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글을 쓰다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을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길을 모르면 사람에게 물어야 했고, 물건을 사려면 계산대 앞에 서야 했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려면 전화를 먼저 떠올리던 시절.
불편했지만, 그 불편 사이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지 5년이 넘었는데, 동네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편하긴 합니다.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고, 필요한 것만 사고, 결제하고, 조용히 돌아올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 가도 저는 그냥 손님이고, 약국에 가도 그냥 손님이고, 카페에 가도 그냥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비유하면 투명인간에 가깝습니다.
문제라고 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저 같은 내향인에게는 오히려 편한 생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편함이 조금 이상합니다.
분명 5년을 넘게 살았는데, 동네 안에 제 얼굴이 남아 있는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 살고 있지만,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지냅니다.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집 근처에 자주 가던 문방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들렀습니다.
초등학생 꼬마 하나가 가게 한쪽에 서서 만화책을 읽고, 프라모델 상자를 열어보고, 살 것도 아니면서 물건만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주인 아저씨 입장에서 그다지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을 겁니다.
매출은 거의 없는데 진열대의 피로도만 높이는 아이였으니까요.
그래도 아저씨는 늘 저를 알아봐 주셨습니다. 가게에 들어가면 인사를 했고, 저는 별일도 없으면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드나들다 보니 나중에는 아저씨뿐 아니라 가끔 가게를 보던 고등학생 아들과도 친해졌습니다.
저 혼자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어린 마음에는 거의 친척집에 드나드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저는 어느 날 아주 어이없는 부탁을 했습니다. 서서 보려니 다리가 아픈데 만화책을 좀 빌려가도 되냐고 물었죠.
지금 생각하면 참 뻔뻔한 부탁입니다. 팔아야 하는 만화책을 빌려가도 되냐고 물었으니까요.
아저씨는 난처한 표정으로 그것까지는 좀, 하며 말을 흐리셨습니다. 당연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또 나름 서운했습니다. 손님인지 조카인지 저 혼자 헷갈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방구 아저씨는 제가 집을 떠나 대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무렵 돌아가셨습니다.
나이가 아주 많으신 것도 아니었는데, 암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문방구는 사라졌고, 저는 그 소식을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
가끔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봤던 겨울이 생각납니다. 점퍼를 입고 급하게 어딘가로 가고 계셨습니다.
저는 바빠 보이셔서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병원에 가시는 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인사를 했을 텐데, 대개 마지막은 예고 없이 왔다가 나중에서야 사실 그게 자신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미장원 이모님도 있었습니다. 아들이 저의 동급생이라, 이모님은 저를 거의 아들처럼 대해주셨습니다.
저는 머리를 너무 짧게 깎지 않았으면 했지만, 이모님은 늘 시원하게 잘라놓고 잘생겨졌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위로였는지 영업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본가에 갈 때 동네에서 우연히 뵈면 아직도 인사를 합니다.
어머니와도 30년 넘게 알고 지내신 분이라, 거의 반쯤 가족 같습니다.
머리카락은 잘라도 자라니까, 미장원의 기억은 제법 오랜 시간으로 남습니다.
그 밖에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늘 공부 열심히 하냐고 묻던 서점 아주머니, 20년 단골이었던 떡볶이집 사장님, 얼굴만 봐도 제가 뭘 먹을지 대충 알던 동네 가게들.
대학에 가서도 학교 근처 당구장, PC방, 만화방, 식당 사장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지냈습니다.
저는 스스로 내향인이라고 생각하지만, 20대의 저는 어디선가 넉살이 샘솟았던 모양입니다.
자취방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동안 다섯 번 이상은 인사를 해야 교문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는 피곤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저는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동네가 저를 알고, 저도 동네를 안다는 우쭐함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 편의점에 가면 사장님은 저보다 제 작은 아이를 더 반겨줍니다.
저는 옆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해야지, 하고 아이에게 말합니다. 아이는 멀뚱멀뚱 자기 과자만 고릅니다.
그러다 나갈 때서야 겨우 안녕히 계세요, 하고 말하면 사장님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역시 귀여운 맛이 있어야 동네에서 살아남는 건가.
제가 혼자 갈 때는, 사장님도 저도 서로 적당히 데면데면하거든요.
어린 시절 저에게 걸어온 말들이 늘 반갑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귀찮았고, 가끔은 오지랖이었고, 가끔은 빨리 지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쓸데없는 말들이 동네에 저를 묶어두던 작은 실이었나 봅니다.
꼭 친해서가 아니라, 제가 그 동네를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이름까지는 아니어도 얼굴로 남아 있다는 것. 그 정도의 관계가 저를 덜 투명하게 만들어줬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그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제 작은 아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형이나 누나 집에 종종 놀러 갑니다.
편의점 사장님도, 세탁소 사장님도 아이에게는 환하게 웃어줍니다.
아이라서 가능한 일인지, 이전 시대의 습관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건지, 아니면 제가 어른이 되면서 그런 문 앞에서 멈추게 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동네는 편합니다. 아무도 저를 붙잡지 않고, 저도 할일없이 말을 걸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을 사고, 조용히 돌아오고, 스마트폰을 보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립니다. 투명인간처럼 살 수 있다는 건 분명 편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누군가 저를 보고 오랜만이네, 하고 말해주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시대가 변한 건지, 제가 덜 귀여워진 건지.
아마 둘 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