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장에게는 지도가, 팀원에게는 지시가 있다
조직을 이끌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안 따라오지. 왜 이 정도는 알아서 해주지 못할까. 왜 매번 다시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목표가 정해지면 앞만 보고 달리는 편이거든요.
좋게 말하면 몰입이고, 나쁘게 말하면 워커홀릭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팀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처음엔 그게 답답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팀장은 이미 머릿속에 목표와 경로와 위험지점을 어느 정도 그려두고 있지만, 팀원에게 보이는 건 대개 그중 일부입니다.
팀장에게는 지도가 있습니다. 팀원에게는 지시가 있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팀장은 업무라는 바다 전체를 보고 있지만, 팀원은 망망대해 위에서 노트북 하나를 붙잡고 떠 있습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등대는 팀장의 지시입니다. 그런데 그 지시가 흐리면, 열심히 노를 저어도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때 팀장은 다시 답답해합니다. 왜 엉뚱한 방향으로 갔지?
하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간 게 팀원들의 귀책은 아닐 겁니다. 애초에 방향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팀장도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팀장만 탓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끈다는 건 일을 나누고 확인하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고객사 커뮤니케이션이 있고, 내부 보고가 있고, 일정 조율이 있고, 갑자기 터지는 문제를 수습해야 합니다.
실무선에서 풀리지 못한 문제들이 팀장에게 올라오는데, 쉬운 문제라면 애초에 올라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대개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혀 있죠. 알렉산더 대왕이 괜히 대왕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란 걸 오늘도 많은 팀장님들이 본인의 모근을 괴롭히면서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깊게 생각할 시간은 모두가 퇴근한 뒤에야 생깁니다.
하루 종일 사람과 일과 전화와 메시지에 끌려다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자기 일이 시작됩니다.
팀장도 지쳐 있고, 충분히 친절하게 설명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팀장과 팀원은 서로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팀장은 팀원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느끼고, 팀원은 팀장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둘 다 어느 정도 맞습니다. 그리고 둘 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 짚고 갈 게 있습니다. 팀장님들도 주니어 시절을 겪어 아시겠지만, 상사 욕은 직장인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겁니다.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게 팀장의 숙명이죠. 팀원들이 성격이 꼬여서가 아니라, 그걸 못 하게 하면 팀원들이 죽습니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다", “키워주고 밀어줬더니 죄다 팀장 탓만 한다”는 식으로 팀원 탓에서 멈추면, 팀장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남는 결론이라곤 사람을 잘못 뽑았다, 내가 다 해야 한다 정도일 텐데, 그 결론은 팀장을 더 외롭게 만들 뿐입니다.
더 현실적인 질문은 이겁니다.
팀원이 따라오지 않는 게 아니라, 따라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 건 아닐까?
판단 기준을 넘겨야 위임이다
팀장이 가장 자주 실패하는 지점은 위임입니다.
잠시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언젠가 가장 신임하는 팀원에게, 그의 평소 역량보다 조금 더 도전적인 일을 통째로 맡긴 적이 있습니다.
고객사 임원 보고 자료였죠. 우리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걸 성과 중심으로 알리고, 앞으로 비용을 좀 더 쓰면 안 되겠냐는 귀여운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문서였습니다.
성실함만큼은 누구보다 믿음직한 친구였고, 저는 그렇게 믿고 맡기는 게 신뢰를 보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목표만 정해주고 "나머지는 네 판단에 맡길게. 뒷일은 내가 책임진다." 멋진 말까지 남겼죠.
속으로는 이 정도면 좋은 팀장 아닌가 싶어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결과물을 받아 든 날, 저는 그걸 거의 전부 다시 손봤습니다.
제가 했던 말 그대로, 책임은 제가 지게 됐고요. 그러면서 밤새 되뇌었습니다. 왜 여기까지밖에 못 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 친구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제가 일을 넘겼을 뿐 판단의 기준을 넘기지 않았다는 걸요.
무엇이 중요한지, 어디까지가 충분한지, 어떤 건 물어봐야 하고 어떤 건 알아서 해도 되는지. 그 지도는 전부 제 머릿속에만 있었습니다. 저는 신뢰를 준 게 아니라, 기준 없이 바다에 내보낸 거였습니다.
그래서 위임의 핵심은 업무 배분이 아니라 판단 기준의 이전입니다.
이것을 넘기지 않으면 팀원은 계속 지시를 기다리고, 작은 결정도 다시 팀장에게 돌아옵니다.
제 팀원의 경우에는 신뢰로 포장된 압박감에 이조차도 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위임은 팀장이 손을 떼는 일이 아니라, 팀장이 없어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반대였던 적도 있습니다.
고객사에게 큰 클레임을 받고 사유서까지 쓰게 된 뒤로, 저는 한동안 고객사에 넘어가는 거의 모든 산출물을 강박적으로 직접 다시 고쳤습니다. 문장 하나, 표현 하나까지요. 오랜만에 대리 시절의 열정을 뿜어냈고, 거기에 팀장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까지 더해져서 당장 품질은 좋아졌습니다. 고객사도 다시 만족한 건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팀원들이 점점 저에게 확인부터 받으려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작은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마지막엔 제가 고칠 텐데, 먼저 판단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제가 산출물의 품질을 지킨다고 한 일이, 실은 팀원이 스스로 판단할 자리를 빼앗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너무 놓아서, 한쪽은 너무 쥐어서 실패했습니다.
둘 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필요한 건 그 사이의 구조입니다.
머릿속 지도를 꺼내, 함께 볼 수 있게 만드는 일
구조란 거창한 체계가 아닙니다. 일의 기준을 보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팀장 머릿속에만 있던 지도를, 팀이 함께 볼 수 있는 형태로 꺼내는 것이죠.
그 지도에는 대략 이런 것들이 들어갑니다.
- 목표: 이 일이 결국 무엇을 만들려는지
- 우선순위: 품질, 속도, 비용, 관계 중 무엇을 먼저 볼지
- 역할: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 권한: 팀원 개개인이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
- 기준: 좋은 결과와 부족한 결과를 가르는 선
- 예외: 기준이 막혔을 때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올릴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앞에서 제가 실패한 사례가 정확히 이 지도가 없던 경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문서에는 건넸어야 할 게 한참 더 있었습니다.
목표는 "보고 자료 하나 만들어줘"가 아니라, 성과를 앞세워 임원을 설득하고 추가 예산의 여지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기준은 대기업 임원이 30초 만에 핵심을 잡을 수 있게 요약된 문서였고요. 성과 장표와 추가 예산의 근거 장표가 이를 거들 수 있어야 했습니다.
권한은 그 "귀여운" 예산을 어느 선까지 요청해도 되는지였습니다.
그리고 예외는 이 중 무엇이든 막히는 순간엔 끌어안지 말고 곧장 저에게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중 어느 것도 넘기지 않고, 목적지 하나만 쥐여줬습니다.
그러니 그 친구가 헤맨 게 아니라, 헤맬 수밖에 없는 지도를 받은 겁니다.
거창하게 문서로 만들 것도 없습니다. 일을 맡기기 전 단 5분이면 됩니다.
"이 보고서의 진짜 목적은 예산을 더 받는 거야. 임원이 30초 만에 핵심을 알아보게 써줘. 성과 장표로 추가 예산 아깝다는 생각이 쏙 들어가게 해주고, 예산의 근거도 탄탄하게. 예산은 이 선까지 질러도 되고, 그 위로 넘어가야 할 것 같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가져와."
이 몇 마디면 팀원이 들고 있는 게 지시에서 지도로 바뀝니다.
저는 그 5분을 아끼는 바람에 밤을 새워 결과물을 메웠습니다.
사실 재미없고 번거로운 것들입니다. 하지만 조직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이게 없으면 목표는 구호가 되고, 구호로 움직이는 조직은 정당과 종교단체뿐입니다.
물론 이런 구조를 만들고, 전파하는 일이 늘 환영받는 건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언젠가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좀 더 정리해보려 했을 때, 지금도 잘 굴러가는데 왜 굳이 그런 걸 하려느냐는 반응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체 얼마나 튀고 싶은 건지 감도 안 온다는 식의 말도요.
그 말은 제게 오래 남았습니다. 한동안은 '내가 괜한 일을 벌이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구조가 없을 때 가장 먼저 지치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걸, 그 뒤로 여러 번 봤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좋은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조직은 좋은 사람들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좋은 구조가 있어야 좋은 사람들이 덜 소진됩니다.
팀장은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많은 팀장이 착각합니다. 저도 자주 착각합니다.
팀장이 더 많이 일하면 팀이 굴러간다고요.
단기적으로는 맞습니다. 팀장이 밤에 문서를 고치고, 빈틈을 메우고, 팀원의 실수를 수습하면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굴러갑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팀장이 모든 걸 끌고 가는 조직은, 결국 팀장의 체력과 수명이 조직의 한계가 됩니다.
팀장이 멈추면 조직도 멈추고, 팀장이 지치면 품질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팀장은 모든 걸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목표가 보이게, 우선순위가 보이게, 기준이 보이게. 팀원이 질문할 때마다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이 줄어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솔직히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잘하고 있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이건 잘하는 사람의 조언이라기보다, 아직도 매일 흔들리는 사람의 정리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답답해하고, 여전히 밤에 일을 붙잡고, 여전히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니까요.
아마 내일 아침에도 저는 또 똑같이 답답해하고 있겠죠. 사람은 글처럼 정리되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이 생각 하나는 점점 분명해집니다.
조직이 따라오지 않을 때, 팀장이 먼저 할 일은 사람을 더 크게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만 있던 지도를 꺼내 함께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그게 업무라는 망망대해에서 팀장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등대이자 지도일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