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하려는 마음이 늘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았다
한때 저는 일을 잘한다는 것이 더 많이 신경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줄 더 다듬고, 조금 더 예쁘게 만들고, 고객이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미리 챙기는 것.
그런 태도가 좋은 실무자의 기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맞았습니다.
일의 완성도는 그런 집요함에서 올라갑니다. 대충 넘기지 않는 태도,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 결과물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려는 욕심은 분명 필요한 역량입니다.
문제는 그 태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일을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계속 붙잡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충분한 수준에 도달한 문서를 다시 고치고, 고객이 요구하지 않은 범위까지 고민하고, 팀원이 넘긴 결과물까지 다시 확인하고, 혹시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미리 막으려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책임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안에는 책임감뿐 아니라 불안도 있었습니다.
혹시 부족해 보이면 어떡하지. 혹시 고객이 실망하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놓친 부분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잘하려는 마음은 실패를 피하려는 마음과 섞여 있었습니다.
완벽주의는 그렇게 성실함의 얼굴을 하고 찾아왔습니다.
완벽주의는 품질을 올리지만, 비용도 함께 올린다
뭐, 변명 같지만 완벽주의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세밀하게 보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문장의 어색함을 잡고, 디자인의 균형을 보고, 논리의 빈틈을 찾고, 일정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미리 생각하는 사람은 조직 안에서 분명한 가치를 만듭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에는 비용이 있습니다.
시간이 더 듭니다. 에너지가 더 듭니다. 판단이 늦어집니다. 팀원들이 위축됩니다. 업무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끝나야 할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완벽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품질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품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지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제안서 한 페이지를 더 다듬으면 분명 좋아질 수 있습니다.
문장이 더 매끄러워지고, 표가 더 정리되고, 이미지 배치가 더 세련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 페이지를 다듬기 위해 밤을 새고,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팀원의 피로를 쌓고, 전체 일정의 여유를 없앤다면 그 개선은 정말 좋은 개선일까요?
산출물의 품질은 높아졌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품질은 낮아졌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모든 일이 중요해진다
'완벽주의가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을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습니다.
바로 기준이 없을 때입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중요해집니다.
모든 문장이 중요하고, 모든 이미지가 중요하고, 모든 표가 중요하고, 모든 가능성이 중요해집니다. 그러면 일은 끝없이 커집니다.
실무에서 모든 것을 같은 밀도로 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떤 일은 95점까지 올려야 합니다. 어떤 일은 80점이면 충분합니다.
어떤 일은 빠르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일은 아직 완성도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 방향을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이 차이를 흐리게 만듭니다.
초안도 완성본처럼 만들고, 내부 검토용 자료도 고객 제출본처럼 다듬고, 방향 확인용 장표도 임원 보고서처럼 만듭니다. 그러면 일의 품질은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속도와 판단은 느려집니다.
저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태도가 좋은 실무자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절반만 맞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일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필요로 하는지 판단하는 사람이 사실은 더 좋은 실무자일 겁니다. (당연한 말을 추측형으로 쓰는 이유는 그렇지 못한 저의 비겁함 때문입니다.)
책임감이 일을 망치는 순간도 있다
책임감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책임감이 너무 커지면 일의 구조를 망칠 때가 있습니다.
원래 내가 맡은 범위를 넘어 다른 사람의 일까지 끌어안고, 고객이 결정해야 할 문제까지 대신 떠안고, 조직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까지 개인의 성실함으로 막으려 할 때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일이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군가 애매한 일을 넘기면 내가 정리합니다. 팀원이 부족한 부분은 내가 보완합니다. 고객이 모호하게 말하면 내가 해석합니다. 예상되는 문제는 내가 미리 처리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의 결과물은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상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팀은 누군가가 마지막에 다 받아줄 것이라 생각하고, 고객은 자신이 말하지 않은 것 까지 당연하게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저는 플랜 B까지 준비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일을 떠안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기획자이지, 자원봉사자나 무속인이 아닙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개인의 노동으로 가린 셈이 됩니다.
책임감은 일을 완성시키는 힘이지만, 경계가 없으면 일을 망치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완벽주의는 팀을 조용히 지치게 한다
완벽주의는 자신만 지치게 하지 않습니다.
팀도 지치게 합니다.
리더나 책임자가 모든 것을 다시 고치면, 팀원은 자기 판단을 잃기 쉽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에는 다시 바뀔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작은 실수도 크게 보이면, 팀원은 시도보다 방어를 먼저 하게 됩니다.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팀의 자율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가 더 많이 보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팀원이 성장할 기회를 줄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결과까지 책임지려 할수록, 팀은 과정에서 배울 기회를 잃었습니다.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은 제 자기만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은 혼자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규모가 있는 일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디테일을 끝까지 잡는 방식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좋은 구조는 한 사람의 집요함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일정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을 때 만들어집니다.
완벽주의는 뛰어난 개인을 만들 수는 있지만, 좋은 시스템을 만들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좋은 상태를 아는 것도 실력이다
요즘은 좋은 결과를 만드는 기준을 다르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무조건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만큼 충분히 잘하는 것.
이 말은 대충 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 무엇은 조금 내려놓아도 되는지, 어디까지가 품질이고 어디부터가 자기만족인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좋은 상태를 아는 것은 실력입니다.
보고서라면 핵심 논리가 살아 있는지 봐야 합니다. 제안서라면 고객이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디자인이라면 메시지를 가리지 않는 선에서 정리되어야 합니다. 콘텐츠라면 읽는 사람이 무엇을 가져갈지 분명해야 합니다.
그 기준을 넘었다면, 어느 순간에는 멈춰야 합니다.
더 고칠 수 있다는 욕심과, 더 고쳐야 한다는 필요는 다릅니다.
완벽주의는 이 둘을 자주 혼동합니다. 적어도 저는 자주 혼동했습니다.
그런데 멈출 때를 안다는 건 결과물만 보는 게 아닙니다.
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도 같이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품질은 결과물만이 아니라 과정에도 있다
예전에는 품질을 결과물 중심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문서가 잘 나왔는가. 디자인이 깔끔한가. 논리가 탄탄한가. 고객이 만족했는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과정의 품질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팀이 소진되지 않았는가. 고객과 합의된 범위 안에서 진행됐는가. 다음에도 반복 가능한 방식인가. 누군가의 무리한 희생으로만 버틴 것은 아닌가. 끝난 뒤에 조직 안에 경험과 기준이 남았는가.
결과물이 좋아도 과정이 무너졌다면, 그 일은 정말 좋은 일이었을까요.
단기적으로는 성공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밤을 새고,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가 끝까지 떠안고, 같은 방식으로 범위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좋은 시스템이 아닙니다.
품질은 결과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에도 있습니다.
완벽주의를 버린다는 것은 대충 한다는 뜻이 아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는다는 말을 하면, 마치 기준을 낮추자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무엇을 정말 잘해야 하는지 정하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곳에는 힘을 쓰고, 덜 중요한 곳에서는 멈출 줄 알자는 것입니다.
완벽주의는 모든 것을 중요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좋은 관리자는 우선순위를 세웁니다.
어디에 시간을 써야 하는지.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누가 결정해야 하는지. 무엇을 합의해야 하는지. 무엇을 포기해도 되는지.
이 판단이 있어야 일은 지속 가능합니다.
저는 아직도 잘 멈추지 못합니다. 여전히 한 줄 더 고치고 싶고, 한 장 더 다듬고 싶고, 조금 더 나은 표현을 찾고 싶습니다.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마음 때문에, 그 욕심이 충족되는 순간의 환희 덕분에 지금까지 일해왔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을 그대로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잘하려는 마음도 때로는 점검이 필요합니다.
사실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아직 정신을 못차린 것 같습니다.
글로 정리한 자기 인식과, 실제 현실에서의 행동 사이에는 늘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멈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은 한 줄 더 고치고 있는 저를 자주 발견합니다.
팀원이 넘긴 결과물을 보면 여전히 다시 손이 갑니다.
고객이 요구하지 않은 부분까지 미리 챙기게 됩니다.
그러고는 또 같은 자각이 옵니다.
아 내가 또 그러고 있구나.
마치 길에서 신문지를 끌어안으며 아침을 맞이한 알콜 중독자의 자각처럼요.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의 절반은 다른 사람을 향한 게 아니라 저 자신에게 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완벽주의가 비용이라는 진단을 머리로 알고 있어도 그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의 진짜 어려움은, 완벽주의를 인식한 후에도 손이 먼저 움직인다는 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완벽주의를 극복한 사람의 정리가 아닙니다.
여전히 그 안에 있는 사람의 기록입니다.
성실함에도 경계가 필요하다
완벽주의는 성실함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합니다. 게으름이나 무책임은 비교적 알아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칭찬받기 쉽습니다. 열심히 한다는 말, 책임감 있다는 말, 꼼꼼하다는 말 뒤에 숨어 있기 쉽습니다.
문제는 그 성실함이 자신과 팀을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입니다.
성실함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실함에도 경계가 필요합니다.
그 경계가 없으면 성실함은 쉽게 과로가 됩니다. 책임감은 쉽게 희생이 됩니다. 완성도는 쉽게 자기착취가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완벽주의는 성실함이 아니라 비용이다.
그리고 좋은 관리자는 그 비용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비용을 계산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