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오래된 단어가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유비쿼터스.
주말 저녁, 고객사의 급한 연락을 받고 회사로 뛰쳐나가는 직장인의 입에서 나왔다면 세련된 자조겠지만, 일반적인 경우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약간 민망해지는 말입니다.
한때는 정말 미래처럼 들렸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세상.
학교에서도, 뉴스에서도, 기업 홍보물에서도, 정책 문서에서도 이 말을 자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렸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정말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 채 살고 있습니다.
손 안에는 스마트폰이 있고, 집에는 와이파이가 있으며, 시계는 심박수를 재고, 자동차는 길을 알려주고, 냉장고와 조명과 스피커도 네트워크에 붙습니다. 유비쿼터스라는 말이 가리키던 세상은 어느 정도 도착했습니다.
다만 아무도 그걸 유비쿼터스라고 부르지 않을 뿐입니다. 공장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걸 더 이상 산업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요.
어떤 말은 실패해서 사라지고, 어떤 말은 성공해서 이름을 잃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은 그 시대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을 잔뜩 묻힌 채, 어느새 서랍 안으로 들어갑니다.
다만 그 말들을 저는 듣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말은 제가 일하며 쓰기도 했고, 더 오래 살아남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잊혀진 소리를 찾아서'라는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사라져가는 민요, 노동요, 어머니의 자장가 같은 것들을 채집해 들려주던 방송입니다.
이 글은 그보다 한참 격이 떨어지는 채집입니다. 모내기 소리 대신 제안서 소리를 줍는 일이니까요.
둘 다 일하던 사람들의 소리라는 점만은 같습니다.
저에게 그런 말들은 기술의 역사라기보다 나이의 눈금에 가깝습니다.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제가 지나온 시간이 같이 떠오릅니다.
10대의 끝에서 들은 정보화시대
1990년대에는 정보화시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큰 말입니다. 사회 전체가 낯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는 선언 같았습니다.
PC 통신, 정보고속도로, 뉴미디어, 사이버, 디지털 디바이드 같은 말들도 함께 들렸습니다.
컴퓨터를 알아야 하고, 인터넷을 해야 하며, 앞으로는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10대의 느낌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한창 수험생이었습니다.
세상은 정보화시대를 말했지만, 제 생활은 참고서와 야간자율학습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미래는 인터넷 회선보다 수능 성적표에 먼저 걸려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했지만, 제 방 안에서는 다음 모의고사 성적이 더 절박했습니다.
그리고 곧 IMF라는 말이 왔습니다. 기술 용어는 아니지만, 제 기억 속 19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가장 강한 유행어는 오히려 IMF였습니다. 모두가 IMF를 말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뉴스에서도, 모두의 대화에서 그 말이 반복됐습니다.
길에서 파는 공산품에는 모두 IMF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잘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사정상 싸게 판다는 뜻이었죠.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큰 것이 무너졌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1998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정보화시대의 끝물이 아직 남아 있었고, IMF의 그림자도 짙었습니다.
미래를 말하는 단어와 생존을 말하는 단어가 동시에 떠돌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이 열리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취업과 구조조정과 부도라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제게 1990년대의 미래어는 비스듬히 들린 소리였습니다.
분명 크게 울렸지만, 제게 바로 와닿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외우는 주문처럼 들렸습니다.
정보화시대라는 말은 밝고 넓었지만, 그 시절의 공기는 꼭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20대의 손에 쥐어진 작은 미래들
2000년대가 되자 미래는 더 작아졌고, 대신 손에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닷컴, e-비즈니스, e-커머스, e-러닝 같은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단어 앞에 e를 붙이면 갑자기 미래형 서비스처럼 보였습니다. 사이버라는 말도 여기저기 붙었습니다. 사이버 대학, 사이버 공간, 심지어 사이버 러버라는 노래도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과장돼 보이지만, 그때는 정말 현실 바깥에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기기들이 많았습니다.
MP3, PCS, PDA, PMP, DMB, 와이브로, 넷북. 지금은 단어만 봐도 먼지가 살짝 앉은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습니다. 하나 사면 미래를 미리 산 것 같았습니다.
MP3 플레이어를 주머니에 넣고, 헤드폰을 끼고, PDA로 일정을 체크하면서 길을 걷다가 괜히 울리지도 않은 PCS 폰을 뒤적이곤 했죠. 사실 당시에 대학생에게 휴대폰이 필요할까 싶긴 했지만, 대학교 동기들의 무의미한 연락이나 부모님의 유의미한 연락에 쓰였던 기억이 납니다. 200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도 애지중지하던 물건이었습니다. 필름 현상 없이 가볍게 일상을 찍을 수 있다는 장점만으로, 결과물의 낮은 품질이나 과도한 노이즈도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요즘 말로 하면, 거들먹거리기 딱 좋은 OOTD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보면 스마트폰이 하기 전의 일을 미리 나눠 맡았던 기기들이었습니다.
음악을 듣기 위한 기기, 일정을 관리하는 기기, 통화를 위한 기기, 사진을 찍기 위한 기기, 인터넷을 하기 위한 기기가 따로 있었습니다. 주머니와 가방 안에 미래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들어 있었습니다.
저의 20대인 2000년대 한국은 인터넷의 성공적인 보급으로, 민주주의와 사회 참여 열망으로 들끓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집단지성, 블로그스피어, 댓글 저널리즘, UCC, 프로슈머, 시맨틱 웹 같은 말들도 많이 회자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말들은 단순히 실패해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기기와 더 나은 서비스 안으로 흡수됐습니다. 사라졌다기보다 잡아먹힌 말들입니다. 20대의 저는 그런 말들을 따라다니며 기웃거렸습니다. 새 기기를 보면 사고 싶었고, 새 서비스가 나오면 가입해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구호 아래 나의 의견이 세상을 바꾼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미래가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내 손에 들어오는 기기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30대의 제안서 안으로 들어온 말들
30대가 되자 기술 용어는 제 생활의 흥밋거리에서 업무의 언어로 옮겨왔습니다.
2010년대에는 또 다른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소셜미디어, 마이크로 블로그, 큐레이션 커머스, 크라우드소싱, 바이럴 마케팅, 공유경제, 테크핀, 블록체인, 옴니채널, 미디어 커머스.
이전 세대의 단어들이 기기와 접속의 미래를 말했다면, 이 시기의 단어들은 사람의 행동을 바꾸겠다고 말했습니다.
공유, 연결, 참여, 확산, 전환. 사실 지금도 제안서 안에서 살아 있는 말입니다. 살짝 고루하기까지 하죠.
어쨌든 이 말들은 뉴스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제안서의 목차가 되었고, 캠페인의 핵심 문장이 되었고, 회의실 화이트보드 위에 올라왔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그런 말들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말들로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말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입소문(WOM)이 디지털을 만나 새로운 방식으로 확산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쓰이자 어느 순간 진부한 말이 됐습니다. 세상에 바이럴을 원하지 않는 캠페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바이럴을 원하면, 바이럴이라는 말은 오히려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게 됩니다.
큐레이션 커머스도 비슷했습니다. 누군가 좋은 것을 골라준다는 말은 꽤 매력적이었습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어려워지고, 선택이 어려워질수록 누군가의 안목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큐레이션은 추천 알고리즘과 편집샵과 인플루언서의 말 안으로 흩어졌습니다. 말은 사라졌지만, 욕구는 남았습니다.
공유경제라는 말도 한때는 꽤 밝게 들렸습니다. 소유하지 않고 나눠 쓰는 경제. 놀고 있는 자원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 안에는 플랫폼 노동, 수수료, 독점, 규제 같은 다른 단어들이 끼어들었습니다.
처음의 맑은 미래감은 조금 흐려졌고, 말은 이전보다 조심스럽게 쓰이게 됐습니다.
30대의 저는 이 말들을 제안서와 보고서 안에서 만났습니다.
그 말들은 때로는 필요했고, 때로는 과장됐고,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말들을 완전히 비웃기는 어렵습니다. 지나간 유행어는 대체로 그 거창한 야망 때문에 웃기지만, 한때 정말 누군가의 전략이었고, 예산이었고, 보고서였고, 야근의 이유였습니다.
모내기에 노동요가 있었다면, 그 시절 제안서에는 이런 말들이 있었던 겁니다.
40대의 집 안으로 밀려온 말들
40대 초반은 코로나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이번에는 미래어가 멀리서 오지 않았습니다. 집 안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언택트, 온택트, 홈택트, 홈코노미, 홈트, 홈술, 메타버스 오피스.
지금 다시 보면 급하게 만든 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급했습니다.
회의실은 줌으로 바뀌었고, 술자리는 홈술이 됐고, 운동은 홈트가 됐고, 소비는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온택트라는 말은 이상했지만, 그 이상한 말이 설명하는 생활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만나지 않고 만나야 했고, 나가지 않고 일해야 했고, 집 안에서 운동하고 마시고 쇼핑하고 회의해야 했습니다.
홈코노미라는 말도 그랬습니다. 집은 원래 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집은 사무실이자 헬스장이자 술집이자 극장이자 교실이 됐습니다. 생활의 중심이 집으로 들어왔고, 시장은 그 변화를 재빨리 이름 붙였습니다.
이름이 붙으면 산업이 되고, 산업이 되면 보고서가 나오고, 보고서가 나오면 또 제안서가 됩니다.
메타버스 오피스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사무실의 미래가 가상공간에 있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아바타로 회의하고, 가상 회의실에 입장하고, 온라인 공간에서 협업하는 그림이 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열기는 빠르게 식었습니다. 사람들은 가상 회의실보다 그냥 줌 링크를 눌렀고, 아바타보다 카메라를 끄는 쪽을 더 선호했습니다.
코로나의 말들은 상황과 함께 급히 만들어졌고, 상황이 바뀌자 빠르게 식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것도 있습니다. 원격회의는 일상이 됐고, 재택근무는 일부 회사에 남았고, 홈트와 홈술도 생활습관의 일부가 됐습니다.
저는 그 말들을 몸으로 겪었습니다. 말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이제 다시 유비쿼터스를 생각합니다.
그 말은 촌스럽습니다. 정보화시대도 그렇고, 사이버도 그렇고, 닷컴도 그렇고, 와이브로와 DMB도 그렇습니다.
온택트와 홈택트도 벌써 약간 민망합니다. 메타버스 오피스는 더 빠르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을 그냥 실패한 유행어로만 치워버리기는 어렵습니다.
너무 빨리 태어나서 사라졌습니다.
너무 많이 쓰여 닳았습니다.
더 큰 기술 안으로 흡수됐습니다.
상황이 끝나자 함께 식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름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미래를 설명하던 말은 미래가 오면 낡아집니다.
그래서 옛 소리는 애틋합니다. 틀린 예언의 잔해라기보다, 그 시대 사람들이 미래를 부르던 발음에 가깝습니다.
정보화시대라고 말하던 사람들은 인터넷 이후의 삶을 상상하고 있었고, 유비쿼터스를 말하던 사람들은 연결된 생활을 상상하고 있었고, 온택트를 말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끊어진 세계를 어떻게든 다시 이어보려 했습니다.
다만 고백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 소리들의 청취자만은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 어떤 시기에, 한 제조 기업 관련 컨설팅을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 기업이 시장에서 밀고 있는 피처폰을 지지해야 했습니다. 때로 컨설팅은 이렇게 의사결정권자의 의견을 지지하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됩니다.
당시 TFT 멤버들이 몇 날 며칠 밤새워 고민해도, 미래는 분명히 스마트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일간의 검색 끝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찾아냈습니다.
Feature Fatigue, 우리말로 하면 기능 피로라는 개념과 실제 소비자 조사가 포함된 논문이었습니다.
기능 피로는 소비자가 끝없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스마트폰보다, 꼭 필요한 기능만 담은 피처폰을 더 편하게 느낄 수 있다는 논리의 기반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피처폰 라인업을 유지하고 스마트폰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문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TFT 멤버들에게 영웅 대우를 받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씁쓸함이 남습니다.
아마 기능 피로라는 말은 1년 정도 고객사의 모든 회의에서 계속 회자됐을 것이고, 이후로는 쏙 들어갔을 겁니다.
저의 짧은 우쭐함도 그렇게 잊혀진 소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미래를 부르는 노래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래를 미루는 노래도 있었고, 저는 그쪽을 불렀습니다.
민요에 비유하자면 저는 채집자가 아니라 소리꾼 쪽이었습니다. 그 노동요 중 몇 곡은 제가 지어 부른 셈입니다. 이 글이 마냥 애틋해질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지금 쓰는 말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겁니다.
생성형 AI, AI 에이전트, 초개인화, AGI, 피지컬 AI. 지금은 꽤 근사해 보이는 말들도 언젠가는 잊혀진 소리가 될 것입니다.
그때 누군가는 지금의 문서를 열어보고 웃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들, 참 열심히 미래를 부르짖었구나.
저도 그랬습니다. 10대에는 멀리서 들었고, 20대에는 손에 쥐었고, 30대에는 제안서에 썼고, 40대에는 집 안에서 겪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말들은 기술의 이름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 시절을 통과하던 소리였습니다.
옛 소리는 사라진 말이 아니라, 그때의 우리가 일하며 미래를 발음하던 방식이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