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게에 들어가면 “어서 오세요”라는 말을 먼저 듣던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이름부터 묻습니다.
“어느 분 이름으로 예약하셨나요?”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집니다.
“예약을 해야 하나요?”
직원은 잠시 화면을 확인합니다.
“제일 빠른 시간 확인해 드릴게요.”
대답은 친절합니다.
“세 시간 뒤에 이용 가능하세요.”
입으로는 “네”라고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바로 대답합니다.
안 해.
세 시간 뒤에 다시 찾아올 만큼, 반드시 거기서 머리를 깎아야 하는 것도, 그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곳을 찾아보면 됩니다. 가게 문을 열기 전까지는 분명히 용건이 있었는데, 예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동안 마음이 먼저 돌아섰습니다.
예전에는 보통 기다렸습니다. 식당 앞에서 순서를 기다렸고, 미용실 소파에 앉아 잡지를 봤습니다. 예전이라고 기다림이 더 짧았던 것도 아닌데, 기다리다 보면 제 차례는 오긴 왔습니다.
세 시간 뒤에 다시 오라는 말은 다릅니다. 그사이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야 합니다. 근처에서 다른 일정을 잡기에는 애매한 시간이고, 집에 다녀오기에는 거리가 애매합니다. 뭐가 됐든 다른 일을 시작하면 예약 시간을 신경 써야 합니다. 줄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중간한 시간이 남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원래 외출 방식이 달랐습니다. 아내는 “일단 나가자”고 했습니다. 나가서 먹고 싶은 것을 찾고, 가다가 괜찮은 곳이 보이면 들어가면 된다는 쪽이었습니다. 저는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주차장을 찾아보고, 문을 닫았을 때 갈 만한 다른 곳도 알아두는 쪽입니다.
요즘은 아내가 현관에서 먼저 묻습니다.
“오늘 거기 영업한대? 예약 안 해도 된대?”
몇 번 헛걸음한 뒤부터입니다. 식당 앞에서 돌아서고, 근처를 돌다가 자리가 없어 결국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은 날이 쌓였습니다.
사실 예약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정당한 기다림을 전화 한통으로 박살내는 비겁한 패스트 트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길게 말하는 것부터가 좀 수상하지만, 어쨌든 예약 자체를 미워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식당도 아직 많고, 저희도 자주 갑니다. 대신 그런 곳은 회전이 빠릅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면 먹고, 다 먹으면 일어납니다. 천천히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는 곳은 아닙니다. 푸드코트도 예약할 필요가 없지만, 자리를 찾는 사람과 음식을 받아오는 사람이 따로 필요합니다. 가족이 넷이면 두 명은 식사를 시작하고 두 명은 아직 푸드코트를 돌아다니는 일이 생깁니다. 자유롭기는 한데 평온한 식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먹고 싶은 날에는 저도 예약을 합니다.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고, 다음 손님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숟가락을 서둘러 내려놓지 않아도 됩니다.
미용실은 더 그렇습니다. 저는 머리 깎는 일을 잘 미룹니다. 미용실 특유의 스몰 토크가 무섭기도 하고, 사실은 귀찮아서입니다. 아침에는 오늘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퇴근할 때가 되면 지쳤으니 내일 가자고 미룹니다. 그런데 퇴근할 때 안 지친 날은 없고, 주말이 돼서는 다음 주에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단순히 지쳐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예약을 해두면 약속을 취소하는 게 마음 불편해서 어떻게든 가게 됩니다.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예약이 합리적일 겁니다. 식당은 손님 수를 예상할 수 있고, 미용실은 시술 시간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한없이 기다리다 화가 난 손님을 상대하는 일도 줄어듭니다. 예약제가 합리적이라는 데에는 반박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합리적인 것과 마음에 드는 것이 같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가게 앞에서 기다렸는데, 이제는 제 하루 안에서 기다립니다. 줄은 사라졌지만 기다림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다만 그 기다림이 가게 문 앞이 아니라 제 일정 안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예약을 잘 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예약 없이 갈 수 있는지 물으면, 전화를 해보고 출발해도 되는데 저답지 않게 기대만 안고 일단 가봅니다. 그래놓고 문전박대를 당하면 기분이 상합니다. 예약한 사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니 화를 낼 이유가 없는데도, 늘 크게 거절당한 느낌입니다.
그러다 머리가 길어 불편해질 때쯤, 결국 네이버 앱을 열고 미용실을 예약합니다.
다음 주 토요일 오전에 빈자리가 있습니다.
가기 싫어질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일단 예약은 완료되었습니다.
그 약속은 저를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만듭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