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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를 읽지 않는 사람의 일생 – 그래도 복약지도는 읽어야 한다

LIFE/나의 취향

설명서를 읽지 않는 사람의 일생 – 그래도 복약지도는 읽어야 한다

설명서를 읽지 않는 사람: Homo manualis ignorans

저는 설명서를 읽지 않는 사람입니다.

꽤 오래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 보드게임을 사도 설명서를 끝까지 읽는 쪽이 아니었습니다.

판을 펼치고, 말과 카드와 주사위를 보면, 먼저 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갈지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한글을 잘 모르던 동생에게 제가 이해한 규칙을 설명해주고 바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해한 규칙이 실제 규칙과 같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어떤 날은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설명서가 의도한 게임은 따로 있었고, 우리는 그 옆에서 비슷한 구성품으로 다른 우주를 운영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에게 조금 미안합니다. 규칙을 설명해준 것이 아니라, 제가 방금 만든 세계관에 강제 입장시킨 것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래도 그게 재미였습니다.

 

저는 차근차근 읽고 시작하는 것보다, 먼저 만져보고 추측하고, 틀리면 그때 고치는 쪽이었습니다.

게으름도 있고, 빽빽한 글자의 나열에 질린 것도 있었겠지만(그랬던 제가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구조를 먼저 보고 싶었습니다.

이 판은 어떻게 굴러갈까. 이 버튼은 무엇을 할까. 이 물건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반응할까.

 

그 버릇은 커서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제품을 사면 설명서를 읽기보다 먼저 만져봤습니다. 전원을 켜고, 버튼을 눌러보고, 다이얼을 돌려봤습니다.

설명서는 박스와 비슷한 운명이었습니다. 사자마자 버려지는, 법적 의무와 제조사의 책임감이 결합돼 만들어낸, 별 쓸모없는 종이 묶음. 그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명서를 안 읽어서 크게 당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러다 큰코다친 적이 있다"고 쓰면 훨씬 극적으로 보일 텐데,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제품은 그냥 어떻게든 쓸 수 있었습니다. 전원은 전원처럼 생겼고, 볼륨은 돌리면 커졌고, 재생 버튼은 삼각형이었고, 정지 버튼은 네모였습니다. 빨간색은 누르면 대개 좋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이를테면 "정말 덮어쓰시겠습니까" 같은 경고도 없이 가장 아끼는 앨범에 어어?’하는, 제 당황한 목소리가 녹음되는 식입니다) 전원이었습니다.

제품이 저를 어느 정도 받아준 겁니다.

 

목차를 건너뛰는 사람: Homo indicem transiliens

물론 이 습관이 늘 좋았던 건 아닙니다. 제품보다 공부에서 더 문제가 됐습니다.

학창 시절의 저는 목차를 꼼꼼히 읽기보다 곧장 본문으로 들어가는 쪽이었습니다.

왜 이 책이 이 순서로 배치됐는지, 앞의 개념이 뒤를 어떻게 받치는지, 전체가 어디로 가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읽었습니다.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런데 큰 그림을 놓치고 세부부터 파고들다 보니, 한 번 완독해도 이상하게 구멍이 많았습니다.

분명히 읽었는데 설명하기 어려웠고, 밑줄은 많은데 머릿속의 지도는 비어 있었습니다.

설명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때로 목차를 건너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직접 만져보며 배우는 태도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구조를 보지 않고 세부로 뛰어드는 습관은 비용을 남깁니다.

그 비용을 저는 꽤 나중에 치렀습니다.

 

대가를 몸으로 치른 사람: Homo corpore discens

10년 전쯤이었습니다.

약을 먹어야 했는데, 복약 방법은 약봉투에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별생각 없이 두 알씩 먹었습니다. 평소 먹던 두통약처럼 대충 판단한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지러움과 구토감이 왔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방 안을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하다가, 나중에서야 제가 복용량의 두 배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뒤로는 약봉투만큼은 유심히 봅니다.

 

이 정도면 반성문으로는 부족하고, 생활 태도로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복약지도만은 읽습니다.

사람은 꼭 한 번 바닥을 기어봐야 배우는 영역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기기들을 보면, 저 같은 사람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즘 제품에 당황한 사람: Homo technologia confusus

요즘 제품에는 두꺼운 설명서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얇은 안내문과 보증 문서 정도가 전부입니다. 진짜 사용법은 기기 안에 있습니다.

설정 앱 안에, 도움말 안에, 검색하면 나오는 문서 안에. 종이 설명서는 사라졌지만, 설명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숨었습니다.

 

겉은 단순해졌습니다. 버튼은 줄었고, 표면은 매끈하고, 어떤 제품은 버튼 하나만 남깁니다.

문제는 그 하나에 너무 많은 뜻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짧게 누르면 재생. 길게 누르면 전원. 두 번 누르면 다음 곡. 세 번 누르면 이전 곡. 동시에 누르면 초기화. 몇 초 이상 누르면 페어링.

이쯤 되면 버튼이 단순해진 게 아니라, 모스 부호를 익혀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미 쓰레기통에 버렸던 설명서를 다시 찾습니다. 유쾌한 경험은 아닙니다.

블루투스 이어폰, 작은 스피커, 무선 마우스가 특히 그렇습니다.

생긴 건 단순한데, 막상 쓰려면 규칙을 알아야 합니다.

LED가 몇 번 깜빡이는지, 지금이 페어링 상태인지, 초기화가 됐는지.

제품은 미니멀한 모양새지만, 그 안에는 이니그마 급의 암호 체계가 들어 있습니다.

설명서가 없다는 것과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은, 다른 말이었습니다.

 

제품이 봐주던 사람: Homo machina toleratus

저는 좋은 제품은 설명서가 필요 없는 제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용자가 제품을 잡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면 좋은 제품이라고요.

지금도 그 생각이 아주 틀렸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예전 제품을 쉽게 쓸 수 있었던 건, 제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제품이 자기 사용법을 얼굴에 적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설명서를 안 읽어도 인생을 살아낼 수 있었던 건, 제품이 저 같은 사람을 봐주고 있었던 겁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보드게임을 펼쳐놓고 동생에게 규칙을 지어내던 어린 제가 겹칩니다.

그때 저는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습니다. 말과 카드와 주사위가 저마다 역할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틀리면 틀린 대로 재미있었습니다.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적어도 그때의 세계는 우리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기기도 점점 그럴 수 없는 쪽으로 갑니다.

버튼 하나를 길게 누르느냐 두 번 누르느냐에 따라 작동이 달라지고, 앱에서 무엇을 허용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사용자는 제품을 만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칙을 통과해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설명서를 잘 읽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조금 의심합니다.

내가 정말 제품을 이해한 건지, 아니면 제품이 잠깐 저를 봐주고 있는 건지.

버튼을 눌렀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면, 그건 버튼이 단순해서가 아니라 제가 그 버튼의 문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새 기기를 켜며 먼저 버튼을 눌러봅니다.

한 번 누르고, 길게 누르고, 두 번 눌러보고, 안 되면 그제야 검색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복약지도만은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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