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모컨을 찾다가 든 생각
주말 오후입니다. 아내는 아이와 외출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면서 TV를 켜려고 리모컨을 찾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다.
TV 앞까지 걸어가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인류는 리모컨을 만든 걸까.
궁금증일 수도, 푸념일 수도 있는 생각을 하며 소파를 뒤지고, 쿠션을 들추고, 식탁 위를 확인하고, 결국 아이 방에서 리모컨을 발견했습니다.
기특하게도 아빠가 혼자 TV나 보며 시간을 보낼까 걱정한 게 틀림없습니다.
어쨌거나 그 긴 여정을 생각하면 더 의아해집니다.
인류가 TV 앞까지 걸어가는 데 쓴 시간보다, 리모컨을 찾느라 온 집 안을 돌아다닌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 것이라는 데 제 경력을 걸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검증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집에 TV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설의 정서적 타당성 정도는 인정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리모컨을 만들었을까요.
처음에는 단순한 편의였을 겁니다. 앉은 자리에서 채널을 바꾸고, 볼륨을 조절하고, 전원을 끄는 것. 몸을 덜 움직이기 위한 장치. 게으름을 기술로 정당화한 물건. 그렇게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리모컨을 손에 들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작은 물건은 단순히 TV 앞까지 가지 않아도 되게 만든 장치만은 아니었습니다.
리모컨은 제품의 얼굴에서 버튼을 떼어낸 장치였습니다.
과거 제품의 얼굴은 표지판이었다
과거의 전자제품에는 조작부가 본체와 붙어 있었습니다.
TV에는 채널 다이얼과 볼륨 버튼이 있었고, 라디오에는 주파수 다이얼이 있었고, 카세트 플레이어에는 재생, 정지, 되감기 버튼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세탁기도 선풍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명된 전자제품인 퍼스널 컴퓨터도 초기에는 애플, 아타리, MSX처럼 키보드가 본체에 붙어있었죠.
제품의 얼굴은 기능을 설명하는 표지판 같았습니다.
이 버튼은 전원이고, 이 다이얼은 주파수를 조절하며, 이 눈금은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런 식으로 제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몸 위에 적어두었습니다.
사용자는 그 표지판을 보고 다가가 눌렀고, 돌렸고, 조작했습니다.
쓰기는 쉬웠지만, 그만큼 과거의 전자제품은 난잡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좋은 디자인이라고 해서 버튼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디터 람스의 Braun 제품들은 버튼을 지우는 게 아니라, 버튼과 눈금과 스피커 그릴을 그리드와 비례 안에 정리하는 것으로 제품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줬습니다. 조작부는 숨지 않았지만, 질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리모컨이 일상의 물건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리모컨 하나가 모든 변화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소형화, 디스플레이 기술, 적외선 통신,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함께 작용했습니다.
그래도 리모컨은 중요한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조작부가 제품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손 안의 작은 별도 사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TV의 전면 버튼은 줄어들거나 뒤로 밀려났고, 오디오의 버튼은 플랩 안으로 숨었고, 에어컨은 본체에 최소한의 표시창만 남기고 조작을 리모컨에 넘겼습니다. 제품은 더 이상 자신의 모든 기능을 얼굴에 써 붙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조작부가 떨어져 나가자, 제품의 얼굴에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 자리에 대칭과 비례, 검은 패널, 작은 표시창, 수평으로 정돈된 선이 들어왔습니다.
본체는 조작판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의 소니 제품들이 미래적으로 보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의 TV, 오디오, 워크맨은 버튼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지만, 버튼이 더 이상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검은 패널은 깊이를 만들었고, 작은 표시창은 기계가 작동한다는 신호를 보여줬고, 정돈된 수평선은 제품을 차갑고 미래적인 사물로 만들었습니다.
버튼이 많던 제품은 말을 많이 하는 제품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버튼이 줄어든 제품은 말수가 적어 보입니다.
그 시절의 미래적인 가전은 기능이 적어서 조용했던 것이 아니라, 기능을 얼굴에 다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해 보였습니다.
리모컨은 그 조용함을 가능하게 한 도구였습니다.
본체는 조용해지고, 리모컨은 시끄러워졌다
그런데 본체가 조용해진 만큼 리모컨은 말이 많아졌습니다.
TV 리모컨을 보면 버튼이 최소 열 개, 많으면 스무 개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전원, 채널, 볼륨, 입력, 메뉴, 숫자키, 방향키, 앱 버튼, 음성 검색 버튼. 이걸 다시 TV 본체에 붙인다고 생각해보면 곤란해집니다.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이 버튼들을 어디에 붙일 건가요?
오른쪽에 붙일 것인가, 아래에 붙일 것인가, 뒷면으로 숨길 것인가, 플랩 안에 넣을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해도 제품의 얼굴은 복잡해집니다. 디터 람스, 하르트무트 에슬링거, 재스퍼 모리슨, 조너선 아이브 급의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난처할 겁니다.
그러니 제품 디자이너들은 본체에서 버튼을 떼어내고 싶었고, 리모컨은 그 욕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쯤에서 미니멀리즘이라는 말도 다시 보게 됩니다.
저는 미니멀한 제품을 좋아합니다. 표면이 조용하고, 공간을 덜 어지럽히고, 제품이 자기 존재를 과하게 주장하지 않는 상태를 좋아합니다. 다만 모든 버튼을 없애는 것이 곧 좋은 미니멀리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버튼을 없애는 일을 미니멀리즘으로 착각하는 순간입니다.
리모컨은 버튼을 없앤 것이 아니라, 버튼을 손 안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그 흐름을 한 번 더 밀어붙였습니다. 조작부는 리모컨에서 스마트폰 화면 속 UI로 들어갔고, 다시 앱과 음성 명령과 자동화 규칙으로 흩어졌습니다.
버튼은 줄었고, 외형은 매끈해졌고, 조작의 상당 부분은 소프트웨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물건은 점점 말수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조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본체의 얼굴에서 리모컨으로, 리모컨에서 화면으로, 화면에서 앱으로, 앱에서 음성과 자동화로 계속 이동할 뿐입니다.
미니멀리즘은 복잡함을 없앤 것이 아니라, 복잡함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긴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버튼은 손끝에 남아야 한다
이 차이를 가장 자주 느끼는 곳이 자동차입니다.
예전에는 공조기 노브를 돌리면 바람이 세졌고, 단순히 로커 스위치를 누르면 에어컨이 켜졌습니다.
손끝이 위치를 기억했고, 시선을 빼앗기지 않아도 됐습니다.
버튼과 노브는 조금 투박했지만, 운전 중에는 그 투박함이 오히려 친절했습니다.
그건 눈을 위한 게 아니라 손끝의 기억을 위한 인터페이스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센터페시아와 계기판이 커다란 디지털 화면으로 바뀌면서, 이런 기능까지 메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조 메뉴를 열고, 온도를 누르고, 풍량을 조절하려면 밋밋한 스크린을 몇 번이고 눌러야 합니다.
터치스크린은 매끈하지만, 운전 중에는 그 매끈함이 되려 불친절합니다.
특히 전방, 측방, 후방을 주시하느라 바빠야 할 시선이 화면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에서요.
그래서 흥미로운 되돌림도 생깁니다.
모든 버튼을 화면 안으로 밀어 넣던 자동차들이, 자주 쓰는 공조 같은 일부 버튼을 다시 물리 버튼으로 되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라졌던 버튼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버튼이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찾는 과정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리모컨 이야기는 조금 더 명확해집니다.
문제는 버튼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어떤 조작이 몸의 기억으로 남아야 하고, 어떤 조작이 뒤로 물러나도 되는가입니다.
자주 쓰고, 빠르게 써야 하고, 실수하면 위험한 기능은 여전히 손끝에 있어야 합니다.
가끔 쓰는 기능은 메뉴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버튼을 지우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버튼의 자리를 판단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리모컨은 꽤 상징적인 물건입니다. 게으름의 도구이면서, 현대 제품 디자인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제품에 가까이 가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고, 동시에 제품의 얼굴에서 조작부를 떼어냈습니다.
본체를 조용하게 만들었고, 거실을 정돈된 공간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적 복잡함이 밀집된 작은 덩어리이기도 합니다.
본체는 조용해졌고, 리모컨은 시끄러워졌습니다.
TV는 벽에 납작하게 붙어 있지만, 그 TV를 켜려면 우리는 손바닥 크기의 버튼 숲을 헤매야 합니다.
그러니 현대 제품 디자인의 역사는 이렇게 요약할 수도 있습니다.
제품은 점점 조용해졌고, 조작부는 계속 자리를 옮겼다.
버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본체의 얼굴에서 손 안으로, 손 안에서 화면 안으로, 화면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시스템 안으로 이주했을 뿐입니다.
리모컨은 우리를 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제품의 복잡함을 손바닥 위로 옮겨놓았습니다.
둘 다 사실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버튼이 모두 사라진 세계가 더 나은 세계는 아니라는 것.
어떤 버튼은 화면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지만, 어떤 버튼은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손끝에 있어야 할 리모컨은 집 안 어딘가에 숨어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