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저는 말로 꺼내기 어려운 마음을 그곳에 넣어둔 것 같습니다. 계정을 지키기 위한 답이기도 했지만, 20년 뒤에 보니 마음을 숨겨둔 서랍처럼 느껴집니다.

20년 전의 저는 표현이 서툴렀고, 가족과도 자주 부딪혔으며, 혼자 어른이 되는 중이었습니다.

오래된 웹사이트의 한 구석에, 그때의 제가 남겨둔 답이 있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