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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를 줄이려고 도구를 하나 더 만들고 싶다

WORK/조직과 일

도구를 줄이려고 도구를 하나 더 만들고 싶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업무가 시작됩니다.
라고 쓰려다가 멈췄습니다.

 

요즘은 먼저 앱들을 깨웁니다. 카톡, 슬랙, 팀 메신저를 차례대로 확인합니다. 고객사 전용 메신저는 따로 있습니다. 구글 드라이브도 한번 열어봅니다. 어제 받은 파일이 웹하드에 있었는지, MYBOX 링크였는지도 떠올려봅니다. 아직 일은 시작도 안했는데 이미 여러 곳에 다녀왔습니다. 가끔 제가 업무를 하는 건지, 업무 앱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아침부터 업무 앱을 하나씩 깨우면서 출석부를 불러봅니다.

 

카톡, 왔니.

슬랙, 왔니.

팀 메신저, 맞다 넌 자동 로그인이 안되는구나.

고객사 메신저, 너도 왔니.

웹하드, 넌 왜 또 로그인 풀렸니.

 

매일 아침이 작은 조회 시간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다 하나로 합치고 싶습니다. 메신저는 하나만 쓰고, 파일도 한곳에 두고, 결정사항까지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파일 하나 찾다가 제 기억력을 의심하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그런데 회사 일은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하나씩 보면 버릴 이유보다 남길 이유가 먼저 보입니다. 카톡은 모두가 이미 쓰고 있어서 편하지만, 회사 일을 맡기기엔 불안합니다. 보안도 걸리고, 큰 파일은 안 가고, 오래된 자료를 찾아 대화방을 손가락으로 등반하다 보면 보존 기간이 만료됐다는 메시지나 보게 됩니다. 그래서 들인 팀 전용 메신저는 보안도 파일 이력도 챙겨주는데, 정작 손이 안 갑니다. 로그인을 매번 해야 하고 UI가 불편하거든요. 기능은 좋은데 들어가기가 싫습니다. 머리로는 쓸모를 이해해도 손가락이 피해갑니다.

슬랙은 프로젝트를 방처럼 나눠주니 일하는 느낌이 납니다. 그런데 창만 정돈되어 있고, 제 머릿속은 그대로일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전체 인원에게 깔면 운영비가 꽤 되고, 채널이 많아지면 내 일이 아닌 대화도 눈에 들어옵니다. 모으면 피곤하고 나누면 놓칩니다. 고객사 전용 메신저는 더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고른 도구가 아니라 고객사의 출입문 같은 거라, 그 문으로 들어오라면 들어가야 합니다.

 

파일 공유도 비슷합니다. 내부에서는 구글 드라이브가 편하지만, 외부에서는 고객사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웹하드에 올릴 때가 있고, MYBOX 링크로 받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파일 하나가 여기저기 주소를 옮겨다니며 제 기억력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최종이라고 적힌 파일이 있고, 최종 수정도 있고, 진짜 마지막 파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최종 파일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게 거의 법칙입니다.

 

따로 보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톡은 편해서, 팀 메신저는 안전해서, 슬랙은 보기 좋아서, 고객사 메신저는 고객사가 써서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 제 하루 위에 올라오면 약간 웃기고, 꽤 피곤합니다.

처음에는 줄이려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카톡의 한계를 줄이려고 다른 메신저를 들이고, 흩어진 대화를 모으려고 슬랙을 쓰고, 파일을 잃지 않으려고 웹하드를 썼습니다. 그런데 줄어든 게 아니라 그대로 옆에 붙었습니다. 새 도구는 기존 도구를 시원하게 치워주지 않았습니다. 불편 하나를 해결하면서, 자신이 가진 불편을 새로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보안은 나아졌는데 손이 안 가고, 정리는 되는데 비쌉니다. 가볍고 빠른 건 기록이 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갈아타지 못하고 돌려 씁니다.

이게 생각보다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려면 여러 앱을 봐야 하고, 파일을 찾으려면 어디 올렸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회의에서 분명 이야기한 것 같은데 어디에 남겼는지 모르면, 그 이야기는 잠시 전설이 됩니다. 내가 분명히 기억한다는 말은 업무에서는 허언이나 다름없습니다.

 

요즘은 바이브코딩으로 이걸 직접 풀어보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업무 포털을 만들고, 자주 쓰는 링크를 모읍니다. 고객사별 파일 위치도 정리하고, 프로젝트 현황을 한 화면에 띄울 수도 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가볍게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멋지고 편할 것 같은데, 동시에 예상됩니다.

어느 날 누군가 분명히 물을 겁니다. “그 포털 주소가 뭐였죠?”

그러면 카톡방에 포털 링크가 다시 올라오고, 슬랙에는 고정해두자는 말이 나오고, 팀 메신저 공지에도 넣자는 의견이 나올겁니다. 우리는 흩어진 도구를 모으려고 포털을 만들고, 그 포털을 찾으려고 다시 흩어진 도구를 확인하게 됩니다. 생산성 향상이라기보다 작은 순환을 하나 더 만드는 셈입니다.

그거 어디 있어요?” 회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생산성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도구를 줄이려고 만든 도구가 또 하나의 확인 장소가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쉽게 옵니다. 사람들은 결국 가장 익숙한 곳에 다시 올립니다. 카톡에 말하고, 슬랙에 남기고, 구글 드라이브 링크를 복사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앱을 하나 더 만드는 일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됩니다. 이게 정말 줄여줄까. 아니면 하나 더 확인하게 만들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고객사가 쓰는 도구를 우리가 바꿀 수 없고, 카톡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도 없습니다. 슬랙이 편한 순간도 있고, 보안 때문에 남겨야 하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모든 도구를 하나로 합치겠다는 말은 생각보다 현실화하기 어렵습니다. 말은 시원한데 실제로는 잘 안 됩니다. 회사 일이란게 하나의 앱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사람도 다르고, 고객사도 다르고, 파일의 성격도 다릅니다. 어느 정도는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급한 대화는 어디에서 할지.

중요한 파일의 원본은 어디에 둘지.

나중에 찾아야 할 결정은 어디에 명확하게 남길지.

 

재미없는 규칙들이고, 새 업무 포털을 만드는 것보다 멋있지도 않습니다. 회의에서 말하면 다들 고개는 끄덕이지만 눈빛은 흐릴 겁니다. 그래도 이걸 정하지 않으면 새 도구는 금방 애매해집니다. 좋은 의도로 들였고 쓸모도 있는데, 계속 챙겨야 하는 짐이 됩니다.

도구가 늘어난 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다들 잘해보려고 한 일입니다. 보안을 챙기고, 고객사에 맞추고,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파일을 잃지 않으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다들 열심히 했는데 난장판이 된 걸 보면 허탈하기도 합니다. 그냥 우리 일이 그렇게 생겨먹은 겁니다.

 

아침이면 우리는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앱들의 안부를 묻습니다.

 

카톡, 별일 없니.

슬랙, 밤새 무슨 일 있었니.

웹하드, 오늘은 로그인 풀리지 말자.

 

일을 정리하려면 도구가 필요합니다.

도구를 정리하려면, 아마 더 재미없는 것이 필요할겁니다.

어디에 말하고, 어디에 남기고, 어디를 기준으로 볼지 정하는 것.

 

생각만 해도 앱을 하나 더 만들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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