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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정리해두었습니다

LIFE/나의 취향

깨끗하게 정리해두었습니다

휴대폰 앱 아이콘에 빨간 점이 떠 있는 것을 오래 두지 못합니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열두 개라고 표시되어 있으면 열두 개를 전부 읽지는 않더라도 일단 앱을 열어 숫자를 없애고, 화면 위쪽에 알림이 쌓여 있으면 하나씩 밀어냅니다. 급한 내용도 아닌데 확인하지 않은 것이 남아 있다는 표시가 계속 신경 쓰입니다.

문자도 그때그때 지웁니다. 요즘 들어오는 문자의 대부분은 대출, 주식, 보험 광고입니다. 가끔 제 이름을 부르며 치적을 설명하는 예전 살던 동네의 시의원 문자도 있고, 제가 신청한 적 없는 투자 정보를 보내겠다는 문자도 있습니다. 하루에 몇 통씩 도착하니 지우는 것도 일인데, 그대로 쌓아두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첩도 자주 정리합니다. 주차 위치를 기억하려고 찍은 기둥, 계좌번호를 옮겨 적기 위해 캡처한 화면, 곧 만료되는 쿠폰, 미팅 장소를 확인하려고 저장한 지도 화면이 계속 쌓입니다. 찍을 때는 필요했지만 몇 시간이나 며칠이 지나면 쓸모가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저장 공간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클라우드 저장 공간도 쓰고 있고, 그냥 두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래도 갤러리를 열었을 때 아이 사진과 쿠폰 화면이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은 보기 싫습니다. 지난주에 받은 할인 쿠폰과 아이가 줄을 10번 넘어 줄넘기 신기록을 세운 날이 같은 크기의 네모로 한 줄에 놓입니다. 주차장 D17 기둥 사진 바로 옆에 아이가 웃고 있습니다. 갤러리는 중요도를 구분하지 않고 찍힌 순서대로 줄을 세웁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솎아내야 합니다. 쿠폰을 지우고, 주차장 기둥을 지우고, 이미 미팅이 끝난 지도 화면을 지웁니다. 흔들린 사진과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은 사진도 함께 정리합니다. 나중에 갤러리를 열었을 때 남길 만한 것만 남아 있도록 틈틈이 손을 댑니다. 정리를 마치면 화면이 잠시 깨끗해집니다. 앱 아이콘에는 빨간 점이 없고, 메신저에는 스팸이 남아 있지 않고, 갤러리에는 쿠폰과 아이 사진이 뒤섞여 있지 않습니다. 미처리 상태 알림이 없는 휴대폰 화면이 편안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대출 문자가 오고, 앱은 확인해달라는 숫자를 올리고, 전날 지운 것과 거의 같은 것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가끔은 이게 정리라기보다 방어에 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깨끗한 화면을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제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 들어오는 것들을 밀어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정리해놓은 갤러리를 한참 위로 올려서 옛날 사진을 봤습니다. 필요 없는 사진을 지워놨으니 남은 것은 대부분 아이들의 사진입니다. 아기 때 잠든 얼굴도 있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서던 모습도 있고, 어린이집에서 정체 모를 그림을 들고 자랑스럽게 웃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사진을 넘기다 보니 그때 입었던 옷과 장난감, 살던 집의 벽지가 다시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사진을 넘기는 동안 계속 자랐습니다.

한참을 보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져 사진의 촬영 정보가 보였습니다. 그렇게 몇 장의 촬영 정보를 계속 보게 됐습니다. 촬영 시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평일 오후 세 시, 네 시에 찍힌 사진이 많았다는 것은 대부분 아내가 찍어 보내준 사진이라는 뜻입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처음 해낸 날도 있었고, 낮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도 있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그 사진을 받았습니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고, 귀엽다고 답을 보낸 뒤 다시 일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속에는 집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고, 저는 회사에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제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에 가야 했고, 그 돈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래도 일을 마치고 늦은 밤 돌아오면 아이들이 잠든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주말에는 가능한 오래 함께 있으려고 했습니다. 사진은 그런 사정을 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웃는 얼굴과 촬영된 시간만 남아 있습니다. 남길 것만 남기겠다고 갤러리를 정리해왔는데, 정작 남아 있는 사진 속에는 제가 없는 날이 많았습니다. 쿠폰과 주차장 사진은 손가락으로 골라 지울 수 있었지만, 평일 오후에 제가 없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갤러리를 닫고 홈 화면으로 돌아오자 문자 알림이 하나 떠 있었습니다. 저에게만 가능한 낮은 금리로 신용 대출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번 크게 땡겨서 주식 대박이 나면 집에서 아이들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과 문자를 함께 지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