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20세기 소년이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유명한 만화책 이야기가 아닙니다. 20세기에 소년기를 보낸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1979년에 태어났고, 성인이 될 때까지 20세기를 살았습니다.
21세기는 그때 제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앞으로 뭐든 좋아질 것 같았습니다.
음악은 카세트테이프에서 CD로 옮겨갔고, 게임기는 점점 더 그럴듯해졌습니다. 잡지에는 미래의 기계들이 소개됐습니다.
새천년이라는 말은 거창했기 때문에 괜히 멋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꽤 괜찮은 어른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근거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학생이고, 돈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제법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20세기 끝자락의 소년에게 21세기는 그런 식으로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가 됐습니다.
저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20세기의 제 아버지보다, 지금의 제가 나이를 더 먹었습니다.
일을 하고, 청구서를 보고, 아이를 키우고,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합니다.
새천년의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나쁜 삶도 아닙니다.
다만 20세기 소년이 상상했던 미래의 저와, 지금의 저는 꽤 다릅니다.
그래서 가끔 찾게 됩니다. 20세기 소년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처음에는 제 안에서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솔직히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너무 많은 일을 생각합니다. 돈, 일, 가족, 건강, 노후, 아이의 학교, 다음 계약, 회신해야 하는데 밀려버린 메일들.
그런 것들 사이에서 20세기 소년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20세기 물건을 찾았습니다.
워크맨, 카세트테이프, 게임기, 만화책, 잡지, 문방구에서 샀던 장난감, 삐삐, CD 플레이어. 하나쯤은 남아 있을 줄 알았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많던 물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버렸거나 이사하면서 사라졌을 겁니다.
그때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낡았고, 필요 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정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오래된 물건의 가치 때문은 아닙니다.
그냥 하나쯤 남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에 쥐고, 내가 정말 이런 걸 좋아했지, 말할 수 있는 물건 하나.
20세기 소년이 실제로 있었다는 걸 덜 추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건 하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검정색 나침반입니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습니다. 할아버지에게 검정색 나침반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군이 쓰던 물건이라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경로로 우리 집에 왔는지는 모릅니다. 사실 제게 그런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나침반을 손에 쥐면 저는 그냥 동네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산을 넘고, 숲을 지나고, 지도에 없는 곳까지 찾아갈 수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집 근처 골목, 학교, 문방구, 놀이터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나침반은 저의 세계를 조금 크게 만들어줬습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는 RC카가 있었습니다. 식구가 많았고, 집안 사정이 여유로운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갖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가 사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제가 갖고 싶어 했기 때문에 사주셨다는 게 말이죠.
RC카를 조종할 때 저는 대단한 걸 움직이는 사람 같았습니다.
손의 작은 움직임이 멀리 있는 차를 움직였습니다. 그저 조금 비쌀 뿐인 장난감이지만, 제게는 그 자체로 굉장히 근사했습니다.
우주선이라도 움직이는 느낌이었죠.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림 도구를 모았습니다. 톰보우 연필, 바바라 붓, 홀베인 물감, 로트링 펜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물건들은 제 서랍 안쪽에 숨어 있었습니다.
대단한 반항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계속 그리고 싶어서, 하나씩 사 모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도구들은 그림 도구이기도 했지만, 제 꿈을 몰래 지켜주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선으로 옮기고,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종이에 붙잡아둘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라 해도, 꽤 오랜 시간 놓을 수 없는 미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이 지금은 없습니다. 검정색 나침반도, RC카도, 몰래 모았던 그림 도구들도, 제가 그렸던 수많은 그림들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물건이 사라진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 물건들은 제가 무엇을 좋아했는지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겁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결국 그때의 물건들을 더듬어 보는 일이니까요. 나침반은 없지만 모험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은 조금 남아 있습니다. RC카는 없지만 내 손으로 무언가를 움직이고 싶었던 마음도 남아 있습니다. 그림 도구는 없지만, 종이 위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던 마음은 이렇게 글로 방향을 바꿔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의 물건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제 아이는 21세기 소년입니다. 아이에게는 지금의 물건들이 있습니다.
카드, 장난감, 게임기, 그림, 스티커, 잘 모르는 캐릭터가 그려진 것들, 왜 소중한지 아빠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은 물건들.
어른의 눈으로 보면 대부분 언젠가 정리해야 할 것들입니다. 서랍을 차지하고, 책상 위를 어지럽히고, 방바닥에 굴러다닙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거 버려도 되지 않냐고 묻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합니다.
지금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아이에게는 자기 시간을 담은 물건일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그 물건 하나가, 21세기 소년이었던 자기 자신을 떠올리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전부 남기라는 건 아니야. 부서진 것, 정말로 의미가 없어진 것들은 정리해도 돼.
정말 아끼는 것, 오래 만졌던 것, 설명하기 어려워도 자꾸 마음이 가는 것 몇 개는 남겨두렴.
언젠가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 물건들이 너에게 말을 걸 수도 있어.
너는 이런 걸 좋아했어.
너는 이런 걸 가지고 놀았어.
너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했어.
아빠는 그런 말을 해줄 물건을 전부 잃어버렸어.
그러니까 너는 몇 개쯤 남겨두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