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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 쓰는 말을 나는 아직 알아듣는다

LIFE/일상의 기록

아무도 안 쓰는 말을 나는 아직 알아듣는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직 결혼하지 않았던 고모 셋,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저와 동생까지 모두 아홉 명이 한집에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집 안의 하루는 늘 복잡했을 겁니다.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누군가는 출근하고, 누군가는 학교에 가고, 누군가는 전화를 받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또 뭔가를 엎질렀을 겁니다.
 
그 안에서 저는 할머니 손을 많이 탔습니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돌봐야 했고, 저는 자연스럽게 할머니 곁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던 것 같습니다.
집 안의 육아에도 보이지 않는 역할 분담이 생겼던 셈입니다.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할머니 쪽에 더 가까운 아이였습니다.
 
할머니가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모들에게 할머니는 무서운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는 집 전화가 가족 전체의 창구였습니다.
고모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면 할머니가 받을까 봐 무서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할머니의 첫마디, '누구오' 하는 목소리 자체가 무서웠다고 합니다.
 
그 말이 어떤 느낌인지 저는 압니다.
할머니의 말투는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살갑게 감정을 표현하는 분도 아니었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고, 말은 대체로 짧았습니다. 괜히 길게 설명하지 않았고, 잘했다는 말도 쉽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 기억 속의 할머니는 다정합니다.
그 다정함은 사랑한다는 말이나 안아주는 손길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잔소리처럼 남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흙장난을 하고 돌아오면 할머니는 제 손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멀끔하게 생긴 총각이 손톱이 이게 뭐냐. 쓰메끼리 가져와라."
쓰메끼리.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입니다.
손톱깎이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어린 저는 그 말이 이상한 말인지도 몰랐습니다.
할머니가 쓰면 그냥 우리 집의 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손톱을 깎아주며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손을 잡고, 손톱 밑의 때를 보고, 필요하면 조금 혼내고, 결국은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장난감에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장난감이 멈추면 할머니에게 가져갔습니다.
할머니는 아이가 실망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당신이 듣던 라디오를 열어 배터리를 빼주셨습니다.
"왜, 약이 없어? 이거 넣어봐라."
할머니는 배터리를 약이라고 불렀습니다.
라디오에서 나온 약을 장난감에 넣으면, 멈춰 있던 것이 다시 움직였습니다.
그때의 제게 약은 전지였고, 전지는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난감에도 약이 필요했고, 라디오에도 약이 필요했습니다.
 
물컵을 엎질러서 제 발 앞에 컵이 깨진 적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에게 크게 혼난, 많지 않은 일 중 하나입니다.
할머니의 호통에 놀라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확인한 건 깨진 물컵이 아니라 제 몸이었습니다.
"보루 가져와라. 안 다쳤으면 됐다."
보루는 걸레였습니다. 지금은 걸레라고 말하지만, 그 시절 우리 집에서는 보루였습니다.
바닥에 물이 번지고 컵이 깨져도, 아이가 다치지 않았다면 일은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보루를 가져오라는 말은 호통 끝에 남은 잔소리였지만, 안 다쳤으면 됐다는 말은 그 잔소리 안쪽에 있던 마음이었습니다.
 
겨울에는 더 그랬습니다.
대충 옷을 입고 나가려 하면 할머니는 저를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집 밖은 늘 제가 생각한 것보다 추웠고, 할머니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스에서 마후라 꺼내 둘러라. 나가기 전에 색경 보고 나가고."
단스는 서랍장이었고, 마후라는 목도리였고, 색경은 거울이었습니다.
지금 문장으로 바꾸면 서랍장에서 목도리를 꺼내 두르고,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꾸면 이상하게 할머니가 사라집니다. 말은 알아듣기 쉬워지지만, 목소리는 줄어듭니다.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날이면 구기자차를 챙겨주셨습니다.
"구기자차 타서 마호병에 넣어뒀다. 추워지면 마셔라."
마호병. 보온병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뜨거운 물과 차를 오래 품고 있는, 무겁고 투박한 물건이었습니다.
저는 그 마호병을 들고 나갔고, 밖에서 추워지면 뚜껑을 열어 따뜻한 구기자차를 마셨습니다.
그 맛이 특별히 좋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뜨거운 김과 함께 올라오던 냄새, 손에 전해지던 온도는 남아 있습니다.
 
밖에서 돌아오면 할머니는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다라이에 따뜻한 물 받아놨으니 어서 씻어라."
다라이는 대야였습니다. 그 말도 이제는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 속에서는 다라이가 그냥 대야보다 더 넓고, 더 깊고, 더 따뜻합니다.
아마 할머니가 물을 받아놓았기 때문일 겁니다. 단어의 뜻보다, 그 안에 담긴 물의 온도가 먼저 떠오릅니다.
 
씻고 나오면 할머니는 제 손을 이끌어 곤로 앞에 세우셨습니다.
"곤로 앞에 서라. 몸 좀 녹여."
밖에서 식은 몸이 조금씩 풀리고, 옷 사이로 따뜻한 기운이 들어오던 느낌.
할머니는 별말 없이 저를 그 앞에 세웠습니다. 따뜻한 말은 없었지만, 몸은 따뜻해졌습니다.
 
명절에는 친척 어르신들을 따라온 더 오래된 말들이 집 안을 돌아다녔습니다.
선물이 들어오면 할머니는 센베이를 장롱 어딘가에 숨겨두셨다가, 어느 날 생각났다는 듯 꺼내주셨습니다.

지금은 거의 막과자처럼 여겨지지만, 어린 제게 센베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귀한 과자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쓰메끼리라고 말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색경도, 마호병도, 다라이도 제 일상에서는 멀어졌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무슨 뜻인지 모를 겁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설명하려면 잠깐 멈춰야 합니다.
이건 손톱깎이이고, 이건 거울이고, 이건 보온병이고, 이건 대야 같은 것이라고.
 
그런데 저는 그 말들을 아직 알아듣습니다.
뜻을 알아서가 아니라, 목소리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사전에서 배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가 불렀고,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컸습니다.
단어는 물건의 이름이었지만, 동시에 할머니가 저를 챙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단어에도 우리의 시간이 남습니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이 쓰던 말이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이상 아무도 그 말을 쓰지 않는데, 내 안에서는 아직 살아 있는 말들.
손톱깎이라고 하면 물건만 남지만, 쓰메끼리라고 하면 할머니의 손이 함께 떠오릅니다.
보온병이라고 하면 기능이 남지만, 마호병이라고 하면 스케이트장에 들고 나갔던 겨울이 같이 떠오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곧 10년이 됩니다.
 
저는 할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이인성.
 
하지만 제 안에서 그 이름은 낯섭니다.
제게 그분은 할머니였습니다. 함자보다 호칭으로 불렀고, 한 사람의 이름보다 한 사람의 자리로 더 오래 기억했습니다.
할머니에게도 당신의 젊은 시절이 있었고, 고모들이 기억하는 무서운 어른의 모습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게 남은 할머니는 조금 다릅니다.
 
말투는 조금 퉁명스럽고, 목소리는 낮고, 다정한 말을 잘 쓰지 않았지만, 저를 자주 챙겼던 사람입니다.
손톱을 깎아주고, 장난감에 약을 넣어주고, 나가기 전에 마후라를 두르게 하고, 구기자차를 마호병에 담아주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그 단어들을 들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떠오릅니다. 
 
단어 하나가 떠오르면, 그 뒤에 방 하나가 열립니다.
거기에는 오래된 집이 있고, 많은 식구들이 있고, 겨울 냄새가 있고, 라디오 소리가 있고, 할머니 목소리가 있습니다.
 
아무도 안 쓰는 말을 저는 아직 알아듣습니다.
아마 그 말들이 아직 할머니 목소리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