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면대 물이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완전히 막히진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저도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겁니다. 물은 내려가는데 아주 느립니다. 이를 닦고 나면 물이 잠시 고여 있고, 손을 씻고 나면 배수구 주변에 비누 거품이 남습니다. 급한 문제는 아니다 보니 이 상태로 꽤 오래 지냈습니다.
사람을 정말 움직이게 하는 건 큰 문제이고, 정말 고민하게 하는 건 애매한 문제입니다. 큰 문제는 선택지를 없애고, 애매한 문제는 핑계의 근거를 주기 때문입니다. 물이 아예 안 내려가면 저는 바로 세면대 아래로 들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내려갑니다. 저를 시험하듯이 아주 느리게요.
세면대 앞에 설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 이거 한번 열어봐야 하는데. 그리고 그대로 나오는 식입니다. 문제를 인식했지만 해결하지 않는 능력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매일 같은 불편을 겪으면서도, 매일 같은 결론에 도착합니다. 아직은 괜찮다.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팝업을 분해하거나, 세면대 아래 배관을 열면 됩니다. 예전에 해본 적도 있습니다. 집에는 스패너도 있고, 고무장갑도 있습니다. 베란다 어딘가에는 안 쓰는 칫솔도 있을 겁니다. 하기로 결심만 하면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문제는 각오입니다. 세면대 아래로 몸을 눕힌 채 들어가서, 배관을 풀고, 머리카락과 찌꺼기가 섞인 무언가를 마주할 각오. 그 각오가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 방법을 실행할 각오가 아직 제 안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켭니다. 글로 읽는 것보다 영상으로 보는 편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하는 걸 보면 따라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고, 가끔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페트병을 거꾸로 세우기만하면 뻥 뚫린다든지요. 사실 이건 이전에 봤던 방법인데 우리집 세면대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효율적인 사람입니다. 적어도 세면대 앞에서 멀어지는 순간에는 그렇습니다. 검색창에 “세면대 배수구 청소법”을 입력합니다. 영상들이 쏟아집니다. 업체 부르지 마세요. 5분이면 됩니다. 이것만 부으면 뚫립니다. 썸네일 속 사람들은 모두 확신에 차 있습니다. 고무장갑을 낀 손, 번쩍이는 배수구,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덩어리. 영상만 봐도 세면대 문제는 벌써 해결된 것 같습니다.
처음 몇 분은 진지하게 봅니다.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준비해야 하나. 우리집 팝업도 그냥 당기면 빠지는 종류인가. 댓글도 읽습니다. 진짜 됩니다. 덕분에 해결했습니다. 업체 부를 뻔했는데 살았습니다.
댓글까지 읽고 나면, 저도 이 문제의 90%는 해결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착각이 시작됩니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제가 문제를 해결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면대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배관은 여전히 닫혀 있고, 제 손은 깨끗합니다.
그러는 동안 유튜브는 다음 영상을 권합니다. 세면대 청소 다음에는 욕실 곰팡이 제거 영상이 나옵니다. 욕실 곰팡이 다음에는 화장실 냄새 없애는 법이 나옵니다. 그러다 샤워기 수압을 높이는 법으로 넘어갑니다. 어느새 저는 “수압 약한 집에서 절대 사면 안 되는 샤워기 헤드”를 보고 있습니다. 세면대와 샤워기는 같은 욕실에 있으니, 아직은 세면대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에는 남의 책상 셋업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책상 위에는 모니터 조명이 있고, 키보드는 알루미늄 몸체에 커스터마이징한 키캡이 멋집니다. 케이블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책상에는 먼지도 없고, 느리게 내려가는 세면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새 남의 정돈된 삶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90년대 일본 시티팝 댓글을 읽고 있습니다. 왠지 그립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여름밤의 드라이브가 떠오른다”고 적힌 댓글에 공감을 누릅니다. 저는 세면대 물이 안 내려가서 유튜브를 켰는데, 어느새 돌아갈 수 없는 여름밤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저의 집중력은 생각보다 허술하고, 알고리즘은 그 허술함에 친절합니다.
문제 해결은 실패했습니다. 대신 문제를 잊는 데 성공했습니다.
유튜브를 끄고 화장실에 가면 세면대는 그대로입니다. 물은 여전히 느리게 내려가고 비누 거품은 배수구 주변을 맴돕니다. 저는 잠시 바라보다가 결심합니다.
완전히 막힌 건 아니니까 며칠 더 지켜보자.
네,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답을 찾으러 유튜브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관을 열고, 손을 더럽히고, 뭔가를 꺼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찾고 있던 건 답이 아니라, 오늘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혹은 우회로였습니다.
알고리즘은 그 우회로를 잘 압니다. 세면대 배수구에서 욕실 청소로, 욕실 청소에서 책상 정리로, 책상 정리에서 돌아갈 수 없는 여름밤으로 저를 데려갑니다.
오늘 아침에도 세면대 물은 여전히 느리게 내려갔습니다.
저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해야겠다.
일단 출근부터 해야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