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새 글을 메일로 받아보세요

한 달에 한 번, 그달의 글을 추려 보내드립니다.

메일로 구독하기
중년 남성이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법

LIFE/일상의 기록

중년 남성이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법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방법을 꽤 많이 알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찍어도 제법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뤄봤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슷한 영상과 글을 보다 보니, 성공한 적은 없지만 성공하는 법부터 외우게 됐습니다.

돈에 끌려다니지 말고 돈을 통제할 것. 소비할 물건이 아니라 자산을 살 것. 시장이 흔들려도 당황하지 말고, 크게 올라도 흥분하지 말 것.

저는 매달 ETF 계좌에 30만 원을 넣습니다. 자동이체를 걸어둔 뒤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돈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뭘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시장이 내려가도 올라가도 투자금액은 그대로이고, 매도도 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결과는 같지만, 투자 철학보다는 무지의 힘이 큽니다.

이런 영상은 주로 늦은 밤에 봅니다. 업무를 마치고 서재에 앉아 알고리즘이 데려다주는 대로 따라갑니다. 화면 속 사람은 저보다 어리고, 제가 지금 하는 방식이 왜 틀렸는지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두 갈래로 갈립니다. 절반은 반발합니다. 저렇게 살면 뭐가 남나 싶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불안합니다. 저 말이 맞으면 어쩌나 싶습니다.

돈을 다루는 태도에 관한 설명이 끝나면 인간관계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장 자주 만나는 다섯 사람의 평균 소득이 자신의 소득이다. 나보다 능력 있고 부유한 사람과 어울려라.

오랜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매주 한두 번 떠드는 단톡방이 하나 있습니다.
대화 내용은 늘 비슷합니다. 어느 식당 밥이 맛있더라, 회사에서 사람은 안 뽑고 일만 시키다가 또 한 명이 나갔다, 무릎이 아파서 운동을 못 한다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유망한 투자처를 공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다같이 AI로 로또번호를 생성해본게 투자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 회사를 몇 년이나 더 다닐 수 있을지를 이야기 하다가, 당장 닥친 아이들 학원비가 너무 비싸다는 주제로 넘어갑니다. 늘 즐거운 대화는 아니지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응어리진 마음이 풀릴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친구들과 20년 넘게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문득 다섯 사람의 평균 소득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단톡방에 있는 친구들과 저를 평균 내면 어떤 숫자가 나올지 잠깐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제가 싫었습니다. 그 조언대로라면 저는 친구를 바꾸거나 단톡방을 바꿔서 더 능력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모인 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나이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 다섯 명을 찾아가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씁쓸한 건 그 장면이 그려지지 않을 뿐, 그 말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하겠다는 겁니다.

제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소득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아닙니다. 잘된 일이 없어도, 가장 힘든 때 아무 말이나 꺼낼 수 있어서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이 옳아서 붙잡는 것인지,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믿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사람을 바꾸라는 말 다음에는 대개 회사를 떠나라는 조언이 나옵니다.

월급에 안주하면 가난해진다. 회사는 시드머니를 모은 뒤 빠져나와야 할 곳이다.

회사가 제 노후를 책임져주지는 않을 것이고, 월급만 믿는 삶에 위험이 있다는 사실은 은퇴한 선배들을 보며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20년 넘게 일했고, 그 시간 전체가 월급을 받기 위해 견딘 기간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래 맡은 일을 전보다 나은 방식으로 바꿔보기도 했고, 함께 일하던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이것도 좀 궁색합니다.
그저 견딘 게 아닌 것치고는, 20여 년 동안 모은 돈이 너무 적습니다.
회사를 발판으로만 생각하지 못해서 그랬다고 말하면 좋은 핑계가 될 것 같습니다. 노동을 가치 있게 여겼고, 현재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 사이에는 투자를 미뤘고, 소비를 제대로 줄이지 못했으며, 돈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는 사실도 끼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한 이유가 보입니다.
투자 계좌는 몇 년이 지나도 큰 이득이 없고, 회사를 객관적으로 따져 보지 못했고, 친구를 소득 기준으로 고르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이유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경제적으로 불안한 흔한 중년입니다.

돈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출을 줄이고, 노후 걱정을 덜고, 회사 사정과 상관없이 일을 선택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울 겁니다. 그래서 소비를 줄이고, 큰돈은 아니어도 매달 ETF를 삽니다. 자유를 얻겠다고 시작했는데 사람과 시간을 전부 투자 효율로 계산하게 된다면, 그것도 다른 종류의 속박 같습니다.
그게 사실이 아니어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 편이 지금의 저에게는 덜 아픕니다.

ETF 계좌로 30만 원이 빠져나갔다는 알림이 왔습니다.
경제적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자동이체는 이번 달에도 제시간에 왔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