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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에 10년을 다녔다 - 장기 근속의 조건

WORK/조직과 일

한 회사에 10년을 다녔다 - 장기 근속의 조건

지금 다니는 회사에 2016년 7월 4일 입사했습니다.


대행사에서 10년은 꽤 긴 시간입니다. 보통 2년에서 3년쯤 지나면 슬슬 옮길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만든 포트폴리오와 프로젝트 경험을 들고 다음 회사로 가고, 몸값을 조금 올리고, 새로운 명함을 받습니다. 에이전시 업계에서는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곳에 오래 있는 쪽이 이상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3년이면 이력서에 쓸 만한 이야기가 생기고, 5년이면 왜 아직 거기 있느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10년이면 질문하는 사람도 잠깐 말을 고릅니다.


저도 가끔 자문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오래 있었을까.
지금 다니는 회사가 오래 머물기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이전시가 대체로 그렇듯 회사는 작고, 복지가 특별히 넉넉한 것도 아닙니다. 급여 수준은 대기업과 비교하면 매우 현실적인 편입니다. 회사의 존폐가 흔들릴 만큼 어려운 시기도 있었습니다. 월급날이 회사가 어떻게든 한 달을 넘겼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회사가 너무 좋아서 10년을 다녔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건대 저는 조직에 인생을 바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훈을 마음에 품고 출근하지도 않고, 회사 로고를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도 아닙니다. 40대면 가슴은 커피를 급하게 들이킬 때나 뜨거워지는 시기죠.


그런데도 오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10년을 다닐 생각은 없었습니다. 누구도 10년의 출근을 결심하고 에이전시에 입사하진 않을 겁니다. 오늘 출근하고, 이번 주를 넘기고, 이번 프로젝트를 끝내고, 다음 일을 받습니다. 오래 다녔다는 건 큰 결심의 결과가 아니라, 작은 다음들이 계속 이어진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 작은 다음들을 계속 받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있었을 겁니다. 돈은 아니었고, 명성이나 복지도 아니었습니다. 안정성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에이전시에서 안정성이라는 단어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어딘가에서 프로젝트가 엎어질 것만 같거든요.
그럼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사람의 소음이 크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는 이상하리만치 내향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오래 곁에서 일한 사람들 중에는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목소리가 회의실을 뚫고 나오는 시니어가 많지 않았고,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게 생각보다 큰 조건이었습니다. 성과보다 목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일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생각보다 큰 복지라는 것을 이해할 겁니다. 복지 포인트보다 조용한 회의가 더 절실한 날도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목소리로 압박하거나, 감정을 앞세워 분위기를 장악하거나, 자기 힘을 확인하려 드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 방식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방어가 다른 사람의 하루를 망가뜨릴 때 저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조용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적어도 하루 종일 그런 사람을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저에게는 그게 컸습니다.


물론 조용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모든 일이 아름답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말해야 할 것도 삼키고, 갈등도 늦게 터지고, 회의실에 침묵이 오래 앉아 있을 때도 있습니다. 문제를 크게 말하지 않으니 문제가 작은 줄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큰 소리보다 긴 침묵 쪽이 조금 더 견딜 만합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있던 동료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대표님을 빼면 세 명이나 될까 싶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꽤 많은 사람을 지나가게 만듭니다. 늘 있던 사람이 어느 날 퇴사자가 되고, 새로 온 사람이 어느새 오래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분위기는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은 계속 바뀌었는데, 그 잔잔한 온도는 남았습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지만, 대신 계속 같이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온도. 누군가에게는 밋밋해 보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오래 머물 수 있는 조건이었나 봅니다.


다만 오래 머문 데에는 대가도 있었습니다. 한 회사에서 한 고객사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익숙함을 능력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빠르게 알아듣는다는 장점은 섣불리 판단하고 실행한다는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익숙함은 능력이면서 동시에 울타리인 셈입니다. 저를 머물게 한 그 잔잔한 온도가, 한편으로는 저를 길들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게 저의 자산인지, 오랜 적응의 흔적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의 조용한 분위기가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10년쯤 지나고 보니 저도 누군가에게 그 분위기의 일부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새로 입사한 누군가 저를 보며, 이 회사는 이런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좋은 쪽이었는지, 재미없는 쪽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싫어하던, 큰 소리를 내는 시니어가 되지는 않으려고 애쓴 것은 사실입니다.


한 회사에 10년을 다녔습니다. 말하고 보니 조금 무겁고, 민망합니다. 대단한 선택을 한 건 아니고, 그냥 다음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애사심으로 남은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갈 용기가 없어 남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견딜 수 있는 소음의 크기 안에 오래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