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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터닝포인트

LIFE/일상의 기록

인생의 터닝포인트

인생에는 터닝포인트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길이 열리고, 그동안의 고생이 복선처럼 회수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영화라면 음악이 깔릴 겁니다. 황혼 무렵, 잔잔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트립니다. 말없이 먼 곳을 바라보는 주인공을 줌인 하면서 화면은 페이드아웃되고, ‘수십 년 후’라는 자막이 떠오릅니다. 곧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것만 같은 순간입니다.
그런데 40대 후반에 와서 생각해보니, 터닝포인트는 생각보다 덜 극적입니다.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꽃길이 아니라 가파른 오르막길입니다.

곧 50대입니다. 숫자로 쓰면 담담한데, 가슴으로 읽으면 다릅니다. 90대까지 산다면 아직 절반쯤 남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건강검진표의 숫자들은 점점 저를 겸손하게 만들고, 계단은 예전보다 더 구체적인 물리학으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생물학일수도 있고요.

어쨌든 몸은 조금씩 현실적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책임은 아직 한창입니다.
딸은 고등학생입니다. 아들은 초등학생입니다. 한쪽에서는 입시와 진로가 다가오고, 다른 한쪽은 아직 아빠 손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자라고 있지만, 통장은 아이들보다 느리게 자랍니다. 가끔은 아이가 아니라 통장이 사춘기를 겪는 것 같습니다. 말을 안 듣습니다.

인생의 가장 비싼 시기라는 말도 지금 와서 보니 정확합니다. 집 대출금,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 보험, 노후 준비, 병원비 같은 것들이 와르륵 화면에 뜹니다. 결제 직전 장바구니를 보는 기분입니다. 언젠가 담았던 것 같긴 한데, 이렇게 많이 담았나 싶습니다.

그 와중에 세상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누군가의 성공담을 들려줍니다. 누구는 주식으로 벌었고, 누구는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집값이 몇 배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작아집니다. 축하할 일인데 축하하는 마음과 시기와 질투는 도망칠 수 없는 좁은 방 안에 같이 앉아 있습니다.

저는 선택의 순간에서 대체로 돈 보다 가족이 행복한 쪽을 택했습니다. 좁은 집과 넓은 집 사이에서 넓은 집을 골랐고, 그 대신 출퇴근 시간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매일 길에 두 시간을 더 쓰는 대신, 아이들은 부대끼지 않는 방에서 자랐습니다. 그 선택이 통장에 어떻게 기록됐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 네 식구가 무엇을 얻었는지도 압니다.

커피를 줄일까, 외식을 줄일까 들여다보지만, 사실 이미 덜 쓰고 있습니다. 저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예산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외줄을 타는 중입니다. 균형이 무너지지 않게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래 아끼다 보면 사람이 작아질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모임에 앞서 이번 달 남은 생활비를 생각하고, 나를 위한 작은 지출에는 죄책감이 따라옵니다. 절약은 좋은 일인데, 절약만 남으면 삶도 같이 비좁아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남길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제 부모님은 저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실만큼 여유롭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시는 것만으로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전화 한 통, 밥 먹었냐는 한마디, 그냥 어딘가에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지가 됩니다.
저도 제 아이들에게 돈만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마흔에 낳은 작은아이에게는 가능한 오래 곁에 있어주고 싶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어쩌면 40대가 될 때까지도 아빠라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도움은 못 줘도 가끔 전화해서 잘 지내냐고 물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마 그게 제가 줄 수 있는 가장 오래가는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겁이 납니다. 앞으로는 더 아플 일이 생기고, 더 늙을 겁니다. 체력은 좋아지기 어렵고 회복은 느려지겠죠. 어쩌면 영영 회복되지 않는 일도 생길 겁니다.

10년 전의 저는 노후를 너무 먼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당장 아이들이 아프지 않으면 됐습니다. 아내가 행복하면 됐습니다. 우리 가족이 큰일 없이 지내면 됐습니다. 근거는 없었지만, 우리는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면 조금 안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제가 아주 틀렸다고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는 그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늘 완벽한 계산으로 살지 못합니다. 어떤 시기에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버팁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특히 그렇습니다. 밤에 열이 나면 인생 계획보다 해열제가 먼저입니다. 통장 잔고보다 아이의 체온이 더 중요합니다. 그때는 그게 맞았습니다.
이제 다른 종류의 계산이 필요해졌을 뿐입니다.

요즘 저는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 더 견뎌야 하는 구간에 들어선 것이구나.
이렇게 말하면 조금 슬픕니다. 하지만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은 원래 그런 식으로 다음 구간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20대에는 가능성, 30대에는 책임, 40대에는 현실, 50대에는 건강. 이름만 바뀔 뿐 늘 무언가를 들고 다음 문을 엽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아이 같습니다. 어른인 척 회의도 하고, 돈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주 흔들리고 겁이 납니다. 이 많은 책임을 감당할 수 있나 싶습니다. 감당이란 건 제가 할 수 있을 때 찾아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해야 할 때 찾아옵니다.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비장하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비장함도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가능하면 웃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자조적이어도 좋습니다. 누가 보기엔 우스워 보여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걱정시키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사실 웃음은 저의 가장 쓸만한 방어기제입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 낫듯이 웃음도 그렇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문제 앞에서 제가 완전히 젖어버리지 않게 해줍니다. 그러니 저는 계속 웃어보려고 합니다. 통장을 보며 웃고, 건강검진표를 보며 웃고, 아이들 학원비 앞에서 아주 작게 웃고, 노후 준비라는 단어 앞에서는 조금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을지도 모릅니다.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지 않으면 무너질까 봐 웃는 것입니다.

이 시기가 진짜 터닝포인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힘내라고 소리지르는 사람도 없고, 반환점을 알리는 깃발도 없고, 타들어가는 몸을 적셔줄 급수대도 없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황량하고 거친 풍경 뿐입니다. 상상했던 것처럼 인생이 갑자기 좋아지고 절반이나 왔다는 보상을 주는 전환점이 아니라, 제 삶을 더 현실적으로 보기 시작하는 전환점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모른 척하기 어렵습니다. 돈도, 건강도, 시간도, 책임도 모두 체감할 수 있는 숫자와 통증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사람도 있습니다.
아내가 있고, 딸이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건강한 제가 있습니다.

아직 일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아내에게 뜬금없이 고마움을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오늘 어떤 일이 제일 재밌었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주식 대박, 부동산 대박같은 성공담은 없지만,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통과할 수는 있습니다.

중년의 희망은 그런 모양일지도 모릅니다.

빛나는 확신이 아닌, 오늘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작고 끈질긴 확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