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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LIFE/일상의 기록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명치가 답답해지는 날이면 어린 시절 본 드라마 <허준>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소인, 반위를 보았습니다.”
어떤 장면에서 나온 말이었는지는 흐릿합니다. 반위가 위암이라는 사실만 기억납니다. 그런데 명치가 막힌 듯 답답해지면 그 대사만 생생하게 돌아옵니다. 점심을 빨리 먹었거나 빈속에 마신 커피 탓일 수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의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제 맥을 짚고 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대체로 애매한데, 제가 붙이는 병명은 구체적입니다.
귀에서 삐 소리가 나면 메니에르병을 떠올립니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숨이 답답하고 심장이 빨리 뛰면 심부전인가 싶습니다. 화장실에서 결과물이 평소와 다르면 전날 먹은 음식보다 간이나 췌장 상태부터 의심합니다.
병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선가 이름만 본 병들이 몸의 변화에 맞춰 하나씩 현실화됩니다.

회사에서 일하기 불편할 정도로 명치가 답답했던 날에도 휴대전화를 열어 검색했습니다.
‘명치 답답함.’
결과에는 소화불량과 위염, 역류성 식도염 같은 설명이 먼저 나왔습니다. 전날 저녁을 먹고 일찍 잤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일반적인 내용은 대충 넘기고, 아래에 작게 붙어 있는 다른 위험한 이름에서 손가락이 멈춥니다. 드라마에 반전과 스릴이 있어야 하듯이 병명도 심각해야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드나봅니다. 

등 통증이 동반될 수 있다는 문장을 읽고는 몸을 비틀어 등까지 확인했습니다. 그전까지 아프지 않던 등이 검색 결과를 읽고 나니 뻐근한 것 같았습니다. 식은땀이 날 수 있다는 문장도 있었습니다. 손바닥을 만져보니 평소보다 축축한 듯했습니다.

검색을 시작하기 전에는 명치만 답답했습니다. 몇 분 뒤에는 증상이 세 개로 늘어 있었습니다.
몇가지 증상을 확인하다가 검색창에 조건을 더 붙였습니다.
‘명치 답답함 체중 감소 없음.’
없는 증상을 제외하면 안심할 만한 결과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초기에는 체중 변화가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검색은 제가 빠져나갈 구멍까지 미리 막아두고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은 뒤 이런 일이 잦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하루 자고 나면 괜찮겠지 하고 넘겼던 일을 이제는 검색합니다. 주변에서는 건강검진 수치와 약 이야기가 늘었고, 영상 플랫폼은 중년이 놓치면 안 되는 신호를 계속 알려줍니다.

며칠 전에는 명치의 답답함이 며칠째 이어져 병원을 예약했습니다. 의사는 언제부터 불편했는지, 식사와 관련이 있는지, 가슴 통증이나 호흡 곤란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이미 검색으로 여러 가능성을 검토한 상태였지만, 아는 체하지 않으려고 증상만 얌전히 말했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아니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위염 정도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동안 걱정하고 병원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다면 제 호들갑만 확인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결과를 살펴본 뒤 말했습니다.
“별다른 이상은 없으시고요. 점막이 좀 약해진 것 같은데 스트레스와 과로가 심하신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피하셔야 합니다.”
큰 병이 아니라니 안심이 됐습니다. 다만 피해야 한다는 두 가지가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입니다.
스트레스와 과로를 피하라는 것은 직장인에게 생활 방식을 바꾸라는 조언이라기보다, 직장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도 진료실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의사도 제가 그 말을 어떻게 실천할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며 휴대폰을 확인했습니다. 회사 메신저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열 개 넘게 쌓여 있고, 그중 몇 개에는 오늘 안으로 검토해달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답장을 쓰면서 듣는 사람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습니다.

“무리라니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