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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을 시키자는 말은 회의를 시작하자는 뜻이다

LIFE/일상의 기록

치킨을 시키자는 말은 회의를 시작하자는 뜻이다

“치킨 먹을까?”라는 말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의를 시작하자는 뜻입니다.

 

치킨은 실제로 아주 간편한 배달 음식입니다. 앱을 열고, 브랜드를 고르고, 메뉴를 누르면 끝납니다. 하지만 치킨 취향이 제각각인 가족이 먹는 치킨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순살이냐 뼈냐, 튀김옷이 얇으냐 두꺼우냐, 옛날통닭이냐 강정이냐, 지난번에는 누가 양보했느냐까지 모두 검토해야 합니다.

 

저는 순살 치킨을 좋아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뼈를 발라 먹는 일이 귀찮습니다. 치킨을 먹으면서까지 귀찮고 싶지 않습니다. 치킨은 어디까지나 간편하게 먹기 위한 것이지, 뼈와 살을 분리하면서 손과 입의 기능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손에 양념이 묻고, 휴지가 쌓이고, 접시 한쪽에 뼈 무덤이 생기는 장면을 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튀김옷도 얇은 쪽을 좋아합니다. 닭 주변에 형성된 밀가루 완충재를 왜 사람이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치킨은 한 입 베어 물면 치킨맛 쿠키를 먹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입안에 들어온 것도 밀가루 80%, 치킨 2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저는 치킨과 치킨 함유 스낵으로 구분을 해주는 게 소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는 옛날통닭 쪽입니다. 닭의 형태가 남아 있고, 봉투를 열었을 때 우리는 지금 닭을 먹는다는 사실이 분명한 쪽을 좋아합니다. 다행히 제가 좋아하는 얇은 튀김옷의 순살 치킨은 아내의 옛날통닭과 식감이 아주 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은 가끔 합의에 성공합니다. 제가 순살을 주장하다가 한 번 물러서고, 아내가 옛날통닭을 주장하다가 한 번 물러서는 식입니다. 이 정도면 부부 사이에서는 앙탕트 코르디알이라고 부를 만한 관계입니다.


딸아이는 닭강정만 먹습니다. 사실 저는 닭강정을 치킨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닭이 들어갔으니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양념에 반짝이는 작은 조각들은 제 기준으로 사문난적에 가깝습니다. 좋게 말하면 위정척사고, 나쁘게 말하면 제 안의 작은 꼰대스러움이 닭강정을 거부합니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시켜줍니다. 사춘기 딸아이와 관계에는 불필요한 전선을 만들지 않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닭강정 한 번으로 평화가 유지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지난주에도 닭강정을 먹었는데 이번 주에도 또 닭강정을 먹겠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닭강정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선언하고 딸아이가 요청한 아그레망을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절 이유를 제시할 의무조차 없습니다. 이건 비엔나 협약이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물론 딸아이는 고등학생이고, 이들은 대개 국제법보다 본인의 식욕을 상위 규범으로 둡니다.

아들은 아직 명확한 노선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체로 뭐든 먹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위험한 순간이 있습니다.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예측이라도 할 수 있는데 유동층은 마지막 순간 판을 바꿉니다. 저와 아내가 순살치킨과 옛날통닭 사이에서 간신히 합의해도, 아들이 “나는 이거 먹고 싶은데”라고 말하면 회의는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집 치킨 주문에서 캐스팅 보트는 가장 작은 사람이 쥐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순살이 좋다고 했다가 메뉴 사진을 보고 양념치킨을 고르고, 다시 누나가 먹겠다는 강정을 보며 마음이 흔들립니다. 여덟 살의 선택은 아직 취향이라기보다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배달앱에 게시된 사진이 더 멋있고 박력 있으면 그쪽을 택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에서 치킨을 시키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립니다. 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합니다. 대체로 딸은 닭강정, 아들은 양념치킨, 아내가 옛날통닭을 원하고, 저는 순살치킨을 원하는 상황입니다. 치킨을 네 종류 시키면 절반은 냉장고에서 상할 것이고, 한 종류만 시키면 누군가의 마음이 상할 겁니다.


경험상 더 오래 가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결국 중간 어딘가를 찾습니다. 순살을 시키되 소스가 있는 쪽으로 갈지, 옛날통닭을 시키고 강정 비슷한 사이드를 붙일지, 아니면 오늘은 강정을 받아들이고 다음 주문 때 순살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할지 생각합니다. 가족의 메뉴 선택에는 늘 지난번의 기억이 섞입니다. 누가 원하는 걸 먹었는지는 모두 희미하게나마 기억합니다.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은 각자의 취향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날의 기분, 지난번의 양보, 괜히 다투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함께 결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맛있는 치킨보다, 가장 무난하게 지나가게 해줄 치킨을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하나의 메뉴는 애초에 없는 셈입니다.


그렇게 치킨이 도착합니다.


저는 옛날통닭의 날개를 잡고, 아내는 순살 치킨을 아무렇지 않게 먹습니다. 딸아이는 닭강정이 아닌 메뉴 앞에서 미묘한 표정을 짓고, 아들은 방금 전까지 자기가 주장한 메뉴를 한 조각 먹고 배부르다며 식탁을 떠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아까의 치열한 논의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잠시 생각합니다. 이럴 거면 아무거나 시켜도 됐던 것 아닌가 싶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문제가 생깁니다.


치킨은 늘 약간의 불만과 함께 도착합니다. 그래도 박스는 비어 갑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 앞에서도 결국 한 조각을 집습니다. 메뉴 선정은 그렇게 복잡했는데, 먹는 시간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따뜻한 치킨이 있고, 각자 식사를 시작합니다.


가족은 하나의 취향으로 합쳐지는 사람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각자의 취향을 끝까지 들고, 같은 치킨 박스 앞에 앉을 뿐입니다.
완전한 합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치킨 박스는 비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