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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회사에서 제일 비싼 잡부입니다

WORK/조직과 일

저는 회사에서 제일 비싼 잡부입니다

가끔 제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직함으로는 이사입니다. 그런데 하는 일을 하나씩 적어보면 직함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팀원이 새로 들어오면 파일 서버에 사용자 등록을 하고 권한을 부여해줍니다. 프린트가 안 된다는 말이 들려오면 아마 제일 먼저 불려가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제안서 구조를 고치고, 보고서 흐름을 봅니다. 디자이너에게 의견을 내고, 개발자와 이야기하고, 고객사 요청이 어떤 근거로 나온 말인지 짐작합니다. 누군가 애매한 일을 들고 와서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으면, 또 그 일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사라기보다 소사에 가깝습니다.
품위 있게 말하면 잡부입니다. 사실 제 일에 품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억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실제로 여러 일을 얕게나마 할 줄 압니다. 매거진 에디터로 일한 적이 있고, UT 모더레이터를 했고, UX 기획자였고, 홍보 AE였고, 마케팅 담당자이기도 했습니다. 매거진 출판사에서 일했고,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일했고, 에이전시에도 있었고, 인하우스에도 있었습니다.


경력만 보면 폭이 넓어 보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 글도 보고, 일정도 보고, 고객사 말의 뉘앙스도 보고, 서버 폴더 구조도 봅니다. 깊게 파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따로 있습니다. 콘텐츠 에디터가 있고, 디자이너가 있고, 개발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얕게라도 아는 게 많다 보니, 모른 척 지나가야 할 때도 한마디를 덧붙이게 됩니다.


좋은 습관은 아닙니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을 거쳐 끝내고 싶다는 마음은 욕심입니다. 직급이 팀장을 넘어 이사가 되면 모든 일을 직접 붙잡고 있을 게 아니라, 여러 프로젝트를 보고, 막히는 부분을 확인하고, 에스컬레이션된 곤란한 문제 위주로 협의하는 게 맞습니다. 일의 세부를 모두 직접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이 굴러가도록 구조를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늘 합리와 경영학의 명제로만 굴러가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는 작은 회사입니다. 이사고 뭐고, 급할 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야 하고, 고객사에 보낼 문장을 다듬어야 하고, 멈춰버린 프린터 앞에서 “이거 왜 이러죠”라고 말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그럴 때 뒷짐 지고 서서 “그건 제 역할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품위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일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누가 해야 하냐고 물으면 좀처럼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그건 제 일이 됩니다.
그런 일에는 늘 다양한 맥락이 붙어 있습니다. 단순히 파일 하나를 찾는 일이 아닙니다. 왜 그 파일이 필요한지, 누가 마지막으로 만졌는지, 고객사가 왜 지금 그 자료를 요구하는지, 담당자는 왜 곤란해하는지, 이 일이 밀리면 어느 일정이 같이 무너지는지가 따라옵니다.


프린터도 그렇습니다. 그냥 종이가 걸린 문제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안에 출력해야 하는 제안서가 있고, 곧 고객사 미팅이 있고, 담당 팀원은 얼굴이 하얘져 있습니다. 그러면 프린터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일정의 목구멍이 됩니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직함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일단 종이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뛰어다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대충 아는 지식으로 가설을 세우고, 안 되면 검색하고, 그래도 안 되면 누군가에게 전화합니다. 그 과정이 우아하지는 않습니다. 나이에 맞는 무게감도, 이사라는 직함에 맞는 거리감도 없습니다. 가끔은 제가 너무 경망스럽게 일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직급은 올라갔는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뭔가를 주워 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순간들이 마냥 싫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일이 풀릴 때가 있습니다. 흩어진 자료가 모이고, 막힌 일정이 다시 움직이고, 고객사에 보낼 문장이 정리되고, 출력물이 제시간에 나옵니다. 팀원들이 한숨 돌리고, 방금 전까지는 다들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같은 문제를 같이 밀어낸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때는 잡부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많은 맥락을 제가 다 주워서 쓰레기봉투에 담았으면, 봉투값은 누가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름 붙지 않은 일은 티가 잘 나지 않습니다.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애초에 위기가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문장을 고치고, 팀원의 난처함을 줄이고, 팀의 일정이 무너지지 않게 막아도, 결과물에는 제 이름이 남지 않습니다.


제가 한 일의 가장 큰 성과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아무 일도 안 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해만 본 것은 아닙니다. 맥락을 줍다 보면 결국 일이 보입니다. 누가 왜 막혔는지, 어느 결정이 늦어지는지, 어떤 말이 고객사에게 위험하게 들리는지, 어떤 파일 하나가 전체 일정을 붙잡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제가 만든 것은 아니어도, 직접 헤쳐 나간 일은 몸에 남습니다.


어쩌면 그게 봉투값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주운 맥락들은 결국 제 안에 쌓입니다. 매거진 에디터였던 경험은 문장을 볼 때 나오고, UT 모더레이터였던 경험은 사용자의 반응을 예측할 때 나옵니다. UX 기획자였던 경험은 서비스의 구조를 볼 때 나오고, 홍보 AE였던 경험은 고객사의 말을 해석할 때 나옵니다. 마케팅 담당자였던 경험은 이 일이 바깥에서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할 때 나옵니다.


각각은 깊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꼬였을 때는 깊이보다 연결이 먼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전문가는 각자의 영역에서 깊게 파고, 저는 그 사이에 떨어진 조각들을 줍습니다. 그 조각들을 들고 다니다 보면 가끔은 제가 이 일을 제법 잘 안다는 자부심이 생깁니다.


그 자부심이 위험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얕은 경험이 많다는 건, 잘못 쓰면 남의 전문성을 침범해도 된다는 착각으로 이어집니다. 디자이너의 일은 디자이너에게, 에디터의 일은 에디터에게, 개발자의 일은 개발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일이 서로 부딪히는 부분을 보고, 막힌 맥락을 풀어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 선을 늘 지키지는 못합니다. 모든 일을 잘해서 뛰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회사가 작아서, 시간이 없어서, 그 일이 자기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손을 댑니다. 이상적인 구조는 아닙니다. 그래도 눈앞에서 일이 막혔는데 뒷짐 지고 서 있을 만큼 회사가 크지도 않고, 일정이 느긋하지도 않습니다.


원래는 더 큰 구조를 보고, 프로젝트 사이의 병목을 조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현장에 손을 대야 일이 굴러갑니다. 문장을 고치고, 파일을 찾고, 프린터 앞에 서는 사람이 꼭 이사일 필요는 없겠지만, 제가 아니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제일 비싼 잡부일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그 말을 예전만큼 싫어하지 않습니다. 잡부라는 말 안에는 낮은 일이라는 뜻도 있지만,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일을 먼저 줍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으니까요. 적은 인원에 체계가 없어서 생기는 일이고, 그래서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많은 맥락을 주워 담고 나면, 가끔은 허리도 아프고,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봉투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제가 해온 일이 들어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