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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덜 부르는 물건이 좋다 - 가능성에서 여백으로

LIFE/나의 취향

나를 덜 부르는 물건이 좋다 - 가능성에서 여백으로

한때는 새 기기가 좋았습니다.

PC가 그랬고, 노트북이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습니다.

새 기기를 사면 새로운 장면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멀리 연결되고, 더 쉽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기기는 가능성에 가까웠습니다.


스마트폰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손 안에 인터넷이 들어오고, 지도와 카메라와 음악과 메신저가 한곳에 모였을 때, 그건 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주머니 속에 작은 컴퓨터를 넣고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PDA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는, 제가 기다리던 물건이 마침내 제대로 온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스마트폰이 별로 반갑지 않아졌습니다.

없애고 싶은 정도는 아닙니다. 없으면 안 됩니다.

금융 앱도, 쇼핑 앱도, 인증 앱도, 가족 단톡방도, 업무 연락도 다 거기 있습니다.

길을 찾을 때도, 결제할 때도, 무언가를 예약할 때도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을 두고 나가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생활의 여러 문이 갑자기 닫히는 느낌이 듭니다.

 

문득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낯선 곳을 가려면 어느 역 근처인지, 버스는 몇 번을 타야 하는지 미리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래도 길을 잃으면 모르는 사람에게 염치불구하고 물어야 했습니다.

물건을 사려면 현금이나 카드를 챙겼고, 거스름돈을 받으며 사장님과 몇 마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가족과 이야기하려면 전화를 걸어야 했고, 업무 연락은 메신저보다 이메일이나 전화가 더 자연스러웠습니다.

 

분명히 불편함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 사이에는 사람이 끼어 있었습니다.

길을 알려주는 사람, 계산대 너머에서 말을 거는 사람, 전화기 너머에서 잠깐 숨을 고르는 사람.

스마트폰은 그 불편을 많이 줄여줬지만, 동시에 그런 작은 마주침도 함께 줄였습니다.
저는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낯선 사람과 나누는 대화를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편의점 사장님이나 동네 가게 알바생과 근황을 묻고, 동네 사정을 듣고, 별것 아닌 말을 주고받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오지랖이고 귀찮은 참견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생활이 서로 조금씩 스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상대의 시간을 갑자기 빼앗는 무례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사람 사이에 있던 작은 절차를 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나와 내 하루 사이에도 자꾸 끼어듭니다.

없으면 생활의 문이 닫히는데, 있으면 너무 자주 저를 부릅니다.

알림이 옵니다. 인증을 하라고 합니다. 결제를 확인하라고 합니다. 새 메시지가 있다고 합니다. 사용 시간이 늘었다고 알려주면서, 정작 그 알림도 스마트폰이 보냅니다. 가끔은 손에 든 게 아니라, 제 손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기기가 저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요즘 스마트폰은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이 작은 물건은 어느 순간 도구보다 업무 배정표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버릴 수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버린다는 건 기기 하나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금융 생활과 쇼핑과 가족 연락과 본인 인증과 업무 연락과 지도와 예약과 결제 같은 생활의 관문들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PC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PC가 오히려 스마트폰 없이는 절름발이가 됩니다.

로그인을 해도 휴대폰 인증이 필요하고, 결제를 해도 앱 확인이 필요합니다.

큰 화면 앞에 앉아 있는데, 마지막 허락은 작은 화면에서 받아야 합니다.

개인정보는 여기저기서 털리는데, 본인 확인은 점점 더 스마트폰 하나에 몰립니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늙은 사람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기술은 앞으로 간다는데, 저는 스마트폰 앞에서 허락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저를 덜 부르는 물건이 좋아집니다.

기능이 많은 물건보다 조용한 물건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물건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은 물건이 좋습니다.

예전에는 새 기능이 많은 물건을 보면 마음이 움직였는데, 이제는 그 기능이 나를 또 얼마나 부를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이 물건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보다, 이 물건이 나를 얼마나 덜 붙잡을까를 보게 됩니다.


가끔은 스마트폰이 조금 덜 똑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전화가 되고, 메시지가 오고, 지도 정도는 볼 수 있지만, 제 하루 전체를 관리하려 들지는 않는 물건.

손에 쥐었을 때 세상이 다 열리는 기분보다, 세상이 조금 닫히는 기분을 주는 물건.

예전에는 그런 제한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그 제한이 가끔 그립습니다.


그래서 가끔 단순한 피처폰을 검색합니다.

정말 살 생각이라기보다, 그런 물건이 아직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쪽입니다.

생활 전체를 맡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떤 물건은 아직 사람을 덜 부르는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증거처럼 보이니까요.

 

예전에는 제 생활을 넓혀주는 물건을 좋아했습니다.

취향이 바뀐 건지, 제가 늙어서인지는 딱히 정의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요즘의 저는 분명히 이쪽입니다.

 

저를 덜 부르는 물건이 좋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