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니어 시절, 지시를 받는 게 일이었습니다.
업무를 배운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고, 다시 묻고, 고치고, 혼나고, 또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아주 간혹 좋은 지시도 있었습니다. 방향을 잡아주고, 내가 못 본 구멍을 짚어주고, 왜 이 일이 필요한지 설명해주는 지시. 그런 지시는 힘들어도 배울 게 있었습니다.
다만, 현실의 지시는 대체로 그렇지 않습니다.
납득이 안 가는 방향, 어제와 다른 오늘의 말, 금요일 저녁에 떨어졌는데 월요일 아침이 데드라인인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지시가 정말 싫었습니다. 지시라는 이름으로 얼기설기 포장했지만 업무라기보다, 채 걸러내지 못한 감정의 폐기물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었습니다.
서른 살 언저리의 어느 크리스마스가 기억납니다. 무리한 일정에 며칠을 몰아붙이다 코피를 쏟았습니다.
시간은 밤을 지나 새벽이었고, 휴일이니 당연히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산타클로스 대신 저를 반긴 건,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처럼 새하얗게 비어 있는 문서뿐이었죠.
휴지로 코를 막은 채 모니터를 보고 있었습니다.
피가 멈추기를 기다리면서도 파일은 닫지 않았습니다. 몸은 그만하라는 데, 손은 계속 마우스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소연할 곳도 없었습니다. 동료들은 대부분 저와 비슷한 처지고, 가족들에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걸 다 받아들이는 게 맞나.
견디는 게 답일 리는 없는데.
그래서 저는 지시를 잘 받는 법에 대해 꽤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디서부터 밀어내야 하는지. 부당함과 미숙함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화를 삼키는 게 프로페셔널인지, 아니면 그냥 호구가 되는 건지. 선배의 말이 경험인지, 책임 회피인지 구분하는 법 같은 것도 알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진지함에 조금 웃음이 나옵니다.
당시 저는 지시를 피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좋은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서도 방향은 잡아주는 말. 내 자존심은 덜 건드리면서도 내 실수는 줄여주는 말.
그런 형편 좋은 지시는 세상에 거의 없는데, 그때는 어디엔가 이상적인 상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육사의 광야의 초인, 베케트의 고도, 불교의 미륵불처럼요.
이들의 공통점은 안 온다는 거죠.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답을 찾기도 전에, 그 고민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시니어가 되고, 팀장이 되고, 그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서 지시가 줄어들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제게 일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이 방향으로 가면 되는지, 이 정도면 충분한지, 이 판단이 맞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줄었습니다.
좋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드디어 내가 알아서 하는구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방향을 잡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리.
더 이상 위에서 떨어지는 말에 화를 삼키지 않아도 되고, 이해되지 않는 지시를 밤새 해석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회의실에서 누가 말도 안 되는 방향을 던지면, 이제는 적어도 그 자리에서 다른 방향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고객사의 요청도 있고, 회사의 실적 요구도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절대적인 명령은 아닙니다. 조율하고, 설득하는 여지가 있습니다.
저는 결국 이긴 셈입니다. 아니, 싸워서 이긴 게 아니라 적이 없어져서 이겼습니다.
부당한 지시를 어떻게 받아낼지 고민하던 주니어는, 더 이상 지시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시가 사라진 자리에, 다른 게 들어찼습니다. 가끔, 보통은 늦은 밤에, 질문 하나가 찾아옵니다.
내가 맞게 가고 있나. 이 방향이 맞나.
결국 지시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지시를 내리던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제가 앉았을 뿐입니다.
누가 답을 주지 않으니, 제가 저한테 묻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질문에 답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못 믿을 사람입니다.
남에게는 꽤 그럴듯하게 말합니다. 이 방향이 맞습니다. 이 구조가 낫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혼자 있을 때는 그 말들이 그렇게 가볍고 얄팍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시니어가 된다는 건 판단할 권한이 생기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 권한에는 생각보다 큰 반작용이 있었습니다. 판단의 근거도, 판단의 결과도, 판단 이후의 불안도 같이 따라옵니다.
주니어 때는 억울해도 핑계가 있었습니다. 누가 시켰으니까. 방향이 그렇게 내려왔으니까. 나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런 핑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누가 시킨 게 아닙니다. 제가 결정한 겁니다. 제가 이 방향이 낫다고 말했고, 제가 이 정도면 된다고 판단했고, 제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일이 잘못되면, 설명은 길어질 수 있어도 결국 돌아오는 곳은 비슷합니다.
네, 제가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이 말에 담긴 책임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저는 아직도 누가 가끔 정답지를 들고 나타나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빨간펜 선생님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의 결정 82점. 고객사와 협상 66점. 팀장으로서의 태도는 판단 보류.
이런 식으로 알려주면 부당하다고, 억울하다고 불평하면서도 은근히 안심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더 곤란한 건, 이 질문이 일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번 문이 열리면 줄줄이 따라 들어옵니다. 나는 좋은 가장인가. 좋은 아들인가. 좋은 동료인가. 좋은 어른인가. 애초에 잘 살고는 있는 건가.
마흔 몇 해를 살고도, 누군가 그래,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제 안에 있습니다.
아직도 참 잘했어요 도장 찍힌 공책을 들고 집에 가고 싶은 아이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
주니어 때는 평가가 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짐이 가끔 그립습니다. 적어도 그때는 누군가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부당하게라도. 틀렸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그 지시는 짐이었지만, 좌표이기도 했습니다.
어디에서 화가 나는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어디에서 도망치고 싶은지, 그런 것들을 알게 해줬습니다.
지시가 사라지자 자유가 온 줄 알았습니다.
조금 늦게 알았습니다. 자유는 빈칸을 같이 데려옵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지시에 시달리고 있는 주니어가 이 글을 읽는다면, 한마디 건네고 싶습니다.
그 고민이 무색해지는 날이 옵니다. 생각보다 빨리 옵니다.
그렇다고 그 짐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당한 지시를 낭만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는 그냥 나쁜 요구입니다. 사람을 갈아 넣는 일정은 훈련이나 기회가 아니라 그냥 나쁜 일정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럼에도 그 안에서 하나 쯤은 챙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고, 무엇은 끝내 받아들일 수 없는지. 어떤 지시가 나를 키우고, 어떤 지시가 나를 망가뜨리는지. 어떤 말에는 화가 나는지, 어떤 말에는 이상하게 납득이 되는지.
그때의 결론은 나중에 지시가 사라진 뒤에도 꽤 오래 남아 있습니다.
혹시 저와 비슷한 자리에 있는 분이 읽는다면, 별로 해드릴 말이 없습니다.
저도 같은 밤을 보내고 있어서요.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된 것은 있습니다. 누군가 나타나 채점표를 들고 제 인생에 점수를 매겨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
그 채점은 결국 제 몫입니다.
말은 쉽습니다.
제 몫이라니요. 저는 제 몫이 너무 많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일도 제 몫, 건강도 제 몫, 노후도 제 몫입니다.
세상이 자꾸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고 말하는데, 주인 말고 관리사무소 직원 정도만 하고 싶습니다.
누가 와서 물어보면 싱긋 웃으면서 '담당자 부재중입니다' 하고 넘기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밤에 그 질문이 찾아오면 대단한 답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맞게 가고 있나. 그 질문이 찾아오면, 그날의 채점표를 덮어둡니다.
그리고 다음 한 줄로 넘어갑니다. 써야 할 글 한 줄. 보내야 할 메일 한 줄. 오래 미뤄둔 집안일 하나.
그게 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답이라기보다, 채점이 시작되기 전에 책상을 치우는 일에 가깝습니다.
점수는 모르겠고, 일단 오늘의 종이를 접어 서랍에 넣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내일 다시 펼칠 수는 있으니까요.
지시가 사라진 자리에 정답을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좌표를 찾으려던 것도 어느 순간 그만뒀습니다. 찾는다고 나올 것 같지가 않아서요.
잃어버린 물건들이 그렇듯, 영영 못 찾거나, 생각지 못한 데서 불쑥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채점표를 덮어두고 다음 한 줄로 넘어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